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란코 상이 이제 낯가림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비란코 상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불과 1년여 전.
후루마쓰는 비란코 상이 좋아하는 음악의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음악의 선율과 박자 등을 전자파로 제공하여 비란코 상이 즐겨 듣는 음악을 알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비란코 상은 처음에는 어떤 음악을 들려주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러 음악을 들려주다가 후루마쓰는 문헌에서 본 대로 한 번은 인도의 전통음악 '라가'를 준비했다. 인도 무굴왕조 때 한 신하가 '라가'를 들려주며 난을 키웠다는 기록을 상기했던 것이다.
옥수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바흐의 오르간 연주나 인도의 '라가'연주가 가장 성장을 빠르게 했다는 기록도 무시하지 않았다.
비란코 상은 후루마쓰가 산사에서의 산에서 채취한 야생란이다. 늘 푸른 잎을 가진 야생란은 청초하고 수줍은 젊은 여성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난에게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잎이 44%가 커졌다는 보고는 이미 오래된 것이었다. 그는 비란코 상에게 음악을 들려주면서 그녀의 몸에서 보이는 미세한 변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후루마쓰는 그녀의 몸에 자신이 고안한 전자기파의 파동을 감지하는 장치를 설치했다. 그것은 음악을 들은 식물이 반응을 보일 경우 그 반응을 파장으로 기록하는 장치였다.
그것을 그는 플라워텔레스코프라고 이름을 지었다.
후루마쓰는 스스로 고안한 또 하나의 장치를 설치했는데, 그것은 음악의 내용을 문자로 설명하고 그러한 문자를 다시 파동으로 바꾸어 잎줄기에 연결하는 장치였다.
예를 들면, 바흐의 오르간곡을 들려주면서 선율에 상응하는 감미롭다, 아름답다, 빠르다, 느리다 등의 내용을 동시에 전자파로 식물에게 전달했다.
이 작업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즉 칸타빌레(노래하듯이), 돌체(우아하고 아름답게)라든가 또는 아다지오(매우 느리게), 안단테(느리게), 라르고(느리고 폭이 넓게) 등등 악보에 붙여지는 부호를 그 의미에 걸맞은 고유한 형태의 파동으로 전환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끝나는 일이었다.
이러한 목적은 농아인 후루마쓰가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고려한 조치였다. 작업을 하면서 그는 음악에 꽃이 반응을 보이는 현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클리브 벡스터가 거짓말탐지기로 꽃의 의사를 확인했다는 보고를 통해 많은 사람이 짐작하고 있던 현상인데, 현실세계에서 이러한 반응은 경험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벡스터 이후 수많은 사람이 식물을 대상으로 동일한 실험을 했지만 벡스터가 경험한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벡스터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 실험방법이 잘못된 것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비란코 상에게서 이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후루마쓰는 남모르게 흥분했고 흥분의 파도를 타고 밀려오는 기쁨을 은밀하게 즐겼다.
후루마쓰의 관찰에 따르면 대체로 꽃나무의 파장은 특정한 패턴이 있는 듯 했다. 즐겁고 경쾌한 음악, 어둡고 장중한 음악을 각각 들려주었을 때 꽃나무의 반응파장은 각기 달랐던 것이다.
1968년 미국의 여성과학자 도로시 레털랙이 호박에 고전음악을 들려주자 덩굴이 스피커를 감싸 안은 반면, 록음악을 틀어주었을 때는 덩굴이 벽을 넘어 달아나려 한 사실을 학계에 보고한 바 있는데 후루마쓰는 그러한 실험의 결과를 재확인한 것이다.
플라워텔레스코프는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진 조그만 결과였다.
후루마쓰는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2년 전의 일이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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