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원이 라이덴 연구소에서 흥미를 느낀 점이 있었나보다 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전공도 다양한 여지를 두고 싶다고도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보는 식견에 따라 고정관념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면서 마탁소는 웃음을 살짝 머금었다.
하지만 마순원이 일본의 나리코와 산타블루 연구소의 조형준에게 보낸 편지는 간단치가 않았다. 조형준에게는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냈다.
'(전략)
네덜란드 라이덴 연구소에 와서 과학적 지식에 물을 부으면 부을수록 붓자마자 새어버리는 이 허무함은 어디서 메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주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리라는 저의 생각에 변함은 없습니다마는, 저는 그만 우주에 도전하는 로켓을 쏘아 올리기도 전에 저의 집 지붕으로 올라가는 사다리에서 먼저 떨어져 죽을 것만 같은 왜소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연약한 한포기 풀에 나의 기운이 당하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씨름해 보고자 했던 한포기 풀은 한 손가락으로도 뽑아 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저는 저의 온몸으로도 그 풀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제가 감당하기에 풀은 더욱 더 질겨져만 가는데 저는 그 이유가 너무나 두려운 것입니다...
자연과 과학의 세계가 그토록 광대한 줄 이제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후략)'
그리고 나리코에게는,
'후루마쓰 선생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요즘 가끔 꺼내 봅니다.
느낌이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우주란 광대하게 먼 천문학의 세계만이 아님을 저는 조금씩 깨닫고 있는 느낌입니다.
떨며 땅에 떨어지는 붉은 꽃잎 하나, 가냘프게 서 있는 한 그루의 갈대 속에서 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생명의 신비와 심오함을 우주의 깊이와 중량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절대의 존재가 저기 저 멀리, 아니 바로 가까이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후루마쓰 선생님은 무엇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까?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나리코씨, 한 달 뒤 한국에 가면서 일본에 다시 들리고 싶습니다.
나리코씨와 후루마쓰 선생님을 뵈올 수 있을까요? '
그가 쓴 내용은 딱히 나리코에게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후루마쓰에 대한 관심 또한 더욱 커져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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