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외부세계와 동굴 하나로 연결된 ‘무릉도원’… 장족촌의 매력에 풍덩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외부세계와 동굴 하나로 연결된 ‘무릉도원’… 장족촌의 매력에 풍덩

13. 소수민족 장족(壮族)촌을 가다

  • 승인 2017-08-25 00:01
  • 김인환 시인김인환 시인
▲ 평화로운 장족 부락/사진=김인환
▲ 평화로운 장족 부락/사진=김인환


600년 전 3개 성씨가 피난 와서 이룬 집성촌

동굴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마을 앞 쪽에서부터 시작되는 냇물이었다.

조그만 구름다리를 건너 마을 안길로 접어 들었다.

한 겨울인데도 온통 유채꽃이 만발, 노랑색 잔치가 한창이다.

사방에는 해발 1천미터가 넘을 것 같은 산들이 뺑 둘러 서 있고 그 안 쪽으로 50여 호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이들이 길에서 제기차기며 자치기를 하다말고 낯선 이방인의 출현에 놀란 듯 동그란 눈으로 쳐다본다.

어떤 녀석은 뒤쫓아오며 작대기로 내 배낭을 툭 툭 쳐 보기도 하고 “와이 꾸어 런, 와이 꾸어 런”(外国人,外国人)하며 농을 걸어오기도 한다.

말로만 듣던 도원경 빠메이춘 (桃园景 坝美村) 도착과 함께 처음 듣게되는 환영인사인 셈이다.

동굴 앞 마을에서 보았던 세외도원(世外桃源) 부락 어린이들의 제기차기며 자치가, 딱지치기를 보며 한국의 어린이들을 떠올렸던 내가 다시 이 곳에서 동심의 뛰노는 모습들과 만나 깊은 감회에 젖게 된다.

文山시 여행국 란국장이 적어준 이름은 빠메이춘 황학정 촌장 (坝美村 黎学郑 村长)이었다.

지나가는 노인네에게 이름을 보여주었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산둥성 중간쯤에 위치한 황촌장 집으로 들어섰다. 젊은 부부가 장작을 패다가 낯선 사람을 맞이한다.

文山시 정부 兰국장 소개로 왔다고 하니까 금세 환한 얼굴로 변하며 짐을 받아 든다. 누추한 집을 찾아주어 기쁘다면서 안에 대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니 두 노인네가 나오며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젊은 내외가 모시고 있는 부모님들이었다.

2층 방은 노인네들이 쓰고 1층 방 두 개를 부부와 아들 딸이 각각 썼던 모양이나 내가 온다는 바람에 6학년짜리 아들과 4학년짜리 딸은 방을 빼앗기고 말았다.

방이래 봤자 적당히 두드려 맞춘 나무침대 하나가 있고 바닥은 그냥 흙이다. 벽면 역시 황토흙을 거칠게 바른 상태 그대로이고, 방 한 쪽 구석에 커다란 괴짝이 하나 놓여있는 게 살림의 전부.

거실이나 방 안 모두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전기도 없고 전화도 없는 마을이고 외부세계와는 동굴 하나로 연결될 뿐인 절해고도 같은 산골짜기 부락이 바로 坝美村이다.

노인네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이 부락은 壮族 3백여명이 살고 있다는 것과 그들 모두는이( 黎씨 아니면 황(黄)씨, 국(菊)씨 중에 하나로서 3개의 성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부락의 역사는 대략 6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는데 그 당시 전쟁을 피해 친구 세 명이 이곳으로 들어와 은둔생활을 시작한 것이 그 효시가 된다고.

4년 전 동굴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저 앞산을 넘어 10리쯤 가야 마을이 있고 소학교가 있다고 한다. 5일장이 열리는 곳은 그 곳에서도 10리를 더 가야 되는데, 한 달에 한 번쯤 장터에 나갔다 오는 일이 이곳 부락민들에겐 최대의 나들이라고 한다.

어린이들을 소학교에 보내기 시작한 것도 수 년 전의 일로서 대부분이 문맹자(文盲者)다. 다행히 황촌장은 50리 길이 넘는 향(乡)정부가 있는 곳에 유학을 가서 중학교까지 졸업한 지식인이고 비록 더듬거리지만 보통화(普通话)로 내 이야기를 듣고 또 부락민들에게 통역도 겸할 수 있었다.

