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5일 장날은 학교도 휴일… 낚시 점퍼 덕에 구사일생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5일 장날은 학교도 휴일… 낚시 점퍼 덕에 구사일생

  • 승인 2017-09-15 16:41
  • 수정 2017-09-15 17:23
  • 김인환 시인김인환 시인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5일 장날은 학교도 휴일… 낚시 점퍼 덕에 구사일생



16. 고구려 후예로 밝혀진 소수민족 라후족(拉祜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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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곳에 도착 후 두 번째 열리는 장날이다.

매 주 금요일마다 열리는 장날은 우리네의 읍내장을 방불케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러한 고산지대에 열리는 장날이라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부락과 부락을 잇는 교통편도 없다. 그런데 그 전날인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 새벽까지 1백 여 대의 대형 화물차가 차례대로 이곳에 도착한다. 보통 5시간 이상의 거리에서 이곳까지 오늘 상인들이다. 그 옛날 우리나라에도 말마차나 소달구지를 이용해 이 지방, 저 지방을 순회하는 장삿꾼들이 있었다. 이곳엔 이동수단이 화물차로 바뀌었을 뿐 상인들의 지방순회는 똑 같았다.

새벽까지 천막이 완성되고 온갖 잡화들이 진열되고 나면 산 아랫쪽 마을 등지에서 주민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들 역시 짐들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또는 오토바이에 싣고 몰려든다. 그렇게 한적하기만하던 고산지대의 평지가 오전 10시 쯤 이면 발디딜틈 없이 북적인다.

재밌는 것은 매 주 금요일 장이 서는 날은 학교도 휴교한단다. 마치 장날을 위해 사는 주민들 같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일은 산 넘고 물 건너 찾아오는 버마(미엔때엔) 사람들이다. 여인들이 입을 벌리면 붉은 핏빛이 입안 가득하다. 섬찟할 정도다. 이들이 갖고 오는 물건이라야 녹두, 가루담배, 찻잎, 땅콩 따위 등으로 한 사람이 갖고 오는 것을 몽땅 팔아보았자 30위안이 될까 말까하다.

한마디로 얼마나 빈곤한 사람들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길 가 한쪽에 이것들을 풀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사이에 점심을 먹는데 옥수수 알맹이가 듬성 듬성 보이는 된 죽이다. 비닐봉지에 싸 들고 온 죽을 손가락으로 퍼 먹는다.

두 명의 여인이 수줍어 하면서도 아는 체를 한다. 지난 주에 왔을 때 파장까지 팔리지 않은 찻잎을 놓고 시름이 잠겨있던 한 여자와, 역시 녹두를 앞에 놓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여자의 것을 몽땅 사 주었는데 도합 20위안어치였다. 이 두 가지 물건은 필자에게는 필요없는 물건들이어서 촌장집에 주고 말았다. 하도 딱해 보여서 두 여인의 물건을 사 준 것이었는데 필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그렇다면 매 주 금요일마다 이곳 라후족 장날을 찾는다는 얘기가 아닌가.

미엔때엔에서 이곳까지는 산길을 타고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약 30여명의 여인들과 남자가 10여 명인데 절반 이상은 신발을 신지 않는 맨발들이었다.

문제는 10여 명의 남자들의 모습이었다. 들고 오는 짐도 없이 따라와 아름드리 나무 주변에 앉아 있거나 서성대다가 오후 4시 쯤이면 먼 길을 돌아가야 함으로 일찍 철수하는 여인들을 따라 돌아갈 뿐이다. 여인네나 남정들은 하나같이 검정색 작업복 차림들이다. 이들 10여 명의 남자들은 하루종일 앉거나 누워서 담배만 피우며 잡담으로 노닥거리고 있다. 이 곳이 바로 우리나라에까지 알려진 마약 밀매장소로 유명한 (마의 삼각지대)라는 곳이다

나는 오며 가며 유심히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쉽게 눈에 뜨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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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한두 명이 슬쩍 자리를 박차고 시장통 복잡한 인파 속으로 스며든다. 보퉁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맨 몸인 채다. 그러다가 20,30분쯤 지나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되돌아 온다.

그리고 또 한두 시간쯤 지나면 다시 한두 명이 슬며시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역시 홀몸들이다. 아마 마약은 몸 속 어딘가에 깊숙히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어디를 갔다 오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척 하는 그들이들이 바로 왼종일 나무그늘에서 놀고 있는 것 같지만 마약 밀거래자들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여인들이 씹고 있던 것은 칡 비슷한 식물인데 이를 튼튼히 하고 위장에 좋다고 했다. 얼굴을 가만히 보면 참 잘 생긴 미인들이다.

