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찬은 TV에서 전개되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의 케이블 뉴스채널 CNN은 그날 저녁 전 지구적인 재앙을 뉴스로 토해내느라 숨 가빴다.
호주, 유럽 각국, 그리고 카메룬의 불가사의한 참사 사건 등을 TV를 통해 파리의 아파트에서 유심히 보았다.
배상진……
녀석과 한국의 그린벨트 논쟁을 벌이고 난 후였다.
배상진은 한국이 싫다면서 떠나 온 친구였다.
노명찬과 군 동기로 알게 되었지만, 상진은 군을 제대하면서 한국에서 더 이상 인생을 허비할 수 없다며,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문화와 예술의 나라 프랑스로 간다며 무작정 파리로 떠나 왔었다.
그는 만나면 언제나 한국을 비판했다.
5천년 역사에 중국과 일본의 요소를 빼면 우리 문화다운 문화가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그런 그가 못마땅하기도 하였지만, 상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옛 시골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을 보는 듯했다.
들여다 보려 얼굴을 우물 속에 넣으면 저 아래에서부터 찬 기운이 올라와 서늘한 느낌이 전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동굴. 조국이 싫다면서 등지고 돌아선 친구.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의 얼굴에는 찬 그늘이 있는 듯 했다.
배상진은 결혼도 프랑스 여자와 했다. 무엇이 매력인지 생긴 건 떡판 같은 배상진인데, 부인 엘리자베스는 프랑스 인형을 연상시키는 미인이었다.
“몽마르뜨. 올 수 있나? 술 한 잔 하자.”
배상진은 최근에 어머니 산소에 다녀왔다고 했다.
“서울이라. 몇 년 만이지?”
“11년. 많이 변했더구만.”
“서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돈을 벌고 세상을 사는지 궁금해지더군.
돈 벌어서 뭐하려고 그다지도 돈, 돈 하고 사는 거냐?”
“......”
“내가 보기에는 먹고 마시고 자는 것 밖에 없어 보여.
왠 음식점, 술집이 그리도 많으냐, 음식점마다 술집마다 건물만 다를 뿐, 들어가 보면 개성이라는 것은 없다.
사연이나 전통같은 것은 약에 쓸래도 없다.
주인장은 돈만 벌면 그만이고, 손님은 먹고 가면 된다는 식이더라.
한국 술집에는 술만 있지, 술맛이라는 개념이 없다.
취하기 위해 흘려 넣는 물이 술일 뿐이다.
출세와 처세의 약물, 낭비의 독물일 뿐.
그리도 많이 마시는 술 속에 세계에 내놓을 명주 하나 못 만드는 것은 ‘술’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술 마시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야.
‘즐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빠져있을 뿐.
그리고 저 아파트.
내가 보기에는 한국의 아파트는 뭐가 다른지 구분이 안된다. 똑같다.
개성이라고는 없다.
설계를 보아도 그저 그런 구조를 평수만 가지고 난리를 피운다.
평수만 중요할 뿐 내 집만의 설계라는 것이 없다.
그건 아파트의 가장 더러운 생리인데, 이런 아파트에 온 국민이 달라붙어 못 사서 안달인 것은 도대체 어떤 수준의 문화심리냐?
수용소 번호냐?
동마다 일련번호를 붙여 놓고는…….
그리고 그 층수.
분노가 솟아오르는 걸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작은 동산이 있는 농촌 한 복판에 15층짜리 콘크리트 더미를 쌓아놓고는 무얼 그리 자랑스럽게 여기는가 말이다.
한심과 천박의 극치를 나는 한국 아파트에서 보고 왔다.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
저걸 우리 후손들이 다 헐어야 할 때가 올 터이니.”
노명찬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어쩌겠냐?
좁은 국토에 살 집을 갖자니, 고층일 수 밖에 없고, 집 없는 한이 맺혀서 넓은 평수 바라는 거 아니냐?
술.
경쟁 사회 속에서 그렇지. 스트레스 쌓이면 술만큼 좋은 약이 어디 있냐?
