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장족(壮族)의 두부만들기, 한국의 고향 닮아 놀라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장족(壮族)의 두부만들기, 한국의 고향 닮아 놀라

14. 도연명의 무릉도원 소수민족 장족(壮族)촌을 가다

  • 승인 2017-09-01 15:08
  • 김인환 시인김인환 시인
▲ 중국 소수민족 장족촌 여성들/사진=김인환
▲ 중국 소수민족 장족촌 여성들/사진=김인환


섣달 그믐날의 장족(壮族) 부락은 남녀노소 누구나가 바쁜 순간들이다.

이른 아침부터 집안 대청소를 시작한다. 거실이며 방 구석 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묵은 거미줄을 거둬내는가 하면 쓸고 닦으며 한나절을 보낸다. 어린 시절의 부모님들이 생각난다. 그때 그 시절에도 그랬다. 머리에 수건을 쓰신 채 어머니는 걸레조각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으셨다. 집 안밖을 깨끗이 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은 옛날 우리들의 모습이다. 지금 壮族의 모습이 어찌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큰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어냈다. 마당이 끝나면 집 앞 골목으로 그 다음에는 마을 곳곳에 이르게 되는데 이 때쯤이면 이 집 저 집에서 나온 남정네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서로가 담배를 권하며 내일(설날)있을 크고 작은 행사들을 거론하기도 한다. 아낙네들은 두부를 만들기도 하고 찹쌀밥을 절구통 옆으로 날라온다. 집에 돌아온 남자들은 찹쌀밥을 찧어 떡을 빚기 좋도록 쿵 쿵 쿵 쿵 집집마다 시끌벅쩍이다. 아이들은 이 집 저 집 몰려다니며 낄낄 깔깔인데 저마다 부침조각으며 떡조각을 입에 달고 다닌다. 까치설은 이곳에도 있었다.

마당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온 집안 식구가 둘러 앉아 재미있는 얘기로 시간을 보낸다. 어떤 집에는 일 년 동안 객지에 나가있던 아들, 딸들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도착, 오랜만의 가족상봉으로 화기애애하기만 하다. 이웃집들까지 몰려와 대도시에서 일한다는 젊은이들을 둘러싸고 그 많은 궁금증을 한 시간 내에 다 해소시켜 버리려는 듯 묻고 묻고 또 묻는다.

그러면 젊은이는 조금도 귀찮지 않다는 표정으로 짐짓 자랑까지 섞어가며 자기가 가 있던 도시며 공장 얘기들을 늘어 놓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얼마나 피곤하고 고된 삶이었으랴. 한달에 겨우 5~6백 위안을 받아 그 중에 절반은 집에 부쳐주고 나머지로 근근히 살아갔을 그들이 아닌가.

일 년에 한 번 구정을(이곳에선 춘지예(春节) 또는 꿔니엔(过年)이라고 부른다.) 맞이하여 고향에 다녀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가. 없는 돈에 부모님, 형제들 선물을 하나라도 더 사고 싶어 몇 끼쯤 굶는 것도 개의치 않았을 저 아름다운 젊은이들, 몇 위안(元)이 아까워 한 두 시간 거리는 보통 걸어 다녔던 저들의 모습에서 옛 우리들의 모습을 되짚어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 지기까지 한다.

한 밤중에 제사를 지내는 습관은 어찌 되었나 하고 기대를 해 보았지만 이미 이들에게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마음은 있을지 모르지만 제사행위는 무척 간소화되어 있었다.

집집마다 1년 365일 거실 중앙에 모셔놓은 신패(神牌)가 있는데 촛불을 켜기가 어려우니까 양 촛대 모양의 붉은 색 전구(실제로 불은 들어오지 않음)가 꽃혀 있다. 신패 위에는 조상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판이 걸려있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의 초상이 많다.(관우 초상이 우상화되고 있는 것은 도교(道教)의 영향이 컸기 때문임)

해질 무렵 떡이며 과자, 과일, 술병 등을 이 신패 앞에 차려놓는 것으로 제사행위는 시작이자 끝이다. 그런데 그 음식을 차리는 모습이 그렇게 진지하고 경건할 수 가 없다. 아마 그러한 동작 가운데 마음 속으로 조상을 생각하며 추억하는 깊은 속내가 들어 있을 터.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엄숙한 분위기에 금방 압도당하고 만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식구들은 잠자리로 돌아갔다. 무슨 얘기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박장대소하면서 3대가 모여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외국인인 나를 보고도 웃고 할아버지를 흉내내는 손자들을 보고도 웃는다. 정말 화목한 가정분위기다. 자정이 되기 전에 잠이 들면 눈이 하얘진다는 까치설의 풍속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었다.

