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꽃박람회의 준비도 같았다. 당초에 세워두었던 타임 테이블보다 지연되기 일쑤여서 관계자들은 속으로 애를 태웠다.
'디자인 홀딩 2004사'의 김광선 사장도 그와 같은 초조감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꽃의 5감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조정재 자문역과 미국과 프랑스를 다녀왔지만, 생각같이 딱 떠오르는 전시내용이 서질 않았다.
조 자문역과 김사장에게 한 가지 성과가 있었다면,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의 앙리 마르 식물원장과 나눈 대화였다.
앙리 마르 원장은 하루에도 수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일일이 다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의례적으로 외국에서 대사관등의 연락으로 접대하지 않으면 안 될 귀빈이 있으면 자기 사무실로 모시고 차를 대접하고, 직원에게 안내를 해주도록 한 다음에 선물로 와인을 한 병 선물하는 것을 하나의 관례로 삼았다.
조정재 자문역과 김광선 사장도 그러한 게스트들 중의 하나였다.
한국의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파리관장에게서 잘 부탁한다는 전화와 이메일이 왔기 때문에 관례상 어긋나지 않도록 의전에 신경 써 줄 것을 식물 담당 퀴에르 이브 여사에게 아침 미팅 때 당부를 해놓았던 것이다. 스케줄대로 방문한 한국인들은 통역을 대동하고 왔다.
그들이 관심은 아카데믹한 것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어떤 전시회를 하는데 적절한 전시물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고, 그에 관한 자료가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가장 전형적이고 외국에서 협조를 구하는 가장 흔한 내용이다.
전시회나 학회 행사에 공동 참여할 수 없느냐는 것이다.
이야기를 우선 들어주기로 했다.
그들의 요지는 이러했다.
"식물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증거가 될 만한 자료가 있습니까?
꽃이 본다는, 안다는, 냄새를 맡는다는 또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표출할 수 있는 전시가 가능합니까?"
하는 것이었다.
마르 관장은 엉뚱한 그들의 제의에 약간 당혹하였다.
학계에서나 여러 가지 저널차원에서 그러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박물관에서 그러한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내놓기란 어려운 것이다.
입증자체가 곤란한 것이다.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식물이 이러한 감각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혹은 믿기는 하지만, 그건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려운 주제라고만 생각하고 계십니까?"
마르관장은 말했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식물에게도 동물에게서 보이는 그러한 현상이 있다고 해서 동물과 같은 파라다임으로 감각이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문제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동물에게는 그러한 감각을 인지하고 식별하는 분명한 기능을 하는 두뇌가 있습니다.
식물에도 두뇌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식물이 보이는 그러한 현상은 동물이 보이는 감각과는 전혀 다른 별도의 메카니즘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본다, 듣는다, 느낀다라고 하는 표현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새로운 어휘가 필요할지 모르지요."
"그렇습니다.
그들에 맞는 어휘를 찾아내지를 못하였으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바로 그러한 개념을 찾고자 합니다만, 그건은 저희들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한 현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만 하신다면, 그에 상응하는 어떠한 자료나 증거 아니 현상자체만이라도 전시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듣고 있노라니 맹랑한 주문이었지만, 호기심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미모사와 같이 손으로 만지면 잎이 오그라드는 풀이 있다면 그건 접촉감각이 있는 식물로 전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접촉 감각은 식충식물같은 식물에서 볼 수 있지만, 후각이나 청각이나 그 외에 시각 또는 육감에 반응하는 식물의 예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찾기야 찾아 보겠습니다마는 그러한 방식에 따라 식물을 분류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왜 그러한 분류에 의한 식물의 표본을 찾으시려는 겁니까?"
"식물이 곧 사람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
인간이 활용할 수 있거나, 이용될 수 있는 대상으로 그들을 보는 것이지요.
이러한 생각은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동양에서는 그렇게 생각해 오지를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개념을 돌려놓고자 하는 것입니다."