장작 패던 일을 중단하고 촌장은 마당 한 쪽에 종종거리며 노닐던 장닭을 잡노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법석이다. 가둬 놓지 않고 제멋대로 자란 녀석들이라 얼마나 잽싼지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노인들까지 가세하여 한 쪽 구석으로 몰아 부치면서 겨우 퍼덕이는 장닭을 움켜 잡는다.

번쩍 들어 올려 보이는 녀석은 보통 크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필경 나를 위해 특별요리를 준비하려는 마음 씀씀이다.

산골마을은 해가 짧다. 저녁 무렵이 되면서 쌀쌀한 바람으로 변한다. 으스스 추워진다. 힘들여 들고 온 전기장판이 무용지물이 될 줄이야.

혜주(惠州) 가방집에서 특별히 주문제작한 주머니에 전기장판을 넣고 다녔는데 겉으로 보기엔 골프가방 같기도 하고 아니면 엽총케이스 같기도 해서 사람들은 신기한 물건인양 쳐다보곤 했다. 그러나 전기가 없는 이곳 마을에선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천덕꾸러기 짐일 수 밖에.

▲ 촌장 가족들과 함께/사진=김인환
▲ 촌장 가족들과 함께/사진=김인환

6학년짜리 아들이 보통 영악한 녀석이 아니다. 방에까지 따라 들어와 주위를 맴돌며 신기해 하더니 별별 것을 다 물어본다.

한국은 어디 있는 나라냐. 사람들은 몇 명이 사느냐. 문자가 있느냐. 밥을 먹느냐. 빵을 먹느냐. 실컷 궁금증을 해소시키더니 문득 자기가 부락 곳 곳을 안내하겠다고 자청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해서 이 부락에 머무는 동안 줄곧 녀석이 안내자가 된다. 저녁식사는 닭 한 마리로 온 식구가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고기는 무척 질겼지만 씹을 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놓아서 키우는 닭인지라 온갖 벌레란 벌레는 다 잡아 먹었을 터이니 영양은 최고이겠지만 고기맛이 질긴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중국식 샤브샤브의 맛

식탁이 따로 없다. 거실 한 가운데에 모닥불이 담긴 화로가 있고 그 위에 세수대야 크기의 알미늄 솥이 올려지고 각 종 양념이 섞인 탕이 부글부글 끓자 토막 낸 닭고기를 집어 넣었다가 건져 먹는다. 훠꾸어(火锅)라고 하는 것인데 우리들의 샤브샤브 요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 싶다.

고기를 건져먹다가 사이사이에 야채를 넣기도 하는데 무장다리 비슷하다. 줄기는 억세어서 씹기가 어색할 정도지만 이들은 맛있게 잘도 먹는다. 고기가 다 없어질 즈음해서 밥을 떠다가 먹는다. 희한하게 우리들처럼 밥과 반찬을 같이 먹는 게 아니라 반찬부터 먼저 다 먹은 후에 밥은 그냥 맨밥인 채 입안으로 떠 넘긴다. 고기와 야채로 이미 배를 불린 후인지라 밥생각이 없어서 다행이다

이곳 역시 밥은 언제 해 놓은 것인지 모를 찬밥 덩어리였다.

식사 도중 참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壮族의 풍습 가운데 한 가지다.

우리네처럼 여자가 시집을 오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네 집에 장가를 간다는 얘기였다.

장가가면 성도 바꿔

그냥 가는 정도가 아니라 여자집에 살면서 남자는 성까지 여자쪽 성으로 바꿔버린다.

보통 3년 내지 7년 정도 살다가 남자가 독립할만하면 식솔을 거느리고 분가해 나오는데 그때부터는 다시 본래의 성을 되찾아 쓴다고 한다.

촌장의 아버지는 7년 간 처가살이를 했고, 촌장은 3년 만에 본가로 돌아왔다면서 친구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평생 처가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참 재밌는 풍습이 아닐 수 없다.

촌장의 부인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미다. 결코 얼굴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하루종일 일거리를 손에서 떼어놓질 않는다. 그만큼 부지런한 살림꾼이다.

해가 지면서 사방이 어두워지니까 전깃불을 켠다. 분명 전기가 없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다 싶어 유심히 살펴보니 참으로 걸작 중에 걸작이다. 재래식 화장실의 가스를 이용한 것으로서 비상한 머리들을 갖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튿날 날이 밝는 대로 촌장을 앞 세워 분뇨탱크로 갔다. 변소에 1m쯤 거리를 둔 탱크가 마련돼 있고 그곳에서 분뇨가스가 저장되었다가 호스를 타고 호롱불로 연결되도록 해 놓았다. 물론 밝기는 전구 10촉 쯤 정도니까 겨우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

하루에 3시간 정도 전구를 밝힐 수 있다고 하는데 집집마다 있는 것은 아니다.

