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루뚝마을은 고요함 그 자체고 가만히 명상을 하면서 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판공초와 마찬가지로 동행을 섭외해서 출발하였다. 하지만 판공초는 1박2일 이였지만, 누브라벨리는 2박3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로가 있다는 곳(5600M)을 지나고 암벽 > 설산 > 초원 > 사막을 거치면 어느 순간 도착해 있다.
도착하면 끝이 없는 밀 들을 볼 수 있고 저 멀리 K2산을 볼 수 있다.
▲ 누브라벨리로 가는 길 5600m 산 위에서 한 컷, 매우 춥다. 그리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다. |
▲ 뚜루뚝 마을에서 바라본 전경 |
원래 소소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 이였으나, 최근 외부인들의 잦은 방문으로 인해 아이들이 외부인만 보면 돈이나 초콜렛을 달라고 쫒아온다. 이를 보면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곳은 채식 문화라 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 나도 원래 채식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것이 정신건강에 해로울 것이라고 이때는 알 수 없었다.
다리를 건너 위로 올라가다 보면 뷰가 좋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아침,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하루 700루피로 해준다고 해서 여기서 머물기로 하였다.
드디어!! 기대했던 저녁식사 시간이 왔다. 이 곳은 민트가 유명한지 식사전에 민트티를 꼭 제공해준다. 한국에서 비싸서 못 먹는 민트를 여기서 실컷 먹다니!!
8시에 식사를 준비해 준다던 그대.. 역시 인디아 타임 ㅎㅎ 1시간이 지나니 나왔다. 카레와 짜파티(한국식 또띠야와 비슷함), 시금치로 추정되는 묽은 정체불명의 반찬과 콩이 나왔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하지만 동행들은 별로였는지 근처 식당으로 간다고 하였다.
이 마을은 7~11시 사이에만 전기를 쓸 수 있으며, 11시 정각이 되면 마을의 모든 불이 정전이 된다. 10시50분쯤에 옥상으로 올라가 정전이 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려고 준비하였지만, 타이밍을 놓쳐 아쉽게 촬영하지 못 하였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긴 채 내일을 위해 잠을 일찍 청하였다.
인도에서 밤에 특별히 할 것이 없어서 그런지 나는 항상 11시 전에 잠을 자는 바른생활을 하고 있으며, 아침 일찍 일어 날 수 밖에 없다. 현지화가 된 것일까? 덕분에 몸도 건강도 좋아지고 있다.
다음날 7시에 눈을 뜨고 밖을 바라보면 정말 고요함 그 자체이다. 또한 청각에 집중하면 흐르는 물 소리와 새 소리 밖에 안들린다.
▲ 이 곳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명상을 하며 힐링을 했다. |
아침에 채식을 하고 지도를 보며 마을 깊이 들어가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지도에 표시된 곳이 안 보인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한테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이상한 방향으로 알려주는 친구들, 결국 고생 끝에 찾은 '워터밀'과 '로컬 숄 메이커' 마치 보물찾기를 한 기분이었다.
▲ 워터밀. 물을 저장하는 곳이다. |
▲ 숄 메이커. 의류들을 수선하고 만들 수 있다. |
▲ 아이들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
어두워지기 전 묘지가 보이는 방향으로 꼭대기에 있는 사원에 가보라고 하여서 올라 가 보았다. 이 곳에선 뚜루뚝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뚜루뚝 마을이 지도를 펼친 듯 한눈에 잡힌다. 노을이 질 때 보면 더욱 멋있을 것 같다. |
이번 저녁은 제 시간에 나오긴 했지만... 또 콩과 알 수 없는 반찬이 나왔다..
확실히 채식을 2일 이상하면 사람이 미쳐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이곳에 올 때 책과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용품들을 모두 여행사에 두고 왔다.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팀원들은 20,30,40대 다양한 연령층으로 있었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정말 소소하고 유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떠들었던 우리들. 리얼 현지인이 된 것이다.
다행히 팀원중에 곧 한국에 귀국한다고 가져왔던 라면의 봉인을 풀은 그녀 정말 고마웠다. 아마 이제까지 먹었던 라면 중 최고였을 것이다.
▲ 오랜만에 먹는 한국 라면, 인스턴트 음식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
다음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뚜루뚝 마을을 떠나 레로 가는 도중 '디스킷'이라는 사원에 들려 사진 촬영을 하였다.
▲ 디스켓 사원의 모습, 많은 역사가 담겨져 있다. |
#현지 가족들과의 인연, 정 들었던 마날리 그리고 안녕
5일 연속으로 투어를 갔다 와서 그런지 피로가 몸에 쌓여서 며칠정도는 숙소를 이동하여 쉬기로 하였다. '고탈'이라는 가정집으로 옮겨 홈스테이를 하였다. 숙박 가격이 저렴하고 가족들이 전부 친절하며 티와 음식을 부담 없이 제공해줘서 나도 보답을 표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밤에 레의 모든 전망을 볼 수 있는 사원에 올라가서 추억의 사진을 남기고, 다음날 아침에 시장에서 장을 봐서 한국음식도 홍보 할 겸 그들을 위해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찜닭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불도 약해서 음식을 만드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투자되었지만 내가 만들어본 찜닭 중에 가장 맛있었다. (사실 간이 2% 부족해서 라면수프 투입함 ㅎㅎ..)
▲ 레에서 유명한 사원중 한 곳, 캄캄한 밤에 굳이 위험을 무릎 쓰고 올라간 가치가 있었다. |
▲ 있는 재료 없는 재료 총 뭉쳐서 만든 나만의 간장찜닭. |
그렇게 완성된 찜닭을 가족들과 야무지게 먹었다.
인도에서는 닭을 구워먹지 찜으로는 먹질 않아서 그런지 아주 좋아하였고 닭에 간이 잘 스며들었나, 살 한 점도 없이 뼈 빼고 다 먹어치웠다.
동행하였던 여자 디자이너 분께서 이제 필요가 없다며 슬리핑백하고 츄리닝 바지를 주고 가셨다. 사실 인도 올 때 큰 침낭을 들고 와서 쓸데없이 크고 무거워 지금까지 시련을 주었던 나에게 엄청난 후원을 해준 것이다. (디자이너 님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 날 전에 쓰던 침낭을 현지 가족들에게 전달해주고 '아미고'에서 마지막 한식 만찬을 채운 후, 다음 종착지인 '스리나가르'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였다.
'기억'에 사랑과 시간이 더해지면 '추억'이 된다고 한다.
이제는 '추억'으로 남겨진 인도에서의 멋진 시간을 돌아보며, 언젠가 다시 만나볼 그 날을 기대해본다.<끝>
중학교때는 반려견과 파충류 매니아였고, 진로를 NGO단체인 월드비전에서 국제구호활동가로 일하고 싶어서 고교시절 아프리카 아동 2명과 결연을 맺고 주말 택배알바를 통해서 월3만원씩 후원을 하던 중 아프리카 스터디투어에 참가하여 아동들을 직접 만나고 오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웹툰활동으로 창작품 '녹지 않는 세상'을 연재했고, 2학년 때는 지구촌행복나눔투어에 참가하여 캄보디아 시골학교아동을 위한 자전거와 암퇘지보내기 모금 및 스태프 활동에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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