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27. 식물박사 제프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27. 식물박사 제프

  • 승인 2017-09-05 00:01
  • 최민호최민호
보잉기는 스키폴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암스테르담 상공에서 몇 번을 선회했다. 순원은 비행기의 창문 밖으로 네덜란드의 땅을 내다보았다.

직사각형의 반듯 반듯 구획 지어진 밭과 들.

밭과 밭 사이에는 운하가 바둑판같은 모양으로 직각으로 흐르며 밭의 경계가 되고 있었다.

목장도 보였다.

양떼들과 말과 소가 한가롭게 푸른 풀밭 위에 점점이 뿌려져 있는 것이 걸리버 여행기의 소국에서 보이는 동화책 그림 같았다.

양떼와 말들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앉거나 풀을 뜯거나 하고 있었다.

​운하가 자연스런 울타리였다. 

푸른 바둑판 저 쪽 귀퉁이에 붉고 노란 주단이 펼쳐져 있었다. 비행기가 왼쪽으로 선회하면서 그리는 경사각도가 그 천연색의 카페트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눈앞에 줌인(zoom-in)해 주었다.

지평선까지 닿는 드넓은 땅 위에 붉고 노란 온갖 색깔의 카펫들.

마치 색동무늬 같이 온 땅을 물들이며 길게 펼쳐져 있었다.

장관이었다.

거대한 팔렛트가 대지의 푸른 도화지위에 원색으로 놓여진 것 같기도 했다. 튜울립 농장이었다.

운하와 튜울립의 나라.

네덜란드에 순원은 도착한 것이다.

공항에 피켓을 들고 마중 나온 사람은 젊은 사람이었다.

리차드 제퍼슨.

제퍼슨은 자기를 제프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는 블론디에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영국계 미국인이었다.

순원은 푸른 눈동자를 이렇게 가깝게 본 적이 없었다.

제프의 눈은 흑갈색의 눈동자만을 보아온 순원에게는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동양인인 순원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북해의 바다색깔을 닮은 푸른 눈동자가 바다 속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그 소유자의 마음의 깊이를 측량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프는 미리 예약해 두었다면서 라이덴 대학의 롯지로 순원을 안내하였다.

학생은 기숙사, 연구원은 학교 측에서 마련한 롯지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것이다.

롯지는 인터네셔날 롯지와 도매스틱 롯지로 구분되었다.

이를테면 단기간 체류하는 외국 연구원들에게는 인터네셔날 롯지가 제공되는데, 순원은 학생신분이지만 마침 기숙사에 빈방이 없었다는 사정과 함께 일시방문으로 순원을 준 연구원으로 대접한다는 쉬뢰더 소장의 생각이 깃들인 것이었다. 

제프는 미국에서 식물 유전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산타블루 연구소’라는 곳에서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라이덴 연구소에 파견되어 위탁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롯지에서 제프는 순원이가 내미는 자기 소개서를 보면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1. 과학고 GPA(학업성취도):4.98/5.0

2. 세계 물리 올림피아드(IphO 2004) 금메달 수상: 한국 1위, 세계 4위

3. 한국 대통령 장학금 수여 대상 한국 과학영재

4. 아인시타인 논문 발표기념 세계물리학회 파리세미나 참여 한국대표 학생

5. 한국 과학고 학생 총 연합회 회장

6. 한국 학생 컴퓨터 동아리 연합회 회장…

이어서 한국에서의 각종 경시대회 수상실적이라든가 동아리 활동에 관한 순원의 이력은 끝이 없었다.

‘스타 스튜던트’

제프가 순원의 얼굴을 보며 첫 번째로 붙여준 별칭이었다.

좀처럼 남의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미국사람이라지만 제프는 순원이에게는 이것저것 많이 물어 보았다.

가장 궁금한 것은 물리를 공부하는 순원이 왜 네덜란드까지 왔으며, 식물유전공학에 무슨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 라는 것이었다. 

순원은 그것에 대해 답이 궁하였다.

“물리학이라는 것은 식물학이나 화학과 같이 병렬적으로 구분되는 전공의 개념이 아닙니다. 물리학은 말하자면 사물의 이치를 추구하는 논리의 체계이지 특정 분야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수학이나 화학도 물리학 이론으로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식물 유전공학도 물리학의 개념으로 현상을 설명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물리학이라는 것은 모든 학문의 논리적 도구로서의 펀더멘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원이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 답변이었지만, 순원은 그런 논리를 논리로 만이 아니라 실제로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막연한 야심이 있었다.

순원의 이 말은 막스 쉬뢰더씨에게 묘한 인상을 주었다.

