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함께 한다'는 의미가 새롭게 느껴졌고 그 또한 행복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함께 식사하는 것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수년전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면서 일어나는 것들을 개그로 엮어 인기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하는 말 중에 "밥 묵자!"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유행어가 되었던 "밥 묵자!"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밥을 먹는 행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이 말 한마디로 다른 것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또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함께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살기 위해,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적어도 내게는 밥은 먹는 것이 갖는 의미는 어찌 보면 참 신성한 의식과도 같습니다. 조금은 과장된 것 같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자들이 내게 주례를 부탁할 때, 신혼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수저를 선물합니다. 그리고 그 수저의 사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합니다. 누군가 '왜 수저를 선물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래 전에 이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어 발췌합니다.
조금은 지난 감이 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수저의 의미가 있어 다음에서 그 때 답으로 썼던 답글을 소개합니다.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수저는 밥을 먹을 때 쓰는 도구입니다. 물론 수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수저는 밥을 먹을 때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만약 수저가 없다면, 밥을 먹는데 참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특히 식습관이 국과 밥 등으로 국물이 많은 우리 한식을 먹는데 수저가 없다면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서양 음식과 같이 스프가 따로 나와 역시 숟가락으로 스프를 먹어야 하지만, 스프는 따로 먹기 때문에 보기에도 불편할 수 있지만 그냥 스프그릇을 들고 마실 수도 있습니다. 굳이 숟가락이 없어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음식을 먹을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다 사용됩니다. 그래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쳐서 '수저'라고 따로 명칭을 붙였나 봅니다. 물론 서양음식을 먹을 때 쓰는 나이프와 포크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 '수저'와 같이 정감이 가지는 않습니다.
나는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사용하기보다는 주로 젓가락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국을 먹을 때도 먼저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건저 먹은 후에 나중에 국물을 따로 먹습니다. 그러니 밥을 먹으면서 숟가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누룽지를 먹으려면 반드시 숟가락을 사용해야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수저는 숟가락 하나도 아니고 젓가락 하나도 아닌, 숟가락과 젓가락이 합해져야 '수저'가 됩니다. 둘이 합해져야 하는 것이 수저 말고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용도를 위해 서로 다른 것이 모여 두개가 마치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 바로 '수저'입니다.
이런 수저를 나는 매년 꽤 많이 삽니다. 예전에는 은수저를 샀는데, 요즘은 너무 비싸 유기로 된 수저나 나무로 만든 수저를 삽니다. 이 수저를 내가 직접 쓰려고 사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이 수저는 내가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를 해야 할 경우, 신혼신부에게 주는 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수저 한 쌍에 나만의 의미를 담아서 선물합니다.
서로 다른 것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 합쳐 하나로 합해져야 한다는 의미가 그 첫 째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의미는 좀 다릅니다.
나 역시 결혼을 해서 살다보니, 의견이 다를 때도 있고 사소한 것으로 마찰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자존심 때문에도 그렇고 머쓱해서도 그렇고, 아무튼 화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이 수저를 꺼내서 같이 밥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이 수저가 서로에게 화해를 청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같이 밥을 먹은 후에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에게 미안함을 받아들이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갖는 함께하는 식사의 중요한 의미와 수저가 갖는 의미입니다.
이번 주말 다시 온 가족이 모입니다. 함께하는 식사의 행복을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혹 그 동안 불편했던 분이나 만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이번 주말 함께 식사하는 행복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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