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님께서 손님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물으시길래 가수원 육교 밑에요. 아, 비가 오면 주민자치센터 앞에요. 아니, 비가 아니 와도 가수원 육교 밑에서 유턴해서 첫 번 째 게단 밑에서 세워주세요. 기사님 예 알겠습니다. 제가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하고 공손히 말씀하였더니 이분은 더 공손하게 손님은 ‘갑’이고 저는 ‘을’인데요‘ 하는 것이다. 아
, 천만의 말씀입니다. 기사님께서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 말씀 좀 들어 보세요. 가령, 이 예는 그리 좋은 예는 아니지만요, 이를테면 어느 기사님이 가정 형편이 말이 아닌데다가 어젯밤에 마님하고 대판 전쟁을 치루고 아침밥도 들지 않은 공복인 채 운전하시다가 에이 이눔의 세상 하고 다리를 들이받아 끝났다면 손님은 어떻게 됐겠습니까.
분명 기사님께서 ‘갑’이시고 ‘제’가 ‘을’입니다. 때문에 기사님께 잘해 드려야 마땅한 도리입니다. 저 방금 전에 이 택시에 오르면서 기사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드린 것 생각나세요. 아 예 생각납니다. 그렇게 깊은 뜻이. 기사님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취지와 본심은 약자에게 보다 다가가고 따뜻하게 대하고 살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제 자랑 같습니다만 저는 대전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초임 시절 야간 학생을 가르쳤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버스 안내양이 ‘오라이’ 하고 승차 하고는 곧바로 졸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릴 때 ‘안내양 피곤하죠, 그래도 어떻게 해요 . 수고해요 ’ 하고는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우두커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습관이 되어 버스, 택시 기사님이나 아파트, 병원, 서울역, 길거리 청소하시는 분,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묵묵히 그러면서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 ‘인사’로나마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의 고마움의 정표를 하는 거죠.
기사님 말씀, 뭐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시지만 참 존경스럽네요. 하시는 거다. 참으로 기막히는 거죠 뭐가 존경스러운 일인지요. 그렇게 보아 주시는 기사님 마음씀새가 더욱 아름답네요.
어느 사이에 목적지에 다 도착해서 택시 요금을 치루려니 8100원이 나왔다. 1만원을 드렸더니 2000원을 내 주신다. 이러시면 100원을 손해 보셔서 아니 되는데, 아니 괞찮으시단다. 나는 그럴 수 없다며 뒷주머니에서 100원을 꺼내 드렸다. 기사님께서 하시는 말씀, 선생님 같은 분만 많으면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 될 거라면서 ‘선생님 파이팅’을 외치시면서 다음 손님을 맞아하시기 위해 시내 방향으로 떠났다.
비록 바쁠 것도 없는 백수가, 반겨 줄 이도 없는 빈집을 가기 위하여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시 못 할 습관으로 택시라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생긴 미쁜 일. 둘만이 함께 한 공간 안에서 ‘갑’과 ‘을’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서 정겨운 말들을 주고 받으며 잠간만이라도 아름다운 정을 나누었다면 그 자체로서 자그마한 행복을 누린 것이 아니겠는가. 이래서 우리 사는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거다. 이 눔을 미쁘게한 이름도 성도 알 수 없는 맘결 따뜻한 택시 기사님! 늘 행복하세요, 건강하시고요.
김선호 한밭대 전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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