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청년기에 들어선 젊은 남녀들에게 자존심과 열정이란, 한 숲에 사는 사자와 토끼 같아서 번갈아 나타날 뿐 동시에 나타나는 법은 없다.
상대방이 맘에 들어도 사자와 같은 자존심이 고백을 허락지 않다가, 막상 사자가 없어지면 토끼와도 같이 구애를 위해 열정적으로 온 숲속을 뒤지고 다닌다.
마순원과 나리코는 처음에는 서로 어색함과 수줍음으로 말을 아꼈지만 그런 형식의 껍데기가 한 꺼풀 벗겨지자 제법 많은 말을 나누게 되었다.
후루마쓰는 하루 종일 연구실에만 있어 마순원은 범접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저절로 나리코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화도 일상적인 것에서 점점 깊은 내용으로 발전하게 됐다.
후루마쓰라는 인물이 도대체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인지 못내 궁금했던 마순원은 나리코가 아무렇지도 않은 양 담담하게 들려주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숨이 막히는 듯하였다.
후루마쓰는 선천적으로 농아였다. 그 정도도 심해 후루마쓰는 어떠한 소리를 듣거나 낼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그가 농아로 태어났을 때 집안에서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후루마쓰 집안의 내력, 즉 유전적으로 농아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집안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후루마쓰 집안은 어떤 규칙도 없이 선천적인 농아가 태어나는 특이 유전혈통을 갖고 있었다.
다만 여자에게는 농아가 태어나는 법이 없었다.
후루마쓰 집안에서 농아가 태어나면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바와 같다.
그는 신목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으로 간주되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신, 신목이 점지한 자식인 것이다.
후루마쓰 집의 시조는 바로 나무로 미륵상을 조각하는 사람이었고, 그가 죽어 남기고 간 나무가 야마노아마고우치 깊은 산 사당 안에 모셔져 있는 신목이라는 것이다.
그 신목은 붉은 소나무라 하지만, 생김새가 범상치 않게 굵고 붉으며 구불구불 뻗어나가 줄기와 가지는 마치 용이 하늘에 비천하는 상이었고, 솔가지나 이파리도 푸른빛이 남달라, 비유를 한다면 봉황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양 모두 솟구쳐 오르는 형상이었다.
누구든지 이 나무를 보기만 하면 그 장엄하고도 신묘한 모습에 고개가 수그려졌다.
바로 이 신목의 씨앗을 가져와 심었던 시조 할아버지는 바다를 건너 온 분이었는데, 신목의 나무로 미륵상을 조각하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아무 소리도 못 듣게 되었다는 전설이 아직도 살아있는 후루마쓰 집안을 무거운 중량감으로 휘감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나무는 후루마쓰 집안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 여겨져 후루마쓰 집안에 일이 생기면, 이 신목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빌면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신목에게 아무나 접근되지 않도록 후루마쓰 집안은 반드시 신목지기를 두고 사당을 지키고 봉사하도록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후루마쓰 집안에서 대를 끊지 않고 나타나는 농아자가 그 몫을 다 해 왔다는 것이다.
후루마쓰 집안은 대대로 산과 나무를 업으로 하며 살아왔지만, 그래서 이 인근 일대의 산은 야마노아마고우치 산을 비롯해서 후루마쓰의 집안 종중재산으로 말하자면 이로 인해 생활에 빈곤함은 없었다.
그 그늘에는 신목의 보살핌이 넓은 자락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라고 집안 사람들은 믿었다.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은, 후루마쓰 집안 사람들의 재능이었다.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유전인자가 있는 것은 그렇다 하지만, 말을 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언변이 청산유수라는 것이다.
후루마쓰 집안사람들에 유독 변호사나 정계에 많은 배출을 하고 있는 것도 집안 내력과 무관치 않는다고 나리코는 말했다.
그래서 나리코가 언어감각이 뛰어난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닌 것이었다.
후루마쓰 마사히로.
나리코의 아버지는 태어나면서부터 농아로, 그리고 자라나면서 신목의 사당지기로 교육받고 종사해 왔다.
그는 신관이 된 것이다.
아침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는 사당에 봉사하러 간다.
그는 말은 못하지만, 생각이 많았다고 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늘 무언가를 꿈꾸며, 그리는 눈이었다고 한다.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머리가 영특하였다.
그는 농아학교에서도 수석을 양보치 않았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 임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후루마쓰가 강력하게 갈망한 공부였다.
임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온 산, 온 나무를 찾아다니며 헤매며 무언가를 알고자 했다.
나무에 관한 한 그는 박사가 아닌 신계에 달한 달인이라 했다.
그는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가 강의하는 것을 입모양을 보고 타자를 칠 수 있었고, 노트북 컴퓨터가 개발된 뒤로는 문자 그대로 그의 입과 귀가 되었다.
그는 학위나 학계의 명성을 바라지 않았다.
교수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기는 것이나 학회의 세미나에서 발표한다는 것에 소극적인 이유는 다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하지 못하는 것을 기록하였다.
무엇을 연구하는지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언젠가 그의 정리된 기록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나리코는 말하면서, 시즈오카 국제 꽃박람회가 개최될 때 플라워텔레스코우프를 아버지를 졸라 한번 출품해 보았다고 했다.
세상에 아버지를 알려 보고 싶은 나리코의 바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무런 명성도 업적도 기억되지 않았다.
순원은 그제사 주곤중이나 자기가 찾아왔을 때도 후루마쓰가 결코 반가와 하지 않았던 것이나, 나리코만이 성의껏 자기들을 대접한 것이나 하는 것이 이해가 갔다.
그런가. 그랬다.
그런 신화 같은 사람이, 신화 같은 곳에서, 신화 같은 일을 하면서, 신화 속에서 플라워텔레스코프는 잉태되고 있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