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윤옥 전 국회의원 |
몇 년 전 방송에서 인기를 끌었던 꽃보다 할배가 생각났다. 효도관광이 아닌 유럽 배낭여행을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방영된 이후 실제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노년층이 많아졌다고 한다. 건강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청년시절보다 더 멋진 노후를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 아마도 우리는 모두 액티브 시니어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액티브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서울에 사는 노인 인구가 매년 5만 명씩 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내년 말쯤에는 서울시 인구의 14% 이상이 노인인구가 되며 서울시는 고령사회가 된다.
고령사회 진입의 문제는 서울만이 아니다. 전국이 저출산의 늪에 빠져들면서 이미 지방 농어촌은 고령사회화 된지 오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출생아수는 2만 8900명으로 1년 전보다 4천명이나 줄었다.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저라고 한다. 상반기 출생아수는 18만 8000여 명에 그쳤고 이를 기준으로 합계출산율을 환산하면 1.04명이다. 지난해의 합계출산율은 1.17명이었다.
저출산 고령화는 이미 20년 전부터 예견된 문제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령사회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위기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을까. 얼마 전 한국은행은 이대로 고령화가 이어지면 2050년 경제활동인구는 현재의 87% 수준으로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드는데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는 늘어난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에는 생산가능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75년에는 1.2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온다. 다시 말해 수입의 절반을 노인 부양을 위한 세금으로 지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처럼 고령화 문제가 지속되면 부양비, 복지비용등의 청장년층 부양부담이 늘면서 저축의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이는 경상수지 감소를 초래할 것이다. 게다가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니 청장년층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고 이는 세대갈등과 사회 혼란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이 야기한 사회 문제는 우리와 가까운 일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주요 기업 10곳 중 3~4곳은 일손 부족을 겪고 있다. 최근 일본의 경기는 확대되고 있지만,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의 인구구조는 그러한 경기 확장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51%나 많다는 게 심각한 청년 실업문제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는 부러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지만, 정작 일손이 부족한 일본 기업들은 수주활동과 생산 활동 지연,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수익 압박 때문에 이런 구인난은 일본 경제에 다시 악영향을 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고령화의 더 큰 문제는 세대갈등이다.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고령인구가 늘고 아이들이 줄자 어린이 놀이터를 철거하고 노인 운동기구 설치를 늘려왔다. 노인들의 공간에서는 아이들의 놀이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금지되었고, 뛰어놀 권리를 빼앗긴 아이들은 골목이나 도로 등에 내몰리면서 오히려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 세금으로 노인을 부양하고 있는 청장년층 입장에서 자녀의 놀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 노인들을 위한 사회는 반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고령사회를 앞둔 지금 더 늦기 전에 청년과 중장년, 노년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내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프랑스의 노인들은 운동과 취미생활, 자원봉사로 노년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안정적인 사회보장제도 덕분에 은퇴 후 받는 연금은 은퇴 전 임금의 90%가 넘는다. 초고령사회 일본은 노인들의 활발한 노동참여로 고령화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6년 고령자고용안정법에 따라 정년을 65세로 연장했다. 고용보험에서 고령자의 임금을 지원해주고 고령자를 고용하는 기업에게는 지원금 외에 세금우대 혜택도 준다. 특히 의료, 간호시장에서 시니어 간호사, 간병사 고용이 늘고 있는데 일하는 시니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긍정적이다.
우리나라의 75세 이상 고융율은 OECD 회원국 중 1위, 65세 이상 고용율은 2위임에도 불구하고 노인빈곤율도 OECD 1위이다. 이른 정년과 준비되지 않은 노후도 문제지만 노인의 일자리가 대부분 단순 노무직이다 보니 생계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건강하고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는 개인만의 꿈이 아닌 우리 사회의 꿈이다.
액티브 시니어가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고령사회를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박윤옥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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