너무 그러지 마라.
짧은 세월에 그만큼 해낸 것도 용하지 않냐?”
배상진은 말이 없다.
그러다 불쑥 내밀었다.
“너 농림부라고 했냐?”
배상진이 느닷없이 물었다.
“그래”
“한국의 산은 어디다 쓰냐?”
“우리나라 산에 나무가 울창해졌다. 그동안 녹화사업에 성공한 것이다. 이제는 노루도 살고, 약초도 제법 나오고 있다.
국민들의 최고의 안식처지.”
“나무는?”
“어떤 나무가 많으냐는 얘기냐?”
“산의 나무로 무얼 하냐는 거다.”
“무슨 얘기 하자는 거냐?”
“너는 알 것 아니냐?
우리나라 산이나 나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정책이란 게 있을 게 아니냐? 그 정책이 뭐냔 말이다.”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이 있을 것 같구나.
들어보자. 네 생각을.”
“내가 이번에 집안 문제로 한국에 갔다 오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으로 되어 있는 산지국가라 할 수 있다. 산악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렇게 험한 산은 아니니까.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산지국가라고 생각하고 살지는 않는 것 같다.
농업국가라고만 한다.
우리가 농업국인가? 농업만으로 살 수 있는 나라인가?”
배상진은 목소리에 열기를 실어가기 시작했다.
“또 한국사람들은 땅이 부족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바로 땅이 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까워할 줄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신도시 개발한다고 저런 금싸라기 같은 농지를 갈아엎고 아파트 단지를 만드냐?
산이 70%라면서 산을 이용할 생각은 못하는 것 같다.
스위스나 이탈리아에 가봐라.
스페인, 포르트갈 등 지중해 국가 어디든 가봐라.
언덕이 많고 산이 많은 나라들에서 집을 어떻게 짓고 사는지. 아주 나지막하게 비둘기 집같이 지은 집들이 산기슭을 따라 그림같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산에 집들이 나무같이 심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 집일수록 고급이다. 비버리힐즈 같이 말이다.
미국 비버리힐즈 |
100세 이상 사는 세계의 장수마을은 거의 바로 해발 200m나 300m 사이의 산중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냐.
파키스탄의 장수마을인 ‘훈자마을’ |
한국은 산에 집을 지으면 죄를 짓는 줄 안다.
개발제한 구역이라고? 그래 개발제한구역 좋다.
그래서 농지 까뭉개고 아파트 짓냐?”
배상진은 산을 활용하지 못하는 조국의 단견이 무척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노명찬은 잠자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산기슭 약 3부 능선까지를 이용해서 환경오염시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법조치하고, 3층 이하의 아담한 주택가를 산기슭에 깃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평지를 대형아파트 짓는데 써서는 안 된다.
아까운 평지는 공공용지나 생산용지로 써서 전 국민이 풍요롭게 먹고 살도록 하고, 개인이 사는 집은 생산에 쓰지 않는 산기슭에 조용히 나무와 더불어 깃들이게 하여야 한단 말이다.
장수마을이 들어 설 최대 적지를 한국이 다 가지고 있단 말이다.
산에 있는 나무와 왜 가까이 살 생각들을 안 할까?
집짓기 시작하면 산이 다 없어질까 지레 겁먹고 산은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고 평지인 농지를 까부수냐?”
노명찬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하면 우리처럼 작은 국토면적에 택지가 다 공급이 될까?
택지가 부족하니까 고층으로 올라가는 것 아니냐? 현실성을 판단해 보아야 할 거다.”
노명찬은 그리 자신이 있는 말투는 아니었다.
배상진이 맞받았다.
“조사해 봤냐? 조사해 봤냐고?
다시 한 번 말하는데 한국은 국토면적의 70%가 산이다.
21만 평방 제곱킬로미터에 15만 평방제곱킬로미터가 산이라고…… 3부 능선을 이용하면 이중 30%를 활용하는 셈이다.
4만5천 평방제곱킬로미터라고……,
우리 국토 중 평지가 30%면 총 6만 평방제곱킬로미터 밖에 안 된다 말이다.
