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견한 소나무를 보고 있자니 문득 언젠가 들었던 ‘못난 소나무’ 이야기가 생각났다.
옛 어른들은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토질이 좋고 비바람을 덜 받아 곧고 수려하게 자란 소나무는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기 위해 베어가 버리고, 괴이하고 특이한 소나무 또한 분재용으로 송두리째 뽑아가 버린다.
그러나 같은 땅이라도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린 못난 소나무는 모진 고생을 하며 자라고, 크게 자란다해도 동량(棟梁)이 되지 못하니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못난 소나무는 산에 남아 산을 지키며 씨를 뿌려 자손을 번성케 하고 모진 재해에도 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산을 보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못난 소나무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건만 우린 잘나고 멋진 소나무에만 관심 있어 한다.
『명심보감』에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天不生無祿之人 地不長無名之草)’라 하였다. ‘하늘은 녹(능력)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키우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즉,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나무와 풀들도 나름대로의 쓰임새가 있고, 다른 것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개성과 아름다움이 있어 어떤 한 종(種)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 풀들도 이렇게 제각각 개성과 존재의 가치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은 더더욱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사명과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나라 태국는 태어날 때부터 빈부격차가 매우 심해 평생 신분이 바뀌는 일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오히려 자신이 겪는 부귀빈천을 전생의 인과에 따르는 일로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현세에 남에게 베풀며 덕이 되게 살면 다음 생에 좋은 조건에 태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좌절하지 않고 현생을 부지런히 살아간다고 한다.
이런 그들의 삶을 태국만의 독특한 문화 ‘탐분’에서 엿볼 수 있다. 탐분은 ‘선을 쌓다’, ‘자비심을 베풀다’, ‘공덕을 쌓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누는 걸 기본적 정서로 하여 가진 것 이상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세계인들은 태국의 수도 방콕을 ‘천사의 도시’라고 부른다.
우리는 나보다 못한 이들을 우습게 알고 비난하고 깍아 내려서도 안 되지만 또한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지나치게 폄하하거나 자학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성품과 그릇에 맞게 바르게 노력하여 행복한 인생 지도를 그려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태국인들처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현세의 삶에서 나눔의 행복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이상 세상은 각박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잣대로 타인의 행과 불행을 판단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잘난 소나무인지, 못난 소나무인지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존재의 가치를 찾아 이 사회에 제 몫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더 이상 못난 소나무가 아니라 꼭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김소영(태민) 수필가
![]()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