추억 속의 두부

뒷곁에서 촌장 모친의 분주한 모습이 보인다. 지나치다 우연히 목격한 장면이 바로 두부를 만드는 정경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 그것은 다름아닌 옛날 어머님께서 만드시던 두부 제조과정이었다

나는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똑 같을 수가 있을까? 두부는 원래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그 풍습이 한국으로 건너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마치 고추가 일본에서 처음 건너왔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흰콩을 물에 담가놓고 거의 하루를 지낸 후 모든 작업은 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굵은 장작불을 지피고 끓이는 과정에서 마지막 무이 다 빠지고 두부를 네모나게 자르는 모습까지 그 옛날 어머님과 너무나 똑 같았다.

구정 명절도 되었고 외국 손님도 왔기에 만들게 되었노라며 촌장이 한마디 한다.

우리네는 두부가 식기 전에 배추김치를 얹어서 먹거나 된장찌개에 넣어 끓이기도 하고 구워 먹기도 하는데 이들 장족이 먹는 방법은 전혀 색다르다.

그냥 큰 그릇에 떠다가 온 식구가 둘러앉아 나눠먹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중국의 음식들 가운데 두부가공품이 수 백 가지가 넘는다는 것은 두고두고 놀랐던 일이 있다

나는 촌장네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유일한 양념이라면 짠 간장 한 가지 뿐이다. 그래도 맛이 있었다.

또 한 가지 우리네 옛 풍습과 같은 것이 있다면 촌장 아들 편에 들려 이웃집에 퍼 나르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두부를 만들었으니 나눠 먹자는 의미일 것이다. 십여 차례나 두부그릇이 넘나드는 것을 보며 참 아름다운 습관이 지켜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렸을 적에 만드시던 어머님의 이야기를 했더니 이들은 깜작 놀란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만들어 먹었느냐면서 맛은 어땠느냐며 묻기까지 한다.

▲ 중국 소수민족 장족촌 여성들/사진=김인환
▲ 중국 소수민족 장족촌 여성들/사진=김인환

부락이 처음 외부에 알려진 것은 7년 전

늦은 아침을 먹고서는 촌장이 내 손을 이끈다. 어디론가 구경을 나가자는 얘기였다. 부락 앞 공터에는 이미 이 백 명은 실히 될 주민들이 나와 있다. 그 가운데 나이 많은 여자를 빼고 하나같이 壮族의 전통복장을 입고 있다. 화려하다 못해 현란하기까지 한 전통복장.

머리 치장도 아름답다. 하얀 색깔의 모자들 역시 무거워 보일만큼 컸는데 막상 만져보니 무척 가벼운 자재를 사용해서 만든 것들이었다. 누군가가 건전지용 녹음기를 튼다. 장족(壮族)의 특유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50 명에 가까운 여자들이 음악에 맞춰 원을 그리기도 하고 두 줄, 세 줄로 이어지며 춤을 춘다. 남자들과 아이들은 주변에 둘러서서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춰 준다.

설날 맞이 부녀들의 춤판인데 무려 세 시간 이상이나 계속되었다. 춤 동작은 단순한 것으로서 거듭 반복되다가 일순 멈추기도 하며 이어지기를 계속한다.

점심시간이 되자 공터 이 곳 저 곳에 모닥불이 지펴지고 한 곳에는 커다란 가마솥에 돼지고기가 통째로 삶아진다. 이 집 저 집에서 접시며 그릇들이 날라져 오고 푹 삶아진 돼지고기를 즉석에서 베어 나눠 먹는다. 술이 빠질 수가 없다. 여자들도 이 날만은 수줍음도 없이 주는대로 술을 받아 마신다. 전통복장을 한 여자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꾸냥(처녀)들이었다. 작게는 열여섯 살에서 많게는 열아홉살까지 라고하는데 이곳 역시 조혼풍습은 있지만 대부분 열여덟에서 스무살 정도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하나같이 예쁜 얼굴들이다. 이 부락엔 총각이 모자라 외지 총각과 결혼을 많이 하고 있고 중매장이가 뻔질나게 출입한다고 한다.

부락 입구의 동굴이 발견된 것은 7년 전 정부당국의 조사단에 의해 탐사가 끝난 후 3년 정도의 안전 공사를 마무리하고 개통시킨 것은 불과 4년 전이다. 그러나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지만 지난 해부터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있어 몇 몇 집은 민박업소로 짭잘한 수입을 올린다고 촌장이 귀뜸한다.

한 여름 많을 때는 백 여명의 외지인들이 몰려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10여일씩 묵었다 간다고 한다.

广南县 여행국에선 이 지역을 적극 홍보하면서 县까지 도착한 외지인들을 직접 안내해주는 직원도 있다. 그런데 뒤에 안 일이지만 안내를 맡은 직원은 봉급이 없고 관광객들이 쥐어주는 수고비가 수입이라고 한다. 산골 오후는 짧다. 일찍 해가 지는데 추위가 만만치 않다.

