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시지요.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국보 1호 숭례문이 전소 됩니다. 토지 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은 방화범은 창경궁 문정전 방화전과가 있는 사람이지요. 국민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문화재 관리 허점이 들어나고, 문화재청의 대처와 진화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논란이 있었지요. 2013년 4월 29일 복원 사업을 마치고, 2013년 5월 4일 다시 일반에 공개됩니다.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 정도 차는 있으나 때때로 문화재 훼손이 있었어요. 문화재를 무차별 파헤치거나, 아이들이 뛰어 놀았지요. 함부로 매만지고, 올라가 사진 촬영도 했어요.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 같이 빨랫돌로 이용하거나, 구들장, 다리 등 일상생활에 이용하기도 했지요. 문화재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부족, 무지 탓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문화재를 찾아 빛낸 사람도 많아요. 빼어난 우리문화유산 상당량이 아직 해외에 있습니다. 열심히 찾고 있거나 환수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들을 봅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청주 흥덕구에 1992년 개관한 '고인쇄박물관'이 있습니다. 세계만방에 최초 금속활자 '직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를 알리고, 인쇄기술과 인쇄역사 관련 자료보전, 과학교육의 장이기도 한 인쇄전문박물관이지요. 직지세계화 선언문에서 "직지는 금속활자를 발명한 창조적 가치, 지식 전달의 교육적 가치, 세계문명사적인 가치, 정보의 공유와 확산의 가치, 예술문화적 가치와 아울러서 우리 민족의 뛰어난 역량이 표현된 보물"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필자는 학창시절 세계 최초 금속활자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 독일)가 만들었다 배웠습니다. 처음 만든 책이 42줄 2단으로 인쇄한 42행 성서입니다. 적어도 10만개 활자를 주조, 1452년에 시작하여 1455년에 완성하였답니다.
직지가 이 역사를 뒤집습니다. 직지는 1972년 발견되는데요, 1377년 만들어진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밝혀집니다. 금속활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발견한 이는 엄청난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프랑스 내 대장간을 돌아다니며 활자 실험을 거듭합니다. 마침내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음을 국제 학계에 실증해 보입니다. 그 덕으로 '직지대모'라 불립니다.
역사학자 박병선(朴炳善, 1923.3.25 ~ 2011.11.22)박사. 1950년 서울대 사범대 졸업, 1955년 여성 최초 프랑스 유학, 소르본대학교와 프랑스 고등교육원에서 각각 역사학과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유학 동기가 '외규장각의궤外奎章閣儀軌'를 찾기 위함이었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 직지를 먼저 발견하고,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관 창고에서 의궤를 찾아냅니다. 비밀 발설 이유로 사직을 권고 받는데요. 1980년 사직 후에도 10여 년간 도서관 이용자로 등록, 의궤 목차와 내용을 정리합니다. 파리에 머물며 한국 독립 운동사 연구 등 한국 역사와 문화 진실을 밝혀내는데 처녀로 생을 바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대한민국 문화훈장(1999), 국민훈장 동백장과 제7회 비추미 여성대상(2007),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2010), 제7회 경암학술상 특별공로상과 국민훈장 모란장(2011) 등 수상. 〈조선왕조의궤〉, 〈한국의 인쇄사〉, 〈한국의 무속사〉, 〈한국의 역사〉,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등 저서가 있더군요.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기여한 공노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됩니다.
의궤는 2011년 대여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와 있답니다. 직지(2001), 외규장각의궤(2007) 둘 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입니다. 2004년 유네스코 직지상(Jikji Prize)도 제정합니다.
인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은 <무구광정대다라니경无垢光淨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입니다. 1966년 불국사 석가탑 해체·복원 시 탑신부 2층 사리함에서 발견되지요. 목판 인쇄본으로, 석가탑이 건립된 751년 이전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중수기와 함께 발견되어 제작연대에 논란이 있습니다. 더구나 중국이 자기네 인쇄물이라 주장,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먹은 물론 서체와 필법 등 모두 신라 것으로, 우리 유산이 확실하다고 한국 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최준식 교수는 저서 『한국문화오리엔테이션』에서 "문화수준이 최고여야 최고의 문화가 나온다"고 하더군요. 선진문화 의식이 있어야 으뜸 문화가 됩니다. 문화유산 보전과 문화 창달, 우리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이자 의무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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