긴 속 눈섭에 큰 눈망울, 얼굴색은 약간 검지만 무척 보드라워 보인다. 그런데 그 얼굴위에 밀가루를 바르듯 하얀색 덧칠을 한 것이 눈에 거슬린다. 모르긴해도 일종의 화장품 대용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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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한 쪽엔 경비초소가 있고 3명의 젊은 군인들이 보초를 서기도 하고 역시 한가로운 모습들이다. 물론 장이 서는 날만 그들이 근무를 한다.

지난 주에는 초소를 지나다가 불려갔었다. 신분증을 검사 받았고 초대소 안에 앉혀놓은 채 어디론가 전화연락을 하더니 백지를 꺼내놓고 언제 중국에 왔으며, 그동안 어느곳을 다녔는지, 이곳엔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자세히 쓰라고 했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기에 사실대로 모두 적어 주었다. 한 시간 쯤 지나자 지프차가 한 대 올라왔고 무작정 타라고 한다.

궁금하기도하고 걱정도 되어서 내 짐이 촌장집에 있다고 하니까, 곧 끝날 터이니 그냥 다녀 오란다. 이제 갓 스무살 전후의 앳된 청년 군인들이다. 지프차에 오르니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한 시간 이상 내려간다. 우거진 숲과 위장막 속에 가려진 이들의 부대가 보인다. 우리나라 중위 쯤 되는 장교가 나를 앞에 앉혀놓고 먼저 차를 권하는데 예절이 밝은 사내다 싶다.

장터에서 썼던 백지의 내용들을 유심히 보더니, 한국 사람이 어떻게 中文을 잘 쓰느냐며 놀래는 기색이다. 중국어는 잘 못해도 쓰는데는 별 문제 없다고 하니까 또 칭찬을 거듭한다.

생년월일을 유심히 보며 자신의 부친보다 내 나이가 20년이나 더 많다며 놀랜다. 한국인은 이런 나이에도 외국여행을 그것도 혼자서 다닐 수 있냐며 신기한 눈초리다. 한 시간 이상을 얘기 끝에 소수민족 라후족 취재는 3일간 더 줄터이니 그것으로 끝내고 돌아가라는 점잖은(?) 지시였다. 이유도 묻지 말라고 했다. 내가 왔다 갔다는 사실도 상부에 보고 하지 않겠으니 3일 정도로 구경만 하고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또 내가 작가라고 했으니까 돌아가서도 좋지 않은 글은 쓰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사진도 찍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은 경찰이 관리하는 지역이 아니고 국경지대 군부대가 진주해 있고 모든 치안은 그들의 소관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어디서 났는지 고급 야주 한 병과 커다란 수박 두덩이를 차에 실어 놓았으니 가서 먹으라는 선물까지 주며 끝까지 친절한 모습을 지켰다.(그는 마지막 말로 촌장집에도 몸이 좋지 않아 일찍 돌아가는 것으로 편안하게 얘기해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왜 그들은 필자를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도록 했을까?

라후족 촌의 곤궁함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해서? 미엔때엔 남자들의 이상한 행동들에 관련된 일 때문에? 무언가 석연치 않았지만 군부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다시 위로 올라오니 아직 장날은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역시 검정 옷 차량의 미엔때엔 남자들은 편안한 휴식 모습이든가 한 두 명씩 슬그머니 복잡한 장터 안으로 빠져들었갔다 나왔다 하든가 조금도 이상한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지프차에 싣고온 수박 두 덩이는 보초들이 있는 검문소에 내려놓고 나눠 먹었다.

한국담배는 이들도 무척 좋아하는 담배였다. 세 친구에게 너희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까 한 명은 湖南이라 했고, 한 명은 河北, 또 하나는 春이라고 했다. 비교적 먼 지방에서 온 청년들이다.

촌장에겐 아직 3일이란 시간이 있기에 떠나기 전날 이야기하기로 하고 뒤로 미루었다. 고급 양주를 보며 군침을 흘리는 촌장과 친구 두 명을 더 불러 맛있게 먹어 치웠다.

이튿날은 차 농장 구경을 가자고 한다. 산에 나무라고는 그 높은 지역에까지 한 그루도 없이 온통 사람 키 만한 普茶들 뿐이다.

농장 주인은 H족이었고 찻잎을 따는 일꾼들은 모두 소수민족 라후족들이었다.

