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향만리] 어느 택시 기사님과의 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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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향만리] 어느 택시 기사님과의 정담

[김선호의 人香萬里]

  • 승인 2017-08-18 00:01
  • 김선호 한밭대 전 인문대학장김선호 한밭대 전 인문대학장
지난 15일(광복절) 오후 3시 성모병원에서 가수원의 집에 오기 위해 택시를 탔다. 평소 같으면 큰 리무진(버스)을 탔을 것이다. 왜냐하면 출퇴근 시간도 아니고 집에 가봐야 빈 공간만이 나를 받아들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 반 쪽 안해가 허리를 다쳐 4주째 입원하고 있어 반길 것은 어느 것도 없다. 집안의 책들이나 안해가 닦고 기름칠해 번들거리는 집기들이나 공기가 반겨줄까. 그럼에도 나는 요즘 습관적으로 택시를 무심코 이용한다.

택시 기사님께서 손님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물으시길래 가수원 육교 밑에요. 아, 비가 오면 주민자치센터 앞에요. 아니, 비가 아니 와도 가수원 육교 밑에서 유턴해서 첫 번 째 게단 밑에서 세워주세요. 기사님 예 알겠습니다. 제가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하고 공손히 말씀하였더니 이분은 더 공손하게 손님은 ‘갑’이고 저는 ‘을’인데요‘ 하는 것이다. 아
, 천만의 말씀입니다. 기사님께서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 말씀 좀 들어 보세요. 가령, 이 예는 그리 좋은 예는 아니지만요, 이를테면 어느 기사님이 가정 형편이 말이 아닌데다가 어젯밤에 마님하고 대판 전쟁을 치루고 아침밥도 들지 않은 공복인 채 운전하시다가 에이 이눔의 세상 하고 다리를 들이받아 끝났다면 손님은 어떻게 됐겠습니까.

분명 기사님께서 ‘갑’이시고 ‘제’가 ‘을’입니다. 때문에 기사님께 잘해 드려야 마땅한 도리입니다. 저 방금 전에 이 택시에 오르면서 기사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드린 것 생각나세요. 아 예 생각납니다. 그렇게 깊은 뜻이. 기사님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취지와 본심은 약자에게 보다 다가가고 따뜻하게 대하고 살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제 자랑 같습니다만 저는 대전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초임 시절 야간 학생을 가르쳤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버스 안내양이 ‘오라이’ 하고 승차 하고는 곧바로 졸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릴 때 ‘안내양 피곤하죠, 그래도 어떻게 해요 . 수고해요 ’ 하고는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우두커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습관이 되어 버스, 택시 기사님이나 아파트, 병원, 서울역, 길거리 청소하시는 분,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묵묵히 그러면서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 ‘인사’로나마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의 고마움의 정표를 하는 거죠.

기사님 말씀, 뭐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시지만 참 존경스럽네요. 하시는 거다. 참으로 기막히는 거죠 뭐가 존경스러운 일인지요. 그렇게 보아 주시는 기사님 마음씀새가 더욱 아름답네요.

어느 사이에 목적지에 다 도착해서 택시 요금을 치루려니 8100원이 나왔다. 1만원을 드렸더니 2000원을 내 주신다. 이러시면 100원을 손해 보셔서 아니 되는데, 아니 괞찮으시단다. 나는 그럴 수 없다며 뒷주머니에서 100원을 꺼내 드렸다. 기사님께서 하시는 말씀, 선생님 같은 분만 많으면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 될 거라면서 ‘선생님 파이팅’을 외치시면서 다음 손님을 맞아하시기 위해 시내 방향으로 떠났다.

비록 바쁠 것도 없는 백수가, 반겨 줄 이도 없는 빈집을 가기 위하여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시 못 할 습관으로 택시라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생긴 미쁜 일. 둘만이 함께 한 공간 안에서 ‘갑’과 ‘을’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서 정겨운 말들을 주고 받으며 잠간만이라도 아름다운 정을 나누었다면 그 자체로서 자그마한 행복을 누린 것이 아니겠는가. 이래서 우리 사는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거다. 이 눔을 미쁘게한 이름도 성도 알 수 없는 맘결 따뜻한 택시 기사님! 늘 행복하세요, 건강하시고요.

김선호 한밭대 전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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