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는 지나가면서 가볍게 순원에게 물었다. 천진하게 웃으면서 던지는 물음들은 비록 가벼웠지만, 듣고 나서 생각해보면 순원에게는 화두처럼 무겁게 다가와 그 의미를 되새겨보곤 했다.
“순원, 식물은 물을 먹고 살지요.
박하의 경우는 20cm, 떡갈나무의 경우는 30~40m, 호주산 거대한 유칼리나무는 98m까지 올라갑니다.
유칼리나무는 식물계에서 키의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칼리나무는 호주의 타스마니아의 스틱스 계곡에 서식하고 있다고 하는데, 19세기말 호주의 어느 산림관은 130m 짜리 유칼리나무를 측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물리학적으로 식물의 뿌리에서 수분이 어떻게 130m까지 도달할 수가 있을까요?
흔히들 모세관 현상으로 쉽게 설명하는데, 모세관 현상으로 수직으로 130여m까지 물이 역류하는 게 가능합니까, 물리학적으로?”
“물론 식물에게도 중력이 작용하겠지요. 모든 존재는 중력의 작용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지요, 물리학적으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중력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중력의 존재를 느끼지는 못하지요. 그런데 식물은 중력을 압니다.”
그러면서 중력을 안다는 것은 중력의 정확한 세기와 근원을 아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 증거로 식물의 뿌리가 중력방향으로 뻗는 사실을 들었다.
식물은 또 중력의 힘을 알고 있다.
제프는 씨앗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즉 지표면의 1cm 밑에 있는 씨앗은 싹을 틔우지만 1m 밑에 있는 씨앗은 싹을 틔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식물의 씨앗이 압력의 세기를 느끼고 있어 싹을 틔울 것인가를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프는 식물의 이런 자각능력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흙이라 해서 식물이 모두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라 어느 깊이의 흙이냐를 식물은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제프는 또 식물의 가장 큰 뿌리는 항상 지구 중심의 방향으로 자란다고 들려주었다. 곁뿌리는 늘 중심뿌리로부터 일정한 각도를 지킨다. 곁뿌리들은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방향을 잡거나 아니면 수평을 이룬다. 오와 열을 정열하면서 뿌리간의 각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제프가 순원을 상대로,
“식물이 공간감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식물들은 자기들이 차지한 자리가 널찍하면 천천히 자랍니다. 그런 나무의 속은 꽉 차고 단단하지요. 반면 다른 식물과 촘촘히 바짝 붙어 있으면 이들은 빠르게 자라서 경쟁자들을 가능한 한 능가하려고 합니다. 그런 식물은 속을 비우고 키만 키웁니다.”
“식물은 여러 종류의 빛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식물들은 빛에 대한 감각능력을 통해 경쟁식물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눈이 없는 나무가 어떻게 광선을 인지한다는 것일까요? 하지만 식물은 우리 인간의 눈이 전혀 반응하지 않는 파장들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만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눈이 아닌 피부로 빛을 감지할 때가 있습니다. 자외선이지요. 우리가 눈을 감고 있어도 햇빛에 피부가 타는 것은 자외선에 감응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피부는 자외선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빛에 예민한 나무의 감각분자들을 전문가들은 파이토크롬(phytochrome)과 크립토크롬(cryptochrome)이라 부른답니다.”
“식물은 냄새를 귀신 같이 알아차립니다.
담배, 옥수수, 목화의 이파리들은 벌레 유충의 타액을 통해 그 내용을 인지합니다. 나무들은 곤충의 종류를 구별해 이들을 퇴치하는 분비물을 적당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적을 구분하며 방어 전략을 정확히 세운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옆의 토마토가 적에게 갉아 먹히고 있는 것을 인지하면 아직 벌레의 공격을 받지 않은 토마토들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화학적 물질을 일시적으로 만들어 스스로를 방어합니다.
이건 생각해보면 엄청난 일입니다. 식물들 서로가 교신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레이더망을 가동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레이더나 다름없는 그러한 감각수단이 무엇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식물의 촉각은 우리보다 더 예민합니다.
식물은 바람이 가지를 흔들면 그들의 조직을 강화시킵니다. 바람이 없으면 식물은 유약해지지요. 그래서 정원사들은 규칙적으로 식물을 흔들거나 쓰다듬어 식물을 자극하여 조직을 강하게 합니다.”
“식물이 음향에 반응하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요.
식물이 청각을 갖고 있는지는 아직 증명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음향의 진동에 반응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토마토 식물협회는 록 음악을 틀어주면 식물은 더 잘 자란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음향에 의한 진동에 식물이 반응하고 이 진동이 꽃가루를 더 많이 날려 열매가 더 많이 열린다고 믿고 있습니다.”
