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애 선문대 교수 |
문득 "벌거벗은 임금님이다."라고 소리친 용감한 소년이 생각난다. 최근 사회의 여러 이슈들을 살피다 보니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동화가 떠오른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임금을 보고 그저 벌거벗었다고 말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 대한 대체적인 해석은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한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인공 소년의 순진함이나 용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마무리가 되며 우화 해석의 전형을 보여준다. 언젠가 진실은 반드시 진실대로 밝혀질 수밖에 없다는 우리 삶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가장 지식수준이 낮거나 지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소년에 의해서 사회의 허세와 위선이 드러나기까지 임금 이하의 재상들, 학자와 같은 지식인들, 평범한 어른들까지도 결국 자기를 부정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용감한 소년의 이른바 커밍아웃으로 현명한(?) 어른들을 타락한 세계에서 구해낸다. 그러나 그동안 타락했던 그 왕국에서의 자기 부정은 결국 스스로의 삶의 비인간화를 초래하여 정상적인 삶의 영위를 어렵게 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현실과 타협하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것 같지만 그 생활 속에서 자기 모멸감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컸으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점점 진위를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을 활용한 정보 추천시스템은 우리에게 매우 빠르고 편리하게 개별적인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편리한 서비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결국 이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정보의 획득에 있어서의 편리함을 제공하여 사람들을 능동적인 입장에서 수동적인 입장으로 변화시키고, 결국 사람들은 시스템에 의해서 노출되는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진위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결국 더 실제와 같은 허위 사실을 실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는 모사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라는 저서를 통해 더 이상 모사할 실재가 없어지게 되면서 모사한 이미지가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티(초현실)가 만들어진다는 이론을 주장하였다. 때론 일부 사람들이 전략적으로 만들어내는 허위들이 최근에는 더욱 실재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도 이와 같은 경우일 것이다. 팩트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전달해야 하는 언론을 장악하려 했던 여러 정황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언론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가에 대한 부분도 의문이다. 소위 여론을 이끌어가는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었다고 얘기할 용기와 균형감, 그리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지식인을 필요로 한다. 수단이나 기능으로써의 지식을 지닌 지식인은 한계를 가지기 마련이고 그런 지식을 지닌 지식인은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오류와 부작용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은 맑은 영혼에 깃들어야 하고, 지식인은 지식을 쌓는 것 못지않게 영혼을 맑게 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현실 사회의 권력과 부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는가? 자아성찰을 게을리 하며 진실을 감추거나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사회의 그릇된 부분을 개선하려는 비판적인 지성을 상실했던 것은 없었는가?
▲정영애 선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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