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한국학중앙연구원 |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져도 안 되지만, 자기부정, 자기불신은 자살행위 입니다. 우리민족이나 국가 사회, 역사와 문화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원래 선진국이었다, 외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필자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우수하고 뛰어난, 수많은 문화유산이 그 근거입니다.
경남 합천 소재 해인사에 가면 팔만대장경(이하 '경판')이 있지요. 국보 32호로,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됩니다.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이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1995)되지요. 세계에서 목판 보관용으로 지어진 유일한 건축물입니다. 자연통풍으로 적절한 온도 및 습도 조절이 되는 구조지요. 균일한 실내 환경으로 800년 가까운 오랜 세월에도 경판 변질이 없습니다. 효과적 건물배치, 창호계획, 경판진열 등이야 눈으로 확인되지요. 여타 경험과학 원리를 추측만 할 뿐, 현대과학으로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답니다. 둘 다 명실상부, 위대한 인류유산이지요.
경판은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합니다. 1962년 국보로 지정하는데요, 내용이나 숫자를 확인 하지 않습니다.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지요. 1915년 일본인들이 집계한 81,258판을 그대로 인용하지요. 그 후로도 제대로 살피지 않다가, 2014년에야 정보화 하면서 81,352판을 확인합니다. 부처님 말씀(經), 승려 계율(律), 승려 논문(論)이 총 망라되어있답니다. 내용이나 분량 면에서 단연 세계 으뜸이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자료 수집이 먼저겠지요. 경판 만들 계획을 세워야 하니까요. 당시로선 자료를 모으는 일부터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추측됩니다.
나무(산벗, 후박)를 필요한 수만큼 자르고 다듬어 갯벌에 약 2년 동안 묻어 둡니다. 건져내 다시 소금물에 찝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응달에 1년여 말립니다.
경판에 붙일 원고를 만들어야 하지요. 종이가 필요합니다. 경판 양면에 글을 새겨야 하니 16여만 장이 필요합니다. 쓰거나 새기다 보면, 크기가 다르거나 오탈자가 나오겠지요. 3배 정도 종이가 필요하답니다. 50여만 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지금 같이 종이가 쏟아져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닥나무를 쪄 껍질을 벗깁니다. 다시 솥에 넣고 삶습니다. 껍질이 흐물흐물 해지게 두들겨 통에 넣습니다. 물에 잘 섞은 다음, 닥풀을 첨가하여 발로 떠서 한 장 한 장 떼어 냅니다. 크지도 않은 닥나무가 얼마나 많이 소요되고,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 되었을까요?
종이에 글씨를 써야 합니다. 5만여 명을 동원, 구양순(歐陽詢, 557년~641년, 중국 당나라)체를 습득시켜 원고를 작성하였답니다. 서체가 매우 빼어나답니다. 조선 최고 명필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도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는군요. 그뿐인가요? 교정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요?
글자를 새기는 일이 더 어렵겠지요. 게다가 한 글자 새기고 절을 세 번씩 하였답니다. 칼이 잘 못 나가면 처음부터 작업을 다시 해야 하니,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지요. 한 사람이 하루에 42자쯤 새길 수 있답니다. 계산해 보니 판각수가 12만 명 정도 동원되었을 것이랍니다.
경판에 새겨진 글씨가 5272만9000자라 하는데요, 전에는 오탈자가 없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조사에서 발견된 오탈자가 5200여 만자 중 단 158자라 합니다. 게다가 놀랍도록 글자 크기나 서체가 일정하답니다.
경판이 썩거나 습기가 차지 않도록 옻칠을 합니다. 옻을 채취하는 데에만 1천여 명이 매달렸을 것으로 보더군요. 굽거나 뒤틀림 방지를 위해, 양끝에 마구리를 만들어 끼우는 것으로 작업이 끝납니다. 16년이 걸렸습니다.
당시 인구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어떻게 인력 동원을 하였으며, 자료 및 자재를 준비하였을까요? 하나하나 새겨보십시오. 놀라운 일이지요. 거의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입니다. 더구나 모든 과정이 고도숙련을 필요로 합니다. 탁월한 문화 식견과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축적된 선진 문화·기술 없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경판 하나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선진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나라, 우리 후손들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일까요? 우선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일입니다. 인류사회에 이바지 할 사명감은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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