순원은 라이덴 대학의 막스 쉬뢰더 식물 유전공학연구소의 구성원들 간에 무언 속의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오자마자 그는 실로 ‘스타스튜던트’가 되어 가고 있었다.

문제는 언어였지만, 제프는 이 부분에 매우 친절한 조언자가 되어 주었다. 같은 롯지에 있으면서 친하다 보니, 말이 비록 서툴러도 의사소통의 감은 전달되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영어를 누구나가 모국어 같이 잘하였다. 

쉬뢰더씨의 연구실은 주인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연구실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 순원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저 문자들……

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있는 저 문자들.

무엇이었을까 하면서 생각해 내다가 그는 스스로 살짝 놀랐다.

후루마쓰씨의 서가에 꽂혀 있었던 책들의 글씨. 바로 저것이었다.

네덜란드 글씨. 더치였다.

독일을 도이치라고 하듯이 네덜란드를 영어로 더치라고 하는 것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어는 독일어하고 가장 가깝다.

네덜란드어 서적을 일본의 후루마쓰씨가 그렇게 많이 보유하고 있다니……

순원에게는 그것이 기이하게 보였지만, 그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일본으로 볼 때, 네덜란드는 한국과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고마운 나라로 여겨야 할 대상이었다.

한국이 고대의 일본 문화를 형성하는데 많은 지식과 기술을 전해주었듯이 네덜란드는 근대 일본을 개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서구지식과 기술을 전해준 나라였던 것이다.

나가사키 현의 데지마 섬을 통해서였다.

암스테르담의 빈센트 반 고호 박물관에 고호가 수집한 일본의 풍속화가 많이 전시되어 있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듯, 후루마쓰의 서가에 한국의 책과 네덜란드의 책이 동시에 꽂혀있는 것에 놀라울 것은 없었던 것이다.

그것들은 일본으로 볼 때 한 시대의 교과서들이었다.

수많은 책들과 함께 연구실에는 작은 온실을 연상시키는 식물들의 화분들이 크고 작은 키에 조화를 맞추어 재배되고 있었다.

순원으로서는 이제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꽃과 식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연구실 가운데에는 단아하게 만든 연못이 하나 있었다.

연못이라기보다는 작은 정원이라고 할까?

작은 연못 옆에 작은 벤치도 놓여 있었다. 일본식 정원의 단아함이 깃들여 있었다.

쉬뢰더씨의 우아한 취향이 엿보였다. 

막스 쉬뢰더 소장은 제프에게 식물의 유전자 합성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부터 연구소에 있는 실험장비의 사용방법등을 순원에게 안내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헤르메스미어 시는 경관이 아름다웠다.

제프와 순원은 북해의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운하의 물 냄새를 맡으며 오후가 되면 산책을 같이하였는데, 그 길은 연구소에서 롯지로 돌아가는 길목이기도 했고 제프가 거의 모든 일정을 보낸다는 해양식물 연구소가 가까운 곳에 나있는 길이기도 했다.

산책길을 걸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순원이 무언가를 물으면 제프가 순원에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두 사람의 대화의 내용의 대부분이었다.

하루는 제프가 순원에게 캔 콜라를 내밀면서 물었다.

“한국에서는 코카콜라와 펩시중 어느 쪽을 많이 마십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순원이 의아해하며

“왜요? 글쎄요. 아무래도 코카콜라? 잘 모르겠네요.”

“그래요? 저는 한국에서는 펩시를 많이 마시는 줄 알았어요”

“왜요?”

“모르세요?”

“뭘요?” 

“정말 모르는군요. 펩시 상표가 한국의 태극기와 비슷해서요. 저는 한국 사람들이 애국심이 강하다고 들어서 콜라도 자기나라 국기가 그려져 있는 펩시를 많이 마실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한번 확인하고 싶었어요”
 

순원은 태극기 이야기에 다소 놀랐다.

과연 펩시의 상표 그림은 태극기를 닮은 것이 사실이었다.

“저는 몰랐습니다. 펩시콜라의 상표가 태극기를 본 딴 것입니까?” 

“글쎄요. 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디선가 들은 바에 의하면 펩시의 사장 중에 에드워드라 하는 분이 한국인 아이를 입양하면서 그 아이의 모국 한국의 태극기를 보고 음양의 모티브를 변형시켜 디자인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서요. 아무튼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순원씨는 아는 줄 알았지요.”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순원은 갑자기 콜라에 대해서 정통한 제프가 펩시와 무슨 연관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콜라는 전공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당연하지요. 식물학을 공부하니까요. 콜라나무에 대해서 저는 한동안 열심히 연구한 적이 있어요”

“콜라나무?” 

