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길거리에서 즉석 인화되는 스티커사진을 한 번씩 찍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적절히 미화된 모습에 내가 원하는 대로 꾸민 사진이 바로 인화돼 나온다는 점이 인기를 끈 비결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지금은 인기가 조금 시들해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스티커사진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주는 초상화가의 캐리커처 역시 유명한 관광지라면 빠지지 않고 꼭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즉석에서 소설이 돼 나오는 것은 어떨까? 이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최초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댄 헐리다.
1982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미국 변호사협회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던 댄 헐리의 유일한 소망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번뜩 군중 속에 타자기를 들고 들어가서 그 사람들이 원하는 글을 즉석에서 써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1년 후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타자기와 접이식 의자만 들고 시카고의 미시간 거리로 나간다.
'60초 소설, 즉석에서 써드립니다' 라는 팻말을 세우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접이식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큰 타자기를 올려놓고 앉아있는 댄 헐리를 상상해 보라. 그는 그때의 기분을 '마치 알몸을 하고 거리에 나앉은 것처럼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고 회상한다.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어 60초 소설을 써주겠다고 말하면 무시나 비아냥거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나이든 남녀 한 쌍이 다가와 '정말 신기한 일'이라는 첫 60초 소설을 쓰게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다. 이 날이 인생의 전환점이 돼 그는 전 세계 단 한사람 밖에 없는 '60초 소설가'가 된다. 그가 16년 동안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 완성한 소설은 무려 2만2613편에 이른다.
만약 60초 소설이 의뢰인의 이야기를 단순히 받아 적기만 했다면 이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우화의 형태로 의뢰인에게 교훈을 주기도 하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소설 속에서 실현해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강경한 어투로 의뢰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해낸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과 철저히 의뢰인을 위한 '60초 소설'이 주는 심리적 위안과 공감이 이 소설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인기비결은 아니었을까.
'60초 소설'이 정말 60초 안에 완성됐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의뢰인의 삶 중에서도 특별한 경험을 소재로 해 한정된 시간동안 즉석에서 완성된 이 단편들은 짧은 글속에도 많은 의미와 여운이 담겨있다. 그 중에서도 선별해 이 책에 실린 60여 편은 모두 다른 제각각의 삶이 담긴 이야기로 독자에게도 많은 교훈과 울림을 준다. 여기에 류시화 시인의 깔끔한 번역이 더해져 번역소설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문체로 재구성 돼 읽는데 즐거움을 더해준다.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부담 없이 읽기 좋다. 특히 글을 쓰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간결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단편들을 술술 읽다보면 어느새 펜을 들고 아무거나 끄적거려 보고 싶어진다. 물론 한정된 시간에 짧은 글로 감동을 주는 댄 헐리의 경지에 이르려면 상당한 내공이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화려한 기교 없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저마다 한편의 놀랍고 감동적인 소설이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이민주(대전 서구 평생학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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