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만든 KTX-산천. |
그 당시 서울에서 인천까지는 일반적으로 12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열차인 증기기관차 모갈 1호의 등장으로 시간과 물리적인 거리감은 혁명적으로 단축됐다. 모갈 1호는 노량진에서 제물포까지 1시간 30분 만에 주파했다.
1899년에서 118년이 흐른 2017년, 시속 300㎞/h의 고속열차는 흔한 우리네 교통수단이 됐다. 경부선과 호남선, 장항선, 충북선 등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거리감을 좁힌 것은 철도의 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비록 수탈이라는 일제의 그림자에 발목 잡혀 있지만, 교통발전의 초석이 됐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다시 대한민국 철도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1894년 의정부 공무아문에 조성된 철도국은 최초의 공식 철도업무 수행기구였다. 일제의 간섭과 통치 속에서 철도국은 일본의 수탈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철도국에서 일본 직원들을 내쫓고서야 비로소 독자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1946년 서울~부산 경부선 열차 이름을 조선해방자호로 명명했듯이, 일제의 족쇄를 푼 한국 철도는 비로소 비상하기 시작했다. 1963년 철도청(초대청장 박영훈)이 발족 되고, 1972년 최초 전기기관차를 도입, 1998년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대전정부청사로 이전하게 됐다. 코레일과 철도공단은 2009년 대전역 뒷 편에 위치한 공동사옥 쌍둥이 빌딩에 입주했다.
한국철도 100주년이었던 1999년을 기점으로 철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낸다.
2004년 코레일의 KTX, 2016년 민간철도기업 (주)SR의 SRT가 등장하며 세계 철도 기술력을 선도하는 고속철도시대가 개막했다. 여기에 철도의 건설과 시공을 전담하는 준정부기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설립되면서 철저한 업무 분담으로 국민 안전과 서비스가 향상됐다.
1955년 통일호. 사진=코레일 |
철도의 역사는 오롯이 우리의 기술력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다. 일제의 오욕이 점철된 치욕의 역사 속에서 연꽃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라온 아픈 손가락이다. 해마다 9월 18일 철도의 날이 다가오면 기념일을 다시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는 이유도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하고 있다.
모갈 1호의 기적소리, 검게 뿜어진 기차구름, 창을 스쳐가는 세상이 낯설기만 사람들. 118년 전 그날처럼 5000만 국민들의 가장 빠른 발이 되어 전국을 누비는 철도는 오늘도 달린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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