“코카콜라는 코카나무의 잎과 콜라나무의 열매를 원료로 만든 것입니다. 물론 비밀스런 첨가물과 배합비율이 있지만, 어쨌든 코카콜라라는 이름은 코카나무와 콜라나무의 이름에서 각각 따온 것입니다. 저는 사실 콜라의 배합성분을 분석하는데 무척 시간을 보냈지요. 코카콜라의 배합원료는 지구상에 두 사람 밖에 모른다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알고 있거든요. 분석을 통해서 검출해냈지요. 그리고 그건 이제 비밀도 아닙니다. 과학자는 누구나 숨겨진 비밀을 푸는 게 특기잖아요?”

“그러면 제프씨는 코카콜라 원료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까?”

“모두 식물에서 추출한 것이지요. 7가지입니다. 레몬오일, 계피, 육두구, 오렌지, 등화유, 고수풀이지요. 거기에 코카나무의 코카인과 콜라나무의 카데보 성분도 함유되어 있어요.

“배합비율이 중요하지 않아요?”

“배합비율도 다 분석되었습니다. 간단한 일이지요. 문제는 배합순서입니다. 그것에 의해 맛이 좌우된다고 하지요. 그런 것도 알려고 들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야 제가 알 필요를 느끼지는 않지요. 저는 배합원료와 배합비율만 알았어도 만족하니까요. 학문의 보람이지요” 

순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제프라는 사람이 새롭게 보였다.

“왜 코카콜라가 궁금했습니까?”

“당연하지요. 코카콜라만한 음료는 인류 역사상 없습니다. 음료의 세계 제국을 건설한 셈이지요. 빵을 먹어도 밥을 먹어도 국수를 먹어도 콜라는 마십니다. 콜라는 물 이상의 물이 되었습니다. 물을 못 마시는 나라에서도 콜라는 마시지요. 세계인의 물이 되었습니다. 물과 비교할 정도로 몸에 좋은 걸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건강에는 극단적인 면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이런 정도의 음료가 어떻게 구성되었나를 분석해 보고 싶은 것은 과학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지요. 더구나 극비중의 극비라고 하니까 더욱 그렇지요.

그렇지만 진실로 저를 자극한 것은 그것이 바로 식물의 추출물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코카나무와 콜라나무”

“……”

“저는 모든 인간의 생활과 생명의 원천은 식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틀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역사 자체가 먹을 것을 구하는 투쟁의 연속이고, 먹을 것이라는 것은 종국적으로는 결국 식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확이 잘 되는 땅을 차지하기위해 수없는 전쟁이 있었던 것이고, 2천년 동안 피 흘리는 싸움을 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배경에는 종교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명분일 뿐 핵심에는 식물(食物), 즉 먹을 것에 있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가 아닐 바에야 탐낼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콜라의 원료 중 육두구라는 것이 있지요.

육두구 열매를 찾아 인간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전쟁을 벌인 이야기는 유명하지 않습니까?

하긴, 미국이라는 광대한 나라가 사실은 콜럼부스가 후추를 찾아 나섰다가 발견한 대륙이라는 것을 알면 미국의 국기나 국화는 모두 후추에서 상징을 따와야 하는 것이지요. 후추 감사절도 만들어야 되고 후후후…….”

“육두구 전쟁이야기 좀 들려 주시지요.”

“한국에서는 육두구를 안 먹는 모양이군요.”

“저는 육두구가 무언지 모릅니다”

“아. 그렇군요. 한국음식에서 고추를 빼면 한국 사람들 소화가 안된다고 누가 그러던데. 육두구는 고추는 아니지만 유럽 사람들은 후추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향료입니다”

제프는 나중에 책을 읽어 보라고 하고는 아주 간단히 육두구 전쟁에 대해 설명했다. 


미리스티카 프라간스(myristica fragans)열매는 노란색의 반반한 자두와 비슷하다. 하나씩 껍질을 벗기면 점점 더 작은 인형들이 나오는 바부슈카 라는 러시아 인형처럼 이 열매는 비밀을 숨기고 있다.

육두구 열매가 열리면 그 속에는 붉은 색의 둥근 열매가 또 나오고, 그 껍질을 벗기면 씨가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이 씨를 깨면 타원형의 갈색열매가 나온다.

이것이 육두구 열매이다. 

이 과육은 달콤한 초콜렛 캔디 맛을 낸다. 이것이 육두구 꽃 또는 마지스라고 불리며 양념으로 이용된다. 육두구 향기는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매일 맡으며 산다.

1284년 영국에서 1파운드의 육두구 꽃의 값은 양 세마리 값에 해당했다.

마치 오늘날의 로렉스나 롤스로이스와 같은 부의 상징이었다.

