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영 충남 정산고 교사 |
내가 5년째 몸담고 있는 학교는 신입생의 수가 점점 줄고 있는 면 지역의 고등학교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초, 중, 고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진한 공동체적 마인드를 갖고 있다. 지금은 처음 발령받았던 5년 전보다 그 모습이 다소 흐릿해진 감이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촌놈의 기질이 다분하다. 어른을 보면 하루에 열 번을 만나더라도 매번 안녕하시냐고 묻는다. 선생님께 꾸중을 들으면 아무리 억울한 훈계에도 그 흔한 “에이 XX~” 따위는 절대 배설하지 않는다.
이 학교에 근무하는 5년간 난 단 한 번도 학생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 않았다. 2014년에 담임했던 우리 반 녀석들은 지금도 입대를 앞두고 인사를 하러 온다든가, 첫 휴가를 나와서는 굳이 담임을 만나러 학교를 찾아온다. 이미 한참이 지난 옛 시절의 정서가 이 고장, 이 시골 학교에는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래되지 않은 추억을 조금 더 꺼내 볼까. 고3인 우리 반 아이들은 공부로는 학년 꼴찌였지만 그 와중에 전교 1등을 품고 있는, 구성원이 독특한 학급이었다. 담임 노릇하기가 꽤나 어려웠던 우리 반을 맡게 되면서 즐겁게나 지내자는 학급경영 목표를 세웠다. 교내 합창대회를 우여곡절 끝에 1등으로 마무리하면서 스멀스멀 생긴 자신감과 애교심 아니, 애반심(?)이 여러 에피소드로 이어졌다. 2년 간 하루도 조퇴 없는 날이 없던 녀석이 1년을 무사히 완주했고, 급식실을 빌려 뭇시선들을 피해 문 잠그고 구워 먹던 고기 파티, 수능 후 책상 치워 놓고 개최한 담임 배(杯) 공기놀이 배틀 등이 그것이다.
선생님들이 가장 수업하기 싫은 반이었던 우리 반은 부러움을 받는 반이 되었다. 꼴찌 반에도 합창대회를 기발하게 연출한 아이디어맨이 있었고, 부적응했던 친구를 보듬는 따뜻한 리더십이 있었고, 담임 몰래 생일을 알아내서 깜짝쇼를 기획하는 추진력도 있었다. 고기 파티를 할 때는 어려운 친구를 배려해 2인분의 준비물을 챙겨 오는 녀석에게 감동하고, 남 칭찬하기가 일상이 되어 있는 아이들이 신기했다. 이들이 남다르게 인성이 바르고, 친화력이 있고, 졸업 후에도 좋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유는 시골이라는 지역공동체가 갖는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개정 교육과정이 말하는 대로의 핵심역량을 가진 인재로 우리 아이들을 성장케 할 수 있는 답은 공동체의 재건에 있지 않을까 한다. 가정과 마을, 그리고 학교가 전통적인 공동체 기능을 회복할 때 아이들은 의사소통이 원만하고, 창의성을 발휘하고, 자기관리능력이 있는 인재로 성장할 것이다.
성적이라는 단일 요소가 아닌 다양한 학생 활동을 통해 그들을 눈여겨 볼 때 이미 그들 안에 핵심 역량이 잠재해 있음에 깜짝 놀라게 된다. 다만 그 핵심 역량은 잠재하되 발현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교사요, 좋은 공동체인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 논의도 시의적절한 시도라 생각된다.
오은영 충남 정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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