“식물도 시간감각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말레이시아의 딜레니아 수프룩티코사(Dillenia suffructicosa)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정확한 개화시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밤중 새벽 3시에 꽃이 피지요. 또한 꽃이 피고 나서 정확히 36일 뒤 다시금 새벽 3시에 분홍빛을 띠는 붉은색의 열매가 열립니다.
유전학자 칼 폰 린네는 많은 식물이 하루 중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에 꽃을 피우고 열고 닫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1751년 하나의 꽃시계를 확인했지요. 그는 20~50개의 다양한 꽃으로 꽃시계를 만들었습니다.
이 꽃시계는 지금도 웁살라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새벽 3시와 5시 사이에는 양수염풀이 꽃을 핍니다. 4시와 5시 사이에서는 치커리 꽃이, 5시경이 되면 갈홍색의 낮 백합과 방가지 똥과 아이슬란드 양귀비꽃이 핍니다. 5시와 6시 사이에는 민들레가 노란색 꽃을 피웁니다.
꽃시계는 꽃으로 장식한 시계가 아닙니다. 꽃은 정확하게 자기 시간을 아는 것이지요. 또 많은 꽃들이 일정한 시간에만 향기를 내뿜습니다. 식물들은 곤충들이 일정한 시간대에 돌아다니는 사실을 알고 이 시간대에 맞추어 향기를 내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이러한 꽃의 내부시계는 시계유전자에 의해 작동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소리를 내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등나무는 누가 다가오면 서로에게 ‘쉿’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 ‘툭툭’ 소리로 변합니다. 이는 공생하고 있는 개미에게 경보를 보내는 것이지요. 공격하라는 신호인 것입니다.”
“식물은 동물과 공생하는 법도 압니다.
아카시아는 가시의 속이 비어 있습니다. 그 속에 개미가 삽니다. 공생하는 것이지요. 아카시아는 개미에게 꿀과 넥타와 아카시아 밥을 주고 개미는 공격해오는 외부의 곤충을 죽여줍니다. 개미는 아카시아의 경비대인 셈이지요. 다른 식물의 가지나 싹이 아카시아를 건드려도 개미는 사정없이 이들 싹을 갉아버립니다. 개미를 아카시아로부터 완전히 멀리 떼어놓으니 아카시아는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카시아는 개미와 서로 완전히 의지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순원씨, 무엇이 식물이고 무엇이 동물입니까?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할까요?”
어느 날 제프가 또 말했다.
“식물플랑크톤은 신비의 식물입니다.
저는 인류의 미래가 이 식물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의 문제를 이 식물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떻게요?”
“이산화탄소를 먹는 것이 식물이니까요. 즉 1차 광합성체이지요.
흔히 아마존 같은 열대우림을 ‘지구의 허파’라 부르며 이산화탄소의 효과적인 제거 장소로 알고 있지만, 바다의 플랑크톤이 지구 이산화탄소의 50% 이상을 처리하면서, 지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시키고 있는 사실을 아는 분은 많지 않아요.
자동차 배기가스나 에어콘에서 나오는 프레온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쿄토 의정서’ 같은 국제협약을 체결하곤 하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고육지책입니다. 만일 식물플랑크톤을 해양에서 많이 양식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문제는 그만큼 더 효과적으로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나무 심는 것과는 시간이나 비용에 있어 비교가 안 됩니다.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을 화력발전소라 한다면 식물플랑크톤을 양생하는 것은 원자력발전을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식물플랑크톤은 어쩌면 미래에 지구의 기후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단단히 할 것입니다.”
순원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제프의 식물강의를 들었다.
식물플랑크톤...
신비의 식물군...
순원으로서는 이해의 지평선을 넘는 개념이었다.
잠시 말을 멈춘 제프는 순원의 얼굴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것은 기후변화나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매우 무서운 사실입니다.”
“아니, 왜요?”
“식물플랑크톤은 지구의 구세주인 동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의 근원이 되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세상은 흔히들 ‘녹색혁명’만을 이야기하지만, ‘녹색의 반란’도 성립하는 것입니다.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지요.”
그러면서 제프는 이에 관해 더 이상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순원은 무엇인지 비밀이 숨겨있는 듯한 느낌이 순간 들었다.
제프는,
“앞으로는 식물을 정복하는 자가 세계를 정복할 것입니다.
사실 동물은 식물의 식민지 같은 존재이지요.
동물의 섬김을 받으면서 식물은 자존합니다.
동물은 식물에 100%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요.
식물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식물은 실로 위대하지요.”
제프의 어지러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순원은 혼미한 속에 자꾸 아버지 마탁소의 얼굴이 떠올랐다.
“과학을 지배하는 자, 세계를 제패한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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