"철학적이군요. 자연주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그렇습니다. 철학을 바로 잡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서구의 철학이 우리들의 사상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래야 될지는 의문입니다. 서구의 자연에 관한 사상이 지금 우리의 풍요를 가져다주었고, 또 우리의 위기를 동시에 만들어 내고 있으니까요.
다시 말해 하나 얻고 하나 빼앗긴 제로섬으로 개선된 것이 없죠.
무의미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바꾸어 주어야 할 것을 찾자는 것입니다. 철학입니다."?
"동양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인도나 또 다른 곳의 철학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시아에서는, 자연의 주인이 사람은 아닙니다.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물, 불, 철, 흙, 그리고 나무지요.
인간은 주인이기는 커녕 이들의 지배를 받는 피동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 다섯 요소를 존중하고, 이들의 성질에 맞는 세계를 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인간은 하잘 것 없는 순간의 객체이고 이들은 영원한 주인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나무를 보아도 우리는 이들을 자원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살기 위해 더불어 같이 있어야 할 존재라고 보았지요. 그들이 없으면 우리는 아울러 없다는 인식체계하의 자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우리요 우리가 그들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당연히 자연에 대한 갖는 인식관이 서구와는 정반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물이나 불이나 철도 느끼고 듣고 보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망설이지 않고 김사장이 답했다.
"그렇지요. 데카르트는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그는 틀렸습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고'
물론 데카르트의 말이 생명에 관해 한 말은 아닙니다.
인간의 실존에 관한 말을 한 것이지요.
굳이 비유를 한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위도 물도 흙도 다 생명이 있고, 그들은 살아 숨쉬고 있지요. 그들은 느낍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위합니다.
그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한다는 것을 보이고 싶은 것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나무가 주제가 된 것 뿐이지요.
어떻습니까, 저희들을 도와 주실 수 없겠습니까?"
마르 관장은 황당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대화를 중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느낌상 동양의 그 신비주의적인 종교인들의 말은 아니었다.
함께 저녁을 나누면서 그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식물로 다시 돌아가서,
식물의 그러한 감각이라는 것은 하나의 조건적 반사반응일 뿐 의식적인 감각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감각을 조절하는 중추기능이 없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물론 식물에 뇌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동물에 있어서도 뇌가 신체기능의 모든 걸 다 지배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무의식적 감각이 있지요.
예를 들면 본능이 있지요.
단세포 식물이나 동물, 바이러스를 생각해 보시지요.
뇌는 없습니다. 움직입니다. 살아갑니다.
그 살아가는 방식은 인간의 고도의 지능으로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의 고난도의 정교함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뇌가 죽으면 죽었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마는, 뇌 없는 생명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감각은 뇌 이상이 그 무엇이 아닐까요?
뇌가 있고 감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감각이 있고 뇌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 많이 있거든요. 진화론적으로는 감각이 먼저인 것입니다.
식물도 뇌는 없지만, 그렇다 해서 그러한 감각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어서 아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들이 없으면 아버지가 없는 것과 같은 어법이군요.
어쨌든 좋습니다.
저는 그런 논의가 전문은 아니니까요. 저희들이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인간의 5감 나아가 6감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각각의 감각에 반응을 보이는 꽃을 찾아주십시오.
냄새에 따라 꽃의 색깔이 변하다든지, 아니면 빛의 세기나 방향에 따라 확실히 반응을 보이는 꽃이라든가, 또는 접촉 뭐 이런 것입니다.
감정에 움직이는 꽃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일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러한 것이 있을까요?
반드시 꽃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현상을 관람객들에게 보일 수 있는 전시물이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연구해 보겠습니다.
장담은 못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군요."
앙리 마르 관장의 상상은 벌써 지구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식물학의 귀재라는 명성을 쌓으면서, 그의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꽃박람회에 걸맞는 꽃을 찾기란 상상의 검색이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미 아마존의 정글로, 아프리카의 사막으로, 뉴질랜드의 숲으로, 아시아의 오지로,유럽의 대학과 연구소로 그의 지식은 꽃의 네비케이터를 구하고 있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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