볼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지혜로운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이틀째 되는 날은 부락 위에 또 하나의 동굴이 있다고 해서 탐사 차 떠나기로 했다.

상류에 있다는 제2의 동굴을 가려면 부락을 횡단해야만 했다. 그렇게 큰 부락은 아니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옥들을 구경하면서 걷는 기분도 괜찮았다. 부락 중간쯤에는 두 팔을 벌이고 세 번 쯤 돌아야 될 만큼 어마어마한 나무 두 그루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다. 나무 밑으로는 수 백 갈래로 뿌리가 지상위로 뻗어있다.

그 뿌리들은 서로가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은 채 엉켜서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나무는 위로 올라가면서 다시 십 여 개의 굵은 가지로 뻗어 나가며 하늘이 보이지 않을만큼 무성한 잎을 키우고 있다. 한 마디로 장관이다.

촌장으로부터 사전에 들은 바가 있다. 6백 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이 나무들에 대해서. 그러니까 이 부락에 처음 들어왔다는 壮族조상들에 의해 심어지고 키워진 나무이리라.

집들은 모양이 다양하다. 옛날 우리들 고향마을처럼 나무 울타리에 돌담이 있는가하면 현대식 붉은 벽돌집도 보인다. 대부분 담장이 없고, 담이 있어도 허리춤 정도 높이여서 안 쪽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대문 윗 쪽에 가위며 거울을 달아놓고 있는 모양새다. 그 크기만 다를 뿐 거의 가 다 악세사리를 붙여놓은 것처럼 똑같다. 이것은 뒤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壮族들의 오랜 풍습이었다. 가위는 악신(恶神)이 들어오면 잘라버리겠다는 방어적 표현이고(상징물이고), 거울은 그 본체가 밝은 것이듯 맑고 밝은 일들만 생기라는 의미로 달아놓는 것이라고 한다.

미신의 일종이겠지만 이웃집들이 다 하면 우리집도 할 수 밖에 없는 일종의 공동체의식 같은 것이라고 봐야 옳을 것 같다.

▲ 장족촌 모습/사진=김인환
▲ 장족촌 모습/사진=김인환

부락이 끝날 무렵이 되자 어디선가 들어본 듯싶은 물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그 물소리는 가까히 갈수록 더 요란했다. 개울 쪽으로 내려가니 작으만 저수지처럼 물이 고여있고 댐같은 둑 너머로 넘치며 떨어져내리는 물소리가 시원스럽기만 하다. 저수지에는 서 너 척의 작은 목선들이 한가롭게 떠 있었다.

앞에 서서 촐랑대던 촌장아들 녀석이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제 키의 두 배가 넘을 긴 장대를 끌고 나온다. 그리고는 묶여있는 목선 중의 하나를 풀고 빨리 타라고 재촉이다. 목선은 배의 흉내만 냈을 뿐 둘이 탔는데도 기웃둥 기웃둥 중심잡기가 보통 힘든게 아니다. 그래도 녀석은 긴 장대를 물 속에 밀어넣고 배를 몰아가는 솜씨가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잠시 눈여겨 보다가 장대를 빼았다시피 거머쥐고 이쪽 저 쪽 배를 몰아보았다. 쉽지가 않다. 상류 쪽을 향해 가야하니까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약 백 미터쯤 올라가니 커다란 동굴이 나타났다.

이곳 역시 캄캄한 동굴. 손전등도 없이 어림짐작으로 배를 몰아간다는 일은 더욱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나 동굴의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아서 곧 저 쪽 끝이 환하게 보인다. 온 몸에 땀이 흐를 정도로 힘이 들었다. 다시 동굴 밖으로 나오자 거기서 배를 멈춰야만 했다. 다시 새로운 작은 댐이 보이고 작은 저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배를 묶어놓고 둑 위로 올라서자 그 곳 역시 10여 척의 목선들이 보이고 뱃사공도 몇 명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이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녀석이 쫓아가더니 무슨 얘긴가 나를 소개하는 모양이다.

