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새마을 운동 소개했다가 공안국에 불려가기도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새마을 운동 소개했다가 공안국에 불려가기도

19. 온몸으로 춤을 추는 소수민족 와족

  • 승인 2017-10-05 23: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인터넷에서발췌2530
사진=인터넷에서 발췌


#컵 없이 돌려먹는 술잔

소녀 곁에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부끄러운지 아버지 뒤로 몸을 감춘다. 소학교 4학년 치고는 키가 조금 작아보이는 소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보통 예쁜 아이가 아니다. 큰 눈에 짙은 속 눈섭, 거무잡잡한 얼굴색이지만 귀여움이 가득하다.

한참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나이건만 원인도 모르는 무릎통증으로 등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내일 다시 올 때는 갖고온 약들을 챙겨주리라 마음 먹고 그 집을 나왔다. 주인은 끝내 붙잡고 그냥 돌아가면 섭섭해서 어쩌냐며 대나무통에 담겨있던 술 한 잔을 따른다. 좁쌀 비슷한 잡곡으로 빚은 술인데 와족들만의 독특한 농주다. 알콜도수가 10도 내외의 낮은 술이지만 이것도 많이 마시면 취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루종일 마치 냉수 마시듯 심심하면 마시고, 손님이 와도 먼저 이것부터 내놓는다. 어떤 집에선 길고 둥근 대나무통에 이 술을 가득 채워놓았다가 몇 사람이 돌아가면서 한 모금씩 마셔대기도 한다. 이 사람 저 사람간의 간염 같은 전염병 보균자가 있다면 피할 방법 없이 전염될 처지다.



金서기가 나를 안내한 두 번째 집 역시 실내가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안에서 두 여인이 깔깔깔 무슨 얘기인지 재밌게 떠들고 있었다.

젊은 여인은 실을 짜고 있었고, 나이 든 여인은 옆에서 말 동무가 되어주는 듯한 모습이다.

곧 알게 되었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였는데 마치 친정 어머니와 딸처럼 다정스럽기만 하다. 시어머니는 눈 뜬 장님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52세라고 하는데 마치 70대 노인처럼 보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좋은 환경을 갖고도 누리지 못하는 이들 소수민족들이기에 평균 수명이 55세 정도 밖에 되지 않을만큼 조로(早老)하고 또 잔병이 많다. 우리가 들어서자 둘의 얘기가 그치면서 젊은 여인이 벌떡 일어나는데 가만히 보니, 도착하던 첫 날 벼락키스를 해오던 여인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만한 나였는데 그녀는 마치 십년지기라도 만난 듯 반긴다.

金서기의 설명대로라면 이 할머니(?)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아들은 4년전에 돈 벌러간다고 대도시로 나간 후 소식이 없다고 한다.



#며느리의 꿍심

이미 결혼해서 아내까지 둔 아들이건만, 결혼 1년 만에 아내를 시어머니와 단 둘이 살도록 내버려둔 채 떠나버리고 며느리는 생과부가 되어 이제나 저제나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밑으로 딸이 하나 있지만 그녀 역시 대도시에 나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매 달 꼬박꼬박 200元씩을 보내주는 효녀라고 칭찬을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유일한 수입은 딸이 보내주는 월 200元이 전부라는 얘기가 된다.

농사를 지어서 겨우 겨우 두 식구 먹는 것은 해결이 된다고 하며, 며느리가 실을 짜고 또 어쩌다가 농장에 나가 차잎도 따면서 몇 푼이라도 번다고 하니까 참으로 기특하고도 대견스런 며느리가 아닐 수 없다.

등받이도 없이 대나무로 엮어 만든 의자를 권하며 앉자마자 예의 그 농주를 따라준다. 여인은 내 곁에 바짝 닥아 앉으며 코맹맹이 소리를 하는데 명량한 것인지, 맹랑한 것인ㄹ지 분간이 안된다. 더듬 거리며 보통화(普通?)를 구사하는 그녀는 쉴새없이 질문을 쏟아붓는다. 한국 여인들은 전부 미인이라고 하던데 사실이냐? 한국 남자들은 모두 당신처럼 멋지게 생겼느냐? (이 여인 보게! 늙은이를 놓고 놀려먹자는 심사인가?) 한참을 떠들더니 진지한 낯빛을 하고는 부탁이 하나 있다고 한다. 무슨 얘기냐고 하니까. 대도시에는 큰 회사도 많고, 큰 공장도 많이 있지 않느냐. 자기를 어디든지 좋으니 취직을 시켜주면 고맙겠다는 것이다. 먹고 작고 한 달에 300元만 주면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다면서 비록 여자지만 힘도 장사라고 자랑을 한다.

