부여 부소산, 예전엔 현 부여문화재사업소 뒤편에 주 출입구가 있었어요. 요즈음 안내지에 '구문'이라 표시되어 있더군요.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잘 정비되어 있지만, 그 아래로, 관광상품판매장, 주점, 식당 등이 어깨를 맞대고 줄지어 있었습니다. 간단한 요기 후, 충령사, 삼충사, 영일루로 이어지는 산 아랫길을 걸었어요. 영일루에 서성이다 다시 뒤돌아 나왔지요. 어색하지만 많이 지껄인 것 같아요. 두어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가슴은 칠흑 어둠 나무사이로 번득이던 읍내 불빛, 콩당거리는 소리 들킬까봐 숨죽이던 생각은 납니다.
통행금지 시간이 있었어요. 그 전에 바래다 줄 요량으로 집이 어디인지 물었더니, 궁남지 옆이라 했어요. 정림사지 지나 골목길에 멈춰 머뭇거리더군요. 한참을 그러고 있어 시계를 보았지요. 자정 5분전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가겠다고 했지요. 얼마나 답답했던지, 데이트 마지막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더군요.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한다더군요. 그러고는 가로등불빛과 함께 총총 사라졌습니다. 숨 가쁘게 뛰어 숙소로 돌아왔지요.
어둠속으로 사라지던 뒷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참 서툰 만남이지요?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여인의 마음이나 말, 행위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수십 년 지난 지금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부여 하면 으레 떠오르는 추억입니다. 아울러 사람과 사람사이에 얼마만한 간극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남녀 사이엔 또 다른 차이가 더해지지요, 부부로 수십 년 살아도 모르는 게 많습니다. 사람사이도 그러한데, 역사! 하물며 어찌 안다 할까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만남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게다가 가까이 있으면 소홀해지지요. 때를 놓치면 다시 묻기도 난처합니다.
1979년, 6개월 여 부여에 머물렀어요. 정림사지에서 부소산 입구로 뛰어 올라가던 그 길 양옆이 관북리 유적지입니다. 그 시절엔 잡초만이 유적을 지키고 있었지요. 1980년이 되어서야 조사가 시작되지요. 30여년 지속합니다. 건물배치, 상수도, 저장고, 공방 등 시설과 연못, 도로, 석축 등이 확인되어 왕궁터로 추정합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됩니다.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충남 공주와 부여, 전북 익산 지역에 분포된 8개 유적 지역을 말합니다. 공주 공산성(公山城)과 송산리 고분군(宋山里 古墳群), 부여 관북리 유적(官北里 遺蹟, 관북리 왕궁지) 및 부소산성(扶蘇山城), 정림사지(定林寺址), 능산리 고분군(陵山里古墳群), 부여나성(扶餘羅城),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王宮里 遺蹟), 미륵사지(彌勒寺址)가 그것입니다.
처음 부여에 갔을 때 궁남지, 정림사지, 부소산, 수북정 등을 돌아보며 감개무량해 했던 생각이 납니다. 오천결사대로 나라를 지켜내려던 계백장군 결기가 떠오르기도 하구요. 적에게 쫓기어 강으로 뛰어 내리던 여인네 모습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이야기 등 이런저런 자투리 역사가 떠오릅니다. 특히 부소산 사자루에서 고란사, 낙화암 오르내릴 때 이인권이 부른 '꿈꾸는 백마강', 허민의 '백마강' 노랫말이 떠오르더군요. 실제로 흥얼거리는 사람이 많이 있지요. 자온대, 구드레, 고란사로 이어지는 황포돛대 뱃놀이도 일품입니다.
부여나성은 염창리에서 능산리, 석목리, 부소산성에 걸쳐 쌓여있지요. 수도의 북동쪽을 방어하던 시설로 6.3km 구간이 확인되었다는군요. 그 중간쯤에 능산리 고분군이 있어요. '백제왕릉원'이라 표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된 능산리 절터가 바로 옆이지요. 정림사지는 부여 중앙에 있습니다. 오층석탑과 석불좌상이 남아있고, 옆에 정림사지박물관이 있어요. 아름다운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국보 제9호 이기도 합니다.
언급하지 못한 다양한 역사문화유적과 국립부여박물관, 백제역사재현단지, 서동요테마파크, 백제보 등 하루 이틀에 볼 수 없는 수많은 볼거리가 있답니다. 사색의 계절, 역사와 만남! 마음을 살찌우는 소중한 시간이 되리란 생각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