3부 능선을 다 쓸 순 없겠지.
그러나 잘만 활용하면 얼마든지 택지는 나올 거다.
아직도 국민들이 아파트 건축업자들의 논리에 속고 있는 거다.
말 그대로 한국은 산을 삶의 터전으로 해야 된다.
우리의 도시계획 발상을 돌리지 않고 지금같이 신도시, 신도시하면서 아파트만 지어대다가는 한국의 도시는 죽은 도시로 될 뿐이란 걸 그렇게도 모르냐?
아파트단지는 공장이야.
이산화탄소 공장이다.
산소와 나무가 없는 죽은 도시란 말이다”
“개발제한구역을 없애란 말인가?”
“수재 노명찬이 공무원 되더니 머리가 굳었네.
누가 없애라고 했냐? 활용하라 했지.
개발제한구역이란 게 등산로 만들려고 만든 건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드니까 도시 확산을 막으려고 만들었겠지.
도시 확산도 나쁘지만, 고밀도화가 돼가고 있는 현상은 더 나쁜 것일세.
제한된 토지에 인구만 자꾸 늘고 있다는 것, 도시 병리는 그곳에서 시작되는 것 아니냐.
개발제한구역이라지만 무엇이 개발이란 말이냐?
인구는 몰려오는데 땅만 못쓰게 막으면 개발제한이냐?
개발이 어떤 개발을 말하는지 정확히 정의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
당신 같은 농림부 공무원이 말이야.”
노명찬은 안면도 꽃박람회의 부장 주곤중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가 꽃박람회를 녹색의 개발이라고 말했던 생각이 났다.
개발을 하되, 결국 보전하는 것.
그런 개발을 녹색의 개발이라고 했다.
도시는 개발이요, 산은 보전이라는 극단적인 사고로 인해 산은 산대로 쓸모없게 되고, 도시는 도시대로 삭박해져 버리는 현상.
산은 산대로 보전하면서 도시는 도시대로 가치있게 쓰는 지혜.
무엇인지 있을 것만 같았다.
“노명찬,
한국사람들은 듣기 싫어하겠지만, 솔직히 우리나라 산은 나무를 살찌우지 못해.
젖이 말라붙은 할머니야. 노령대 지질이란 말이다.
펄펄 끓는 온천이, 그래서 지진이 없는 거잖아.
우리나라 산은 깃들이는 곳이지 돈을 벌어 주지는 않아.
우리 산은 그런 곳이야…….
그만 생각하자”
서늘하고 암울한 냉기가 다시 상진의 몸에서 느껴졌다.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왠지 배상진의 말에서 노명찬은 자꾸 이 단어가 떠올랐다.
노명찬은 그동안 나름대로 스크랩해 둔 자료를 뒤져 보았다.
홍수, 허리케인, 태풍, 지진, 쓰나미, 가뭄, 우박, 산사태, 눈사태, 산불, 토네이도, 폭염, 한파, 화산폭발 외에도 최근 갑자기 원인불명의 조류독감, 사스(sars), 신종인플루엔자 등의 유행병이 간헐적이지만 전 지구적으로 출몰하는가 하면 만성적 이상기후와 사막화 현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재해인 홍수와 가뭄만 해도 발생 건수는 지난 70년대는 연평균 1110건에서 80년대 1987건, 90년대는 물경 2742건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피해도 두드러져 70년대에는 연평균 7억40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나 80년대 14억5000만 명으로 2배나 증가한 뒤 90년대에는 19억6000만 명을 기록, 20억 명에 육박했다.
노명찬은 자신은 물론 인류의 미래가 궁금했다. 그러한 해답을 어디서 찾을까 고민해 보았다.
주곤중과 배상진, 그 두 사람은 자기에게 꽃박람회와 산과 나무를 예찬하고 간 지인들이었다.
‘녹색성장’
노명찬은 이 네 글자가 화두로 다가왔다. 최근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마다 외치고 있는 ‘그린 그로쓰(Green growth)’가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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