시어머니를 홀로 놔두고 어딜 가겠다는 얘기냐고 되묻자 시어머니는 자기가 없어도 혼자 밥 해 먹고 빨래하며 못하는 게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어머니에게 그렇지 않느냐고 확인까지 시키려 든다. 그럼 남편이 돌아올 터인데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이젠 돌아와도 정이 떨어져서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짐짓 화를 내는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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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넷에서 발췌
#뜻하지 않은 여인의 술공세

그날 저녁이였다.

여인은 내가 묵고 있는 金서기네 집으로 닭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이곳에선 닭값이 제법 비싸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중 닭 정도면 한 마리에 30元 정도 한다.) 무척 부담스러웠다. 金서기는 넉살좋게 덥썩 받아가지고 뜨거운 물과 함께 뒷뜰로 사라진다.

그리고 10분쯤 지나자 잽싼 솜씨로 닭을 잡아가지고 나타났다. 비록 막소주이지만 술은 주인이 준비하는 눈치다. 객군들이 한 명도 없이 셋 만의 술판이 벌어졌다. 이미 여인의 주량은 알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잔을 비우는 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예의 취직 부탁이다. 나로선 이보다 더 난감한 일이 없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 시골을 떠나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무슨 수로 30대 여인을, 그것도 가정주부를 취직시켜 준다는 말인가.

무조건 거절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자신도 없는 일을 대답할 수도 없으니 나역시 애꿏은 술잔만 비울밖에. 金서기는 화장실 가는 척 슬그머니 나가더니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인은 더욱 내 곁으로 닥아앉으며 야릇한 시선을 보내온다. 그러더니 은근슬쩍 내 어깨에 기대는 것이 아닌가.

앗차! 이거 큰일 나겠는 걸.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며 그녀를 뿌리치고 일어섰다. 밖으로 나가다가 옆 방을 들여다보니 金서기는 큰 대자로 누워서 코를 골고 있다.

소변을 보고도 다시 들어갈 엄두를 못내고 있는데 여인이 나오는 게 보였다. 그녀 역시 소변생각이 있었던지 뒷 쪽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조금 후에 들려오는 소리는 웩 웩 하며 음식물을 토하는 것 같았다. 부엌에 가서 물 한 바가지를 떠 들고 뒷 쪽으로 가보니 그녀는 주저앉은 채 아직도 토하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잔잔히 등을 두드려 주고 물바가지를 건네준 후 방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겁도 없이 마셔대더니만 끝모양이 좋지가 않다. 잠시 후 되돌아온 여인은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더니 침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잠을 청하는 눈치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이 여인의 행동이 바로 그 짝이다. 마을 사람 누구라도 이 광경을 보았다면 나와 여인과의 관계를 이상하게 볼 수 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학교선생들 술자리에 끼어

생각이 여기에까지 마치자 더 이상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고보니 갈 곳이 마땅치가 않다. 옆 방에는 집주인과 어린 딸이 자고 있으니 그 곳으로도 갈 수가 없다. 여인을 달래어 집에 돌려 보내야겠다 마음먹고 다시 들어가 침대 위의 여인을 흔들어 깨웠다. 끄응! 신음소리를 내던 여인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올려다 보러니 순식간에 두 팔을 벌여 내 목을 끌어 안는다. 아무리 벗어나려해도 힘이 장사인 그녀의 팔이 떨어지질 않는다. 엎치락 뒷치락 몇 번을 뒤친 후에야 그녀의 두 팔에서 벗어났다. 완전히 계획적이다.

술 마시다가 중간에 풀방귀처럼 새 나가 딸 아이 방으로 가버린 金서기며, 연거퍼 술잔을 비워내며 코맹맹이 소리를 연발하던 여인의 행동 모든 것이 나를 유혹하기 위한 계획임을 느낄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 천천히 학교쪽으로 내려갔다. 사무실에 불이 커져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거기서도 선생들끼리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무척 반긴다. 이미 술판은 파장에 이른 것 같았는데 나를 위해 또 새 술병을 딴다. 남자가 둘 여자가 둘이었는데 여자들은 학교 선생이 아닌 같은 마을 자모들이라고 했다.