허지만 육두구의 원산지는 코카콜라와 같이 신비스런 비밀에 싸여 있었다. 부의 원천이기 때문에 아랍상인들이 이 육두구의 산지를 철저히 비밀에 붙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태리의 마르코 폴로가 이 일을 해냈다. 그는 동방견문록에서 육두구가 인도네시아의 반다 섬에서만 자라고 있다고 썼다.

반다 섬은 반다해의 뉴기니아와 보르네오사이에 있는 6개의 섬이다. 육두구는 반다 섬의 런섬이라는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환상의 양념의 섬으로 유럽인들의 추적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의 알퐁소 드 발부쿠에르크가 1512년 반다 섬에 도착했다.

곧이어 스페인의 마젤란이 항해를 시작했다.

그들은 반다 섬에 도착한 후 육두구를 싣고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지나 3년 후 스페인에 도착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했다.

마젤란은 항해 도중에 죽었다. 

이어서 네덜란드, 영국인들이 육두구의 독점을 둘러싸고 차례로 충돌했다. 네덜란드의 양념무역상 '통합동인도 회사'는 전쟁까지도 위임받고 있었다.

1605년 네덜란드의 군인들이 반다 섬에 상륙하여 원주민과 충돌하였다.

그들은 반다 섬의 주민들을 씨를 말리다시피 살육했다.

그리고 다시 영국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이긴 네덜란드는 오랜 기간 육두구의 무역을 독점하였다.

제프는 말했다.

“말없는 식물이 수없는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이 독점을 종식시킨 것은 식물학자였다.

1770년 프랑스의 어느 식물학자가 육두구 씨를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밀반출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육두구는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인도양의 섬들과 서인도 제도 그리고 브라질 등에서도 자라게 되었다.

제프는 미국에서는 육두구를 넛메그(nutmeg)라고 한다고 했다.

제프의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순원은 기가 죽었다. 

“제프씨는 이곳에서 무엇을 연구하시나요?”

순원이 제프에게 물었다.

“말을 해도 이해가 잘 안될 것입니다.

저는 식물 플랑크톤을 연구합니다. 저의 전공은 식물학 중에서 해양식물학이지요. 산타블루 연구소는 그런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곳이지요. 그곳의 프리드리히 소장과 공동연구를 하면서 이곳에 파견나와 있습니다.

저는 식물 플랑크톤이 지구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명체 합성같은 것은 연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연과학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생명파괴기술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서 해양 식물학에 몸을 던졌습니다.”

산타블루 연구소?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연구소 이름이었다.

그렇다.

순원은 제프에게서 산타블루 연구소 이름을 듣자 내심 반가웠다.

물리학을 공부하였던 과학고 선배 조형준이 최근 박사 학위를 마치고 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났다.

조형준은 존경하는 수재 선배였다. 조형준의 형도 과학고 선배로서 둘 다 수재집안의 형제로 과학고 후배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쉬뢰더 박사님의 유전자 합성에 관해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천만에요, 저는 그런 기술을 오히려 증오합니다. 다만 쉬뢰더씨는 식물에 관해 수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어서 이곳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는 제프의 눈은 푸른 눈이 더 푸르러지는 것 같았다.

순원으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제프의 말이었지만, 다음에 묻기로 하고 입을 다물었다.

순원은 머리의 한쪽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순원의 머릿속은 물리학만이 독점하고 있었고, 그 물리만이 과학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순원은 겹겹이 닫혀 있던 두뇌의 한 쪽 문이 빙긋이 열리며 새로운 햇살이 그 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날부터 순원은 연구소에 나가자 유심히 책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순원의 집중력이 모아지고 있었다. 식물에의 집중력이었다.

‘식물의 감각’, ‘꽃의 우주’, ‘꽃과의 대화’, ‘영혼으로서의 나무’……

라이덴 식물유전공학연구소의 장서는 무궁무진했다.

쉬뢰더씨의 영감이 담겨진 소장물들이었다.

순원은 후르마쓰씨의 서가가 자꾸 연상되었다.

후루마쓰의 서재와는 분위기나 분야가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지만, 연구소를 감돌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었고 그것은 후루마쓰씨의 서재를 감돌고 있던 그것과 비슷했다.

순원은 연구소를 감돌고 있는 ‘그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줄 몰랐지만, 나리코는 이러한 분위기를 ‘나무의 혼이 감도는 방’이라는 표현을 한 것 같았다.

이것은 운명적일까?

순원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버지와 후루마쓰씨가 쉬뢰더씨의 얼굴에 자꾸만 오버랩되는 것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순원은 어려운 책이지만 제프의 도움을 받으면서 식물에 관한 책들을 읽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조형준 선배와 나리코에게 메일을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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