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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
그런데 -물론 거의 모든 학교가 그렇지만- 학교 앞에는 복사ㆍ제본하는 가게 하나를 빼면 온통 음식점이었다. ‘욜로(YOLO)’라는 알 수 없는 이름의 음식점도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실내포장마차였는데, ‘You Only Live Once’라는 뜻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영어 문장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 실내포차 간판을 보면서 ‘먹을 수 있을 때 실컷 먹어라’는 의미로 읽혔다.
‘라면국물 편의점 포차’라는 집도 있었다. ‘청춘아! 라면국물에 소주 한잔으로 밤을 새워보자’는 문구가 함께 눈에 띄었다.
마음이 아팠다. 청년들의 고민이 함께 읽혀지는 것 같았다.
내가 젊었던 40년 전에도 짬뽕국물에 고량주 먹으며 통음(痛飮)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다 선배가 군만두, 탕수육이라도 하나 사주면 감읍(感泣)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어렵고 힘들기는 했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취직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고, 큰 꿈은 못 꾸더라도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젊은이는 많지 않았다.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하던 백색전화기가 집집마다 보급되고, TV와 냉장고로 대변되는 소위 백색가전도 장만할 수 있었다.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개발독재를 애써 눈 감던 시절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단군 이래 가장 좋은 스펙을 가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회적으로는 그리 바람직스럽지 않은 현상을 탓할 수가 없다. 이런 현실을 사는 청춘의 아픔이 안타깝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 또한 참으로 안타깝다.
그렇지만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연령대와 지역과 직역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 불안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는 노인과 중년층도 마찬가지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탄만 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길이 없다면 만들겠다는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대구에 강연하러 갔다가 오히려 배우고 왔다. 대구 엔젤로타리클럽의 이명숙 회장은 당신의 지난 1년 간 활동을 보고하면서 이렇게 마무리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승리한 이유를 아십니까? 토끼는 거북이를 이기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방심하고 잠이 들었던 것이고, 거북이의 목표는 오로지 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발 한발 자기 페이스대로 걸어서 이길 수 있었던 겁니다.”
내가 어린 시절 잘 사는 부모를 둔 친구들도 많았다. 수십 년을 살다 보니 부모 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성공한 친구도 많지만 그 많던 재산과 명예가 어디 갔는지 찾아볼 수 없는 친구도 많다. 적수공권에서 성공한 친구도 많다. 인생은 결국 새옹지마이고, 내가 지금 노력하는 것이 당장 빛을 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작은 노력들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그 성장을 바탕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마음으로 살아 주기를 젊은이들에 바란다.
인생의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젊은이들은 불안하다. 불확실한 미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축복일 수도, 불안감으로 잠 못 이루게 하는 저주일 수도 있다. 5000년 전 젊은이들도 그랬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려는 조급한 마음으로 달렸다면 아마도 몸을 다쳐 경주를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항아리에 들어 있는 물은 다 차야 넘치고, 99℃로 달아오른 물은 1도를 채워야 끓는다. 차분한 마음으로 한 발씩 내딛으며 스스로 정한 목적지를 향하는 거북이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공자님은 이런 마음을 항심(恒心)이라고 하셨다.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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