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학창시절부터 민족부흥운동 단체인 ‘흥사단’활동을 했습니다. 단체로부터 받은 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사회에 별다른 이바지도 못한 채, 고물이 되어가고 있답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단체 활동을 통해 만날수록 향기 넘치고, 무한한 깊이와 넓이가 있는 선후배 동지들을 만난 것은 무엇보다 큰 행운이요, 즐거움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다보니, 동지들이 필자를 보는 시각이 학창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더군요. 부모가 자식 보듯 하는 따뜻한 배려라 생각할 수 있고, 친근감이나 애정의 표현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한편으론 필자가 성장이 멈춰있고, 발전이 없는 탓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존중받지 못하는 탓이라 보이기도 합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여러 종류의 『삼국지』를 보고 자랍니다. 필자도 다르지 않지요. 『삼국지』에 보면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휘하에 여몽呂蒙이란 명장이 있지요. 그는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려는 일념으로 군인이 됩니다. 일자무식一字無識이지만 힘이 장사라 뛰어난 장수가 되지요. 학식이 모자란 것이 늘 아쉬웠던 손권이 공부를 권유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촉蜀의 관우關羽와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도독이었던 노숙魯肅에게 여몽이 계책을 묻습니다. 여몽을 무식하다고 경시하던 노숙은 엉겁결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합니다. 이 때 여몽이 노숙을 나무라며 다섯 가지 계책을 내놓습니다. 노숙은 여몽의 탁월한 지략에 깜짝 놀랍니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괄목상대刮目相對입니다. 눈을 비비고 상대방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다른 사람의 재주나 실력이 전보다 훨씬 진보한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강표전에 이르기를 노숙이 여몽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나는 이제까지 그대가 무예만 능한 줄 알고 있었는데, 지금 그댈 보니 학문이 뛰어난 것이 이미 옛날 오나라 시골구석에 있던 아몽(阿蒙, 여몽의 어렸을 때 이름)이 아니구려.” 여몽이 말하기를 “선비가 여러 날을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江表傳曰, 肅拊蒙背曰, 吾謂大弟但有武略耳, 至於今者, 學識英博, 非復吳下阿蒙. 蒙曰, 士別三日, 卽更刮目相待.)」
우리 스스로 늘 변화해야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변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뭇사람들로부터 잊혀 집니다. 나아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디자인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도 변합니다. 가까이 만나는 사람 또한 늘 새롭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변화를 보지 못하는 것은 개인뿐만이 아닙니다. 정부 인사가 매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두어 명을 제외하고 구설에 오르지 않은 후보가 없습니다. 다시 보아야 한다는 말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를 말합니다. 측근 인사를 하다 보니 묻지 마 인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 후보자나 추천인 둘 다 공개 바보가 되는 일을 반복해서야 되겠습니까? 한번쯤 돌아보고, 확인해 본 뒤 추천하면 참 좋겠습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도 있습니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공자孔子의 제자 중 안회顔回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재주와 덕, 학문이 뛰어난 훌륭함을 두고 이른 말이라 하는데요. 나중 나온 사람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서 두려움은 존중하고 주목하는 것을 이릅니다. 한발 더 나아가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낫다는 후생각고後生角高나 청출어람(靑出於藍) 같은 말도 있지요. 우리 문화에서 후배가 선배를 존경하는 것이야 당연시 됩니다. 후배는 자신보다 더 큰 장래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마땅히 사랑과 존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권 존중이란 말도 많이 회자 됩니다. 존중은 사람들의 고유성이나 정체성, 권리 및 존엄성을 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존중은 자기 발전의 시작이고, 타인에 대한 존중은 도덕의 시작입니다.
가까이 있는 배우자나 부모, 자식, 이웃을 매일매일 새롭게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상호 존중의 시작입니다. 존중의 문화가 서로를 복되게 합니다. 보면 볼수록 깊이가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크나큰 즐거움입니다. 가까이 할수록 향기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커다란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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