동굴은 지금 지나온 것만이 아니라 상류에 세 번째의 동굴이 보였고, 지금 저 사공들은 이 동굴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해 줄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공 중에 한 명이 배를 푸는 모습이 보였고 아들 녀석이 쫓아와 내 손을 잡아 끈다. 두 명이 타도 불안하던 배에 세 명이 탔지만 배는 매우 안정감있게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배를 타고 하바나를 떠날 때…) 이렇게 시작하는 이태리 민요가 나도 모르게 휘파람으로 흘러 나온다. 세 번째 동굴은 사공이 내미는 손전등을 인계받아 처음 부락을 들어올 때 처럼 이 곳 저 곳을 비춰보며 전진할 수 있었다. 천정이며 벽면의 모양이 기기묘묘한 것이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형상들이다.

이렇게 한 20분쯤 지나려니 다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고 마지막 입구에 다다랐다.

신비의 고장, 환상적인 동굴의 세계.

내가 지금 도원명의 작품세계에서 만났던 도원경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이 일어난다.

노랑색 세계, 유채밭

세 번째 동굴을 벗어났다. 심호흡을 하며 둔덕 위로 올라 서니 광활한 신천지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온통 세상은 노란색 일색이다. 장시간 어두운 동굴을 지나온 탓에 혹시 착시현상은 아닐까 눈을 감았다 떴다를 몇 번 반복해 본다. 어쩌면 저렇듯 노랑 물감을 듬뿍 듬뿍 뿌려 놓을 수 있단 말인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다. 짙은 녹색 바탕(유채)이 밑바탕이 되어 있는 그 위에로 노랑색(유채꽃)빛깔은 황홀하다 못해 환상적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온 촌장 아들은 이 쪽 저 쪽을 가리키며 저 곳은 어디이고 또 저곳은 어디라고 떠들어 대는데 전혀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녀석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가야 닿을 수 있는 부락을 찾아갔다. 한가한 농촌마을이다. 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골목 어구에 작은 구멍가게까지 그 생김생김이 한국의 농촌과 똑 같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코흘리개부터 초등학생들까지 1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는데 정면에 놓인 TV에 집중해 있는 중이었다.

이 부락까지는 전기가 들어온다는 얘기가 된다.

1960년대 아니 70년대 초까지만해도 한국이 그러했다. 한 부락에 TV가 있는 집은 한두 집 정도. 그것도 저녁 이후에만 방송이 되던 때여서 연속극 시간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안방이나 마루, 심지어는 마당에서까지 가득 차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이 곳이 그렇다. 대도시가 아닌 시골지역에 가면 그때 그 시절의 우리네와 똑같은 양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 우선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고 그렇다면 전화도 가능하리라 싶었다.

주인 여자에게 전화가 있느냐? 빌려 쓸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두 말 없이 안방에 있던 전화기를 끌어 내준다. 욕심 같아서는 한국에도 하고 싶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청을 할 수가 없어 文山시에 있는 兰국장과 广南县여행국 육용(陆勇)씨에게 안부전화 정도로 끝냈다. 요금을 물으니까 알아서 달라고 한다. 이런 경우가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다. 정확한 요금을 청구하면 조금 비싼 기분이 들어도 지불하면 그만인데 알아서 달라는 데에는 이해하기가 정말 힘이 든다.

즉석 하모니카 연주회

10위안을 주니깐 너무 많다며 5위안을 거슬러 준다. TV시청에 열중하던 꼬마 녀석들이 낯선 이방인을 보자 저희들끼리 쿡쿡 찌르며 수근수근 댄다. 고향마을 어린이들을 만난 것처럼 기쁘다.

언제나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하모니카를 꺼내 한 곡조 뽑아주었더니 박수를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열광적이다. 이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청중들이 있었다니! 신이 난 김에 세 곡을 연달아 불렀다. 매너 좋은 청중들에게 답례가 없을 수가 없지. 30元어치 과자며 사탕을 샀더니 한 보따리나 된다. “자, 이것들 먹거라. 너희들의 음악감상 수준은 세계 최상급이었느니라.”

밖으로 나오니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언제부터 몰려 왔는지 30여 명이나 넘게 아낙네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그들을 헤치고 나오는데 아낙네들이 부끄럼도 많아 고개를 외로 꼬우며 길을 열어준다.(사인을 부탁하는 여인이 한 명 쯤만 있었어도 나는 까무라쳤을 건데.)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 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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