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전야 인지, 찻잔 속 태풍인지 모르겠다. 충남도청이 옮겨온 내포 신도시 주민들은 출퇴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평균 두 차례씩 마주하는 서류 하나가 생겼다. '동절기 열 공급 차질이 우려 된다'는 열 공급 회사의 문서가 게시판에 걸려있다. '엄포 혹은 협박용'인 것도 같고, '실제상황'인 것도 같은 것이, '북한 핵미사일' 시험발사 소식과 닮았다. 실제 열 공급 중단 가능성이 작다고 보는지, 내포 주민들은 아직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렇다.
내용은 이렇다. '내포신도시 집단에너지 시설 공사 계획 승인 및 인가 지연으로 인한 동절기 열 공급 차질 예상에 따른 협조요청'이라는 제목의 서류다. 쉬운 말로 바꿔 보았다. '내포 신도시 주민들이 사용하게 될 따뜻한 물과 따뜻한 방을 위해 쓰일 열을 생산해 내기 위한 발전소 공사를 허락받지 못하고 있어, 추운 겨울을 알아서 대비하세요'라는 뜻쯤 되려나. 발전 사업자는 친절하게도 열병합 발전소로 불리는 공사가 지연될 경우 1만여 세대( 주택용 9272세대, 공공용 1191세대)가 겨울철 찬물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준다.
현재 임시보일러를 가동해 공급하고 있지만, 연말 준공예정이던 발전소 건설이 중단되면서 열에너지 제한공급 및 중단조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면서 원활한 열 공급과 대책 마련에 협조해 달란다.
뭘 협조해 달라는 거지?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게 뭐지? 그동안 SRF 방식의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동조하지 말라는 뜻인가? 한겨울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할 수도 있으니, 끓여서 사용할 큰 물통을 들여놓는 게 좋다는 뜻인가?
SRF(폐기물 고형연료) 방식의 열병합 발전. 쉽게 얘기하면 우리가 쓰다 버린 쓰레기를 태워 발전하는 것이다. 내포신도시 열병합발전은 SRF 방식과 천연가스(LNG)방식이 2대8의 비율로 적용될 예정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 건설 중인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는 100% LNG 방식이다.
초기 신도시 입주민들의 내락(?)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후 전입한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졌고, 충남도와 사업자만 사면초가에 몰렸다. 결국, 안희정 지사는 전면 재검토라는 입장 표명을 했고, 전력수급의 권한을 가진 산업부 장관과의 면담을 통해, 친환경에너지로 모두 대체할 방안을 찾아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비용과 행정적인 후속 대책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신도시 내 열 병합 발전소 건설은 중단됐고, 열 공급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앞서 얘기한 서류 한 장이 발전 사업자의 처지에서는 '정당방위'의 몸짓으로 항변하고 싶겠지만, 주민들에게 할 협박(?)이라면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발전 사업자 자신들도 법에 따라 진행해오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충남도에서 사업방식을 바꾸라고 하니, 답답한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자칫 그동안 투자해 놓은 막대한 돈이 날아갈 판이다. 그래도 주민들을 볼모로 한 배수진의 협상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 주민들의 공분만 높이는 꼴이다. 당장에라도 곳곳에 붙인 협박용 문서를 떼고, 충남도를 비롯한 관계기관과 대책을 연구해야 한다. 발전 사업은 공익적인 성격이 크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5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충남도의 실책이 가장 크다. 잘못된 첫걸음이 충남도의 신도시 에너지 정책의 발걸음을 계속 꼬이게 만든 셈이다. 안타까운 것은 지방분권을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쳐온 안지사가 중앙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는 꼴이 됐다. 후속대책을 빨리 내놓아야 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올겨울 찬물로 샤워하고 싶지는 않다. 설마가 사람 잡지 않길 바란다.
<최재헌 내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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