하루 종일 푸대에 차잎을 딴 후 저녁 때가 되면 농장주의 자택으로 가서 근을 달고 돈 표를 받아간다. 한 달에 한 번 모아 두었던 돈 표를 들고 가 현금을 받는 것인데, 보통 1500위안에서 성적이 좋은 사람은 2000위안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돈이 급한 사람은 이 얼마 안되는 돈 표를 10% 이자를 붙여 바꿔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찻잎을 따는 일은 3월부터 5월 중순까지. 그래도 이 두 달 반 동안의 수입이 이들에겐 유일한 수입원이 되기에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농장주는 50대의 건장한 사나이였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무척 반갑다며 귀한 茶라며 한 봉지를 꺼내준다.

10년이나 된 것이라고 하는데 훗날 알아보니 10년짜리 그 정도 양이면 1000위안 이상 초과 한다고 했다.

3일 째 되는 날 울고불고 아쉬워하며 붙드는 촌장 가족들과 이웃을 떠나야만 했다. 지방에선 돌아가는 차를 하루 전날부터 부탁 했었으나 차편이 없다며 茶운반 차량이 있으니 그걸 부탁하고 이용해 보란다.

떠나는 날 아침부터 한 시간 정도 있으려니 1.5톤 작은 화물차가 올라오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기사에게 언제 내려가느냐고 하니까 두 시간 쯤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 나를 좀 태우고 내려가 다오’ 했더니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그냥 내빼버린다. 정말 두 시간이 지나자 뒷 칸에 茶푸대들을 가득 싣고 화물차가 내려온다. 다시 차를 세우고 100위안짜리 한 장을 기사에게 슬며시 쥐어 주었더니 아무 소리도 않고 앞 쪽에 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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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뒷칸에 던져놓고 앞 쪽 기사 옆에 앉기로 했다. 이미 뒷 화물칸에는 5명의 남자들이 타고 있었고, 앞 좌석에도 기사 옆에는 여인이 한 명 있었다. 3명이 타기엔 너무나도 비좁은 자리였다. 나는 여인 혼자 타도록 내버려두고 뒷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물차는 황토길 흙먼지를 날리며 험준한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 먼지를 피할길이 없어 나는 덥지만 청색 얇은 잠바를 머리부터 덧입고 있었다. 한 시간쯤 달렸을 무렵, 잠깐 졸음이 쏟아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차가 하늘로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내 몸도 밖으로 튀어나와 입고 있던 점퍼 자락이 나뭇가지에 걸렸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약 100m 앞 쪽에 화물차가 커다란 바위에 부딛친 채 멈춰 서 있고 여기저기서 아이고! 아아! 피비린내와 함께 사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 이곳저곳에 나 뒹굴고 있었고 화물차 쪽으로 가 보니 기사는 온 얼굴에 피 범벅이 되어 반 쯤 몸통이 차창 중간에 나와 있었다. 옆에 앉았던 여인은 문 밖으로 튕겨져 나와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소리 뿐이다.

순간적으로 나 역시 팔 다리를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렇지가 않다. 그렇다면 나만 무사하다는 말인가.

전 CBS방송국장이던 친구 신원영이 중국에 다녀가면서 주고 갔던 낚시 점퍼가 결국 내 생명을 구해주었다는 얘기가 된다. 나는 거의 기다시피 탈진한 몸으로 도로 위로 왔으나 다니는 차량은 없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를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온다.

멈춰 세웠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길 아랫쪽을 가리켰더니 눈을 부릅뜨고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더니 왔던 길로 내빼 달아나 버린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맥이 빠져 넋을 잃을 정도였다. 다시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아까의 그 오토바이가 다시 나타나고 경찰 백차 세 대가 뒤따른다. 정복차림인 네 명의 경찰관들은 밑으로 내려가 환자들을 들고 올라와 차곡 차곡 백차에 싣는다. 복장은 금새 피투성이로 얼룩져 있었다.

나 역시 그들 옆에 앉아 ?지방까지 갔지만 응급치료할 병원이 없다. 경찰관이 또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커다란 화물차 한 대를 데리고 온다.

그렇게 해서 큰 화물차 뒷 칸에는 1명의 여인과 나를 포함한 7명의 반 죽음 상태의 환자를 싣고 ?지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엔 종합병원도 여러 군데가 있었다. 병원 도착 즉시 1명 사망. 거짓말처럼 부상흔적이 없는 나는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나 역시 팔 다리 한 군데쯤 부러졌어야 옳을 것을. 의사는 만약을 위해 모르니까 3일 쯤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전혀 마음이 없어 병원문을 나서고 말았다. 매일 전화로 담당의사에게 결과를 물었더니 과다출혈로 3명이 더 사망했다고 한다. (라후족촌 취재는 이미 물건너 간 일이었다. 왜 취재를 거부당하고 철수해야 했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따름이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김인환
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 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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