남편은 어디다 방치하고 이 젊은 여인들이 학교까지 찾아와 밤 늦도록 술타령인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주는대로 받아 마시다보니 제법 취기가 돈다. 그리고 쏟아지는 졸음. 의자에 앉은 채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눈을 떠 보니 한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술판을 벌였던 자리도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누군가가 두툼한 잠바를 내 어깨에 덮어주고 간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오전 6시가 막 넘어서고 있다.

드르륵 밀문이 열리면서 수위 아저씨가 들어온다.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눈치다. 서둘러 金서기네 집에 돌아오니 여인은 언제 나갔는지 그림자도 비치질 않는다.



#와족 민병대원

생각할수록 고약한 여자다.

金서기에게 엊저녁은 네가 실수한 거다. 여자에게 술을 그렇게 먹여도 되는 거냐? 그리고 이 방에 재울 생각은 무슨 심보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닥달을 했다.

그 역시 미안했는지 뿌하오이스, 뿌하오이스(不好意思,不好意思,미안하다)를 연발하며 눈길을 피한다.

아침식사를 사촌 형네 집에서 하기로 했으니 같이 가자며 앞장을 선다.

10여분쯤 거리에 있는 사촌 형이란 사람은 와족들 중에서 돋보일 정도로 장대하고 우람차게 생겼다. 군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신분은 일종의 민병대였다. 미얀마(이곳에선 멘땐이라고 부른다)와 가까운 지역이고 마약 밀매가 뿌리깊은 곳이어서 정부당국에서도 요주의 지역으로 손꼽고 있는 곳인지라 매 월 백 위안의 봉급을 주고 현지인 가운데 민병대원을 채용, 감시와 보고를 하게 한다고 한다.

그 역시 이곳 와족촌 주민들이 행여나 마약 밀매꾼들과 접촉하거나 현혹될까봐 경계를 늦추지 않는 눈치다. 어쩌다가 외지인이 나타나면 긴장을 풀 수가 없다고 했다.

아침시간인데도 만나자마자 예의 그들 민속주인 농주를 권한다. 물론 대나무 통 안에 가득찬 술인데 먼저 자기가 몇 모금 마시고는 내 앞으로 내민다. 안마시면 큰 결례가 되는 것이기에 나 역시 한 모금 마시는 척 하고 金서기에게 돌렸더니 그는 단숨에 꿀꺽 꿀꺽 마신 후 원래의 사촌 형에게 돌린다.

이렇게 몇 순배가 도는 사이 부인이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말은 식탁이라 했지만 밥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닥에 죽통과 야채 두 가지가 전부다.

우리나라 세수대야만한 용기에 옥수수와 두 세 가지 이름 모를 잡곡을 섞어 쓴 죽이 가득 들어있다. 이들 대부분의 주식이 죽이고, 그 내용물 가운데 이 정도 몇 가지 잡곡이 들어갔다면 최고 일미의 죽으로 친다고 한다. 귀한 손님이 오거나 가족의 생일이 있는 날에 먹을 수 있다는 죽이 그날 아침의 메뉴였다.

모친과 아내가 자리를 같이 했고 아들은 소학교 6학년 생으로서 이미 등교하고 없었다.



#한으로 점철된 와족 역사

金서기의 사촌형은 제법 아는 것도 많았다. 한 많은 와족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한숨을 푹푹 쉬기도 한다. 이들의 조상이 살고 있는 미얀마라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라면 자기들이 중국의 소수민족이지만 심한 괄시는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의 얘기도 한다. 이들의 중국 이민사는 수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지만, 한 번도 맘 편히 살아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는 이들의 얘기.

여타 민족으로 인해 수난당하며 고산지대로 주거를 옮겨야했던 슬픔의 역사를 갖고 있는 민족이다.

지금은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힘입어 대도시로 진출하기도 하고 아랫동네로 내려가 식당을 비롯한 자영업도 많이 하고 있다지만 타고난 피부색이며 왜소한 체구 때문에 기를 못펴고 살고 있다는 안타까움도 토로한다. 그래도 희망은 크다.

우선 2세대의 교육열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공부를 시켜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 중국내 여타 민족에 눌리지 않을 인재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 이들 와족들의 희망논이다.

그래서 현재 타지 중학교에 7명, 고등학교에 4명, 전문학교에 1명, 4년제 대학교에 1명 등이 유학중이란 자랑도 잊지 않는다.

