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서울역 추석 귀성객들.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앞에 모여들던 모습은 이제 추억의 모습이 되었다.사진=네이버 블로그 '보물섬' |
[추석 좋은글] 서울역
서울역
-고은 시
서울역에는 고향이 있다
섣달 그믐이나
추석 무렵이 오면
서울역 마당은
온통 내 고향이다
두툼한 합섬옷 한 벌
에누리 에누리 신발 한 켤레
정종도 두 병이나 사들고
서울역에는 고향이 있다
못사는 사람
못난 사람에게는
고향의 보리밭이 짙푸르다
질긴 상수리나무 잎새
이듬해 봄까지도 질 줄 모른다
서울역에는 고향이 있다
고향은 꿈도 아니다
떠난 고향은 현실도 아니다
다만 물때의 물 가득히
내 고향이다
서러운 사람
원통하고 절통한 사람
달동네 산동네 타관살이에게는
고향이
내 몸뚱이보다 어둠보다 뚜렷하다
서울역에는 고향이 있다
목쉰 사투리 덤불처럼 우거지며
서로서로 닮은 사람
경부선에는 문둥이
호남선에는 비 나리는 호남선
서로서로 모르는 얼굴도
지난날 정든 땅
5일장 7일장 장꾼의 아들딸이다
서울역에는
강남 터미널에는
여느 날은 무작정 서울이지만
추석이 오면
내 고향의 더운 국밥이다
내 고향이다
한 해에 한두 번씩
서울역은
내 고향이다
내 고향 해질녘 산등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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