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리(유혜리세종무용단 대표) |
절대로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여름도 계절의 변화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열대야속에서 잠 못 이뤘던 걸 생각해보면 더 이상 밤잠 설칠 일 없어 좋다.
흔히들 가을은 남자들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에 대해 어떤 이는 가을이 되면 뭔가 허전하고 쓸쓸해서, 또 어떤 이는 일조량 감소로 비타민 D의 생성이 현저하게 줄어 이로 인해 남성호르몬인 ‘데스토스테론’ 분비가 줄어, 남자들이 기분장애에 빠져서 그렇다고 한다.
꽤나 과학적으로 그럴 듯해 보이나, 일조량이 더 적은 겨울을 설명할 수 없기에 올바른 답은 아닐 듯싶다. 오히려 여름 내내 활개치고 다니다가 가을에는 몸이 움츠러들어 기분이 다운되기 때문에 쓸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현상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결론은 가을은 남자들만의 계절이 아니고, 여자들의 계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여자들도 가을을 탄다는 이야기다.
가을에 대한 단상을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려고 길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내 감정이 외롭거나 쓸쓸하다는 것도 아니다. 오늘 하고픈 이야기는 가을은 남자와 여자를 떠나 사람들의 감정이 가을에는 더 잘 살아난다는 것. 그리고 그 풍부해진 감정을 살려 다른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얼마 전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는 평소 지하철을 타게 되면 다른 이들의 대화를 듣는 버릇이 있어, 어느 날 한 할머니와 그 손자와의 대화를 들으면서 크게 깨달았다는데 내용을 보면 할머니가 손자에게 “아직 열이 있네, 저녁 먹고 약먹자”고 하자, 손자는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찌 그리 잘 알아?”고 물었단다.
작가는 ‘나이가 들면 자연히 알게 된다’ 라거나 ‘할머니는 다 알지’라는 대답을 기대했었나 보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라고 전혀 의외로 대답을 하는 것을 듣고 어떤 진실을 깨닫게 됐다는 것인데…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의 끔찍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채게 됐다는 것이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겼고, 아파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공감이 간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다른 사람들을 더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먼저, 나와 늘 함께하는 단원들의 마음을 헤아려야겠다. 특히나 요즘처럼 공연이 많은 시기에는 더 그렇다.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연습도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많이들 힘들어하고 예민해져 있다. 한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단원들과 함께 가야한다. 마음의 여유도 찾고 같이 있으면 모든 것이 음악처럼 흐르게 되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를 더 많이 아끼고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이 가을!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뛰는 이 계절, 마음을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먼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달래주는 넉넉함을 보여주심이 어떠신가요?
유혜리(유혜리세종무용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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