이곳 영덕촌에만 이 정도이고, 다른 지역(와족은 운남성에만 있다.) 몇 군데 와족촌의 경우도 거의 엇비슷한 유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까지는 그 집안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대학교부터는 민족 공동의 자존심이라고 판단, 부락에서 기금을 만들어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한 때 우리네 농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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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넷에서 발췌
#할 일 없이 시간만 죽이는 사람들

피부가 검기 때문에, 체구가 비교적 왜소하기 때문에 한족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와족(?族)들의 비애는 그들의 생활상에서도 잘 나타난다.

많은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갔지만 광동성이나 여타 대도시는 어림도 없고, 고작해야 쎈(?)정부가 있는 지역의 식당이나 공사판, 공장 등이 고작이다. 내가 묵고 있는 金서기 역시 부인이 도시에 나가 식모살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어렵더라도 부부가 오손 도손 같이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까 다른 방법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공부시키려면 둘 중 누군가는 도시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자기는 이 부락의 공산당원으로서 서기를 맡고 있기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다고 덧붙인다.

어떻게 보면 낙천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예 희망 같은 것은 포기하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자들 대부분이 중요한 일거리가 없다보니 대낮부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고 농주나 마셔가며 아까운 세월을 죽이고 있다.

하루는 큰 마음을 먹고 金서기와 마주 앉았다.

"이 부락에 30~40대 젊은이가 몇 명쯤 되느냐?"

"약 20여 명 될 거다."

"내가 오늘 그들에게 술을 한 잔 사고 싶은데 불러 모울 수가 있는가?"

"갑자기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고 그동안 이 부락에 와서 좋은 것도 많이 보고, 또 느낀 것도 많고 해서 그냥 술 한 잔 대접하고 싶은 것뿐이다."

"연락은 해 보겠지만 몇 명이나 모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부락에 닭 한 마리 값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다. 닭 한 마리면 3명 쯤 먹을 수 있지 않겠나? 몇 명이 올 수 있는지 인원수에 계산해서 닭을 사오면 내가 값을 지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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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넷에서 발췌
#술 파티 끝에 일장연설

이렇게 해서 그날 저녁에 열 일곱 명의 젊은이들이 모였다. 장닭 8마리가 풍성한 안주거리가 되었다. 한 마리에 30元씩이라며 조금 비싸게 준 것 같다고 투덜거리는 金서기였지만 내 입장에선 미안할만큼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소주 수 십 병이 비워졌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민족답게 술이 한 잔 들어가기가 무섭게 한 사람이 선창을 하고 다 같이 합창으로 이어진다.

두어 시간 흥겹게 보낼 즈음 내가 좌중을 진정시키며 자리에 일어 섰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얘기를 풀어 놓았다. 한국의 농촌실정을 소개했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너희들 보다 더 가난한 곳이 우리네 농촌이었다. 그러나 농춘 새마을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살기 좋은 농촌, 부유한 농촌으로 바뀌게 되었다.

새마을 운동이란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너희들 자신이 너희들 부락의 환경을 바꾸고, 고소득 작물을 재배해서 경제 부흥을 일으킨다면 정부에서도 적극 지원해 줄줄 믿는다.

너희들 스스로가 먼저 자조, 자립 정신이 없는데 누가 도와 주겠느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한 명이 불쑥 내 뱉기를 "돈이 없는데 환경을 어떻게 바꾸며, 이런 산간 지방에 고소득 작물이 뭐가 있겠느냐?"며 비아냥거린다.

그러자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며 그에 맞장구를 처댄다. 은근히 부아가 치솟았지만 참고 있으려니 金서기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러댄다.

"너희들 조용히 해! 지금 이 분이 너희들한테 무척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무슨 수작들이야. 내가 듣기에 꼭 들어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너! 너! 너! 내일 오전 10시까지 이리로 와"하며 사뭇 명령쪼다.

한국의 농촌 새마을 운동을 소개하고 권유했던 일 때문에 나는 훗날 공안국에 불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어느 소수민족 촌에 들어가든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샅샅이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바로 그 사건 때문이었다.

와족촌은(다른 소수민족도 마찬가지지만) 지금도 연락이 이어지고 있고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 마을 안 길이 정돈되고, 가축들을 한 쪽에 가두어 기르며, 고지대 밭을 이용하여 약초재배를 시작,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물론 부락민들의 마인드가 바뀌기까지는 촌장과 서기의 노력이 많았으며, 무려 3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가능했던 일이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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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 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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