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구(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
여기저기 먹을거리가 풍부한 요즘은 여름철이 되면 가장 큰 걱정거리는 식품안전이다. 어른들은 날것이나 상한 음식을 먹고 걸리는 식중독이 문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계절에 상관없이 불량식품 및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가공식품 같은 ‘고열량ㆍ저영양 식품’이 최대 적이다. 완전히 사라져야 할 불량식품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지금 ‘고열량ㆍ저영양 식품’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고열량ㆍ저영양 식품’이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정한 기준보다 열량이 높고 영양가가 낮은 식품으로 비만이나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어린이 기호식품을 말한다. 우리나라 소아나 청소년 비만율은 1997년 5.8%에서 2014년 15%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소아비만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식약처가 ‘고열량ㆍ저영양 식품’ 표시 제도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후 표시 의무화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표시 의무화에 대한 찬반 양쪽 논리가 다 타당하게 들린다. 보는 각도와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정부 정책을 최대한 맞췄지만 실상 시장에선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걸 참고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나트륨 저감화 정책에 맞춰 저염 제품을 내놓았지만 ‘맛이 없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도태되었다. 또한 트랜스지방을 줄이기 위해 업계에서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지만 소비자의 입맛에는 부응하지 못해 실패한 사례도 있다.
아직까지 나트륨 저감화에 대한 아무런 성과나 기준이 없다. 나트륨 저감화에 대한 성과 도출이 더욱 시급해 보인다. 나트륨 저감화의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또 다른 영양식품 제도를 추진하면 결국 초점을 잃고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나트륨 섭취량이 높다면 국민들이 알지 못하게 서서히 줄여나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실제 미국에서는 국민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나트륨의 양을 서서히 줄이는 ‘스트레스 전략’을 세워 큰 효과를 보지 않았는가.
이런 관점에서 고열량ㆍ저영양 표시제도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식품에 대한 기호가 분명히 있는데, 고열량 식품이라고 표시를 하면 지방과 설탕 등이 많이 함유된 식품으로 간주해 외면할 것이다. 영양이라는 것은 균형이 중요하다. 때문에 식품의 단면만을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 당연히 식품안전이나 국민건강을 위한 표시와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지만 영양표시 등과 같은 제도는 규제 강화보다는 사회적 인식, 소비자 혼란 방지, 업계 상황 등 합리적인 방법을 고민해서 자율적으로 이행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열량ㆍ저영양 식품’ 표시제는 아이들이 즐겨 먹는 기호식품 중 열량이 높고 영양이 낮은 식품부터 줄여나가자는 좋은 취지임에 틀림없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해당 식품의 열량이 얼마나 높은지, 영양가는 얼마나 낮은지 잘 알지 못한다. 때문에 정확한 정보 전달로 소비자의 알 권리와 식품 선택권을 위한 제도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식품에 의한 건강 증진은 소비자들의 기호가 반영되는 것으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식생활 교육을 통해 그들 스스로 올바른 식습관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좋다. 향후 최대한 부모들의 의견을 많이 수용해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함이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어른들의 올바른 자세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이동구(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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