밥만 되면 걱정이 앞선다. 갖고 온 전기장판도 무용지물이고 늦도록 모닥불가에 앉았다가 주인식구들이 방으로 들어가면 남은 불씨를 화로에 거둬 담아 내 방으로 들고 온다. 방 공기에 다소나마 온기를 주고 싶어서다. 옷은 있는 대로 다 껴입고 홑이불(이들은 한 겨울에도 홑이불로 산다.)을 뒤집어 쓴 채 오들오들, 와들와들 떨다가 잠이 든다. 이른 새벽에 눈을 뜨지만 온통 칠흑같은 어둠뿐이라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이제나 저제나 해 뜨는 시간만 기다릴 뿐이다.

하루는 촌장 아들과 등산을 했다. 동굴이 발견되기 전 부락사람들이 외부세계와 연결해 왔던 산길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줄기. 그 가운데 서 쪽에 있는 산을 넘어가야 큰 부락이 있고, 여기서 다시 30리쯤 가면 县정부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원숭이들의 농작물 피해 심각해

해발 700M쯤은 될성싶은 산 허리 쪽에 구불구불 산길이 나 있다. 한 겨울이지만 울창한 침엽수지대도 있고 잡목숲도 있다. 잡목숲은 낙엽이 진 후인지라 앙상한 가지들만이 겨울산을 지키고 서 있다.

앞장을 섰던 촌장 아들녀석이 문득 걸음을 멈춘다. 그러더니 침엽수가 울창한 쪽을 가리키며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 역시 호기심이 발동, 귀를 쫑긋하고 긴장을 해 본다.

정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짐승들의 소리인데 낑낑대는 것 같기도 한데 소리의 방향만 감지되고 소리의 윤곽은 쉽게 잡히지가 않는다.

녀석은 잠시 후에 원숭이들이라고 귀띔 해 준다.

아니, 원숭이라니?

녀석의 말인 즉 산마다 야생원숭이가 많이 있다고 한다. 한 여름에는 부락까지 내려와 음식물을 훔쳐가기도 하고 옥수수 밭이나 기타 농작물을 수탈해 가는 나쁜 놈들이라고 욕까지 한다.

원숭이 얘기는 나중에 집에 돌아와 촌장한테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덫을 놓아 잡기도 하지만 워낙 총명한 원숭이들인지라 잡기가 무척 힘이 들고, 잡고 나면 무척 난폭하게 굴어서 위험한 동물이라는 얘기였다.

농작물 피해가 심각해 한 때는 정부에서 계획적인 포획작전에 돌입할 때도 있었지만 워낙 깊은 곳에 숨어서 사람이 접근하면 어디로 도망갔는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한 두 마리가 아니라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데 지난 여름에도 30여 마리가 부락 근처에까지 와서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원숭이 소리를 뒤로 한 채 최고 정상에까지 올라가 보았다. 집을 떠난 지 세 시간 만에 도착했으니까 비교적 느린 걸음인 셈이다.

촌장 아들은 이 부근에는 자주 왔지만 오늘처럼 최고 정상까지는 올라와 보지 못했었다며 스스로 대결해 나는 눈치다. 마을에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노라며 으스대기까지 한다.

역시 높은 지대에 오르고 보니 서쪽 저 멀리 가물가물 부락의 모습이 보인다.

이미 얘기 들은 대로 4시간쯤 걸려야 갈 수 있는 부락이다.

내려오는 길은 또 다른 길을 택했다.

그런데 오는 도중에 두 군데나 동굴 탐사작업을 하던 곳을 발견케 되었다.

내년도부터 다시 본격적인 발굴작업에 들어갈 것리라는 이 동굴은 아직까지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과연 얼마만한 규모의 동굴이며, 안에는 무슨 석순이 자라고 있을 지 궁금할 뿐이다.

부락사람들은 한 겨울이라도 잘 자라는 채소밭들을 가꾸고 있었다. 즉 모든 채소들을 자급자족한다는 壮族마을 사람들. 인심도 후해서 배추가 필요하면 주인에게 몇 포기 뽑아다 먹겠다고 얘기만 하면 되고, 또 다른 채소가 필요하면 밭 주인에게 필요한 만큼 달라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서로가 농작물을 나눠먹는 인심이 그냥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30여일 간의 壮族마을 생활은 도시에 찌든 심신을 말끔히 씻어주는 청량제가 되었다. 식사 때가 되면 아무 집이고 들어가 끼어 앉을 만큼 친숙해지기도 했다.

부락을 떠날 때 거의 온 동네 사람이 다 나오다시피 하며 석별을 정을 나누었다. 촌장 부인을 비롯 몇 몇 여자들이 훌쩍거리기 시작하자 남자들도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질 않는다. 나 역시 더 오래 지체하다가는 눈물을 보일 것 같아 서둘러 동굴횡단 목선에 올라탔다. 정말 뜨거운 가슴을 안고 사는 장족(壮族)들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 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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