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 데일리폴리 정책연구소장 (前 청와대 대통령 전담통역관) |
방송과 강연 및 칼럼을 쓰고 통역을 하고, 정당들의 정책을 위탁받아 개발하고 보완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는 필자의 업무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든 업무 자체가 유형의 것이 아니라,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대부분 가치를 둔다. 특정 아이템이나 물품의 거래를 볼 때 그것이 보편적인 장사이거나 비즈니스라는 생각들을 한다.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들을 직업으로 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들을 한다. 필자가 출연하는 뉴스나 종편방송을 보고, 일면식 정도 있거나 SNS로 아는 분들이 간혹 만나자는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에서 방송하고 일 하는 필자에게 지방까지 내려와서 얼굴 좀 보자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중에는 지역 언론인도 있고, 강연요청을 핑계 삼아 분명한 목적 없이 연락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짜로 필자의 저서를 제공받기 원하고, 공짜로 강연을 요청하고, 통역은 단지 무슨 관광가이드처럼 말만 옮겨주는 것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사람이니까 그럴 수는 있다.
필자는 요즘 인간관계에 대해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고민을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과연 어떤 것이 옳고 바른 처신이고 올바른 인간관계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관계를 가지고 옥석을 가려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하루하루의 삶과 쌓여가는 경험들에 의해 본의 아니게 관계를 유지해야 할 사람과 그냥 아는 정도로만 지내야 하는 사람과 그냥 스쳐지나가야 할 사람들이 나뉘게 된다. 씁쓸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지만, 그게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간이 갈수록 우유부단한 것보다는 단호한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지키지 못 할 기대감을 주거나 현실가능성 없는 기대를 할 때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역시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내 자신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아무런 기대감이나 조건 없이 베풀 수 있을 때 베풀고 아니면 좀 냉정하더라도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더 지혜롭다는 생각을 한다. 상대를 미워하거나 실망하는 등의 비록 마음으로 짓는 죄로부터도 자유롭기 위해서 말이다.
고민해야 할 것은 밤을 새우고 몇 날 혹은 몇 달이라도 고민해야겠지만,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경우는 극히 적다. 바람이 불면 부는 것이고, 비가 오면 오는 것이고, 화창한 날씨면 있는 그대로를 만끽하면 그만이다. 폭설이 내린다고 사람이 걱정해서 해결할 수 있겠는가. 구태여 걱정할 필요 없이 약간의 인내심만 있으면, 저절로 해결되는 일이 인간관계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사람이 걱정해서 해결되는 경우는 극히 적다.
시야를 가릴 정도의 폭설이 내릴 때 그냥 자신이 할 일에 몰두하면 그만이다. 재해에 가까운 폭설이라도 언젠가는 그치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때 눈을 치우던지 더 나아가 스스로 녹을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다. 비틀즈의 음악 중에 ‘Let it be‘라는 명곡을 대부분은 알고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라는 의미이다. 인간관계도 세상사도 억지로 하려고 고민하고 힘겨워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순리에 맡기는 것이 우리에게 더 큰 평안과 행복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민 데일리폴리 정책연구소장 (前 청와대 대통령 전담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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