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옥된 독립투사들과 함께 환호하는 서울시민들 (1945. 8.15)/사진 출처=www.peaceasia.or.k |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1945년 8월 15일 왜왕의 항복 선언으로 조선인은 모두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일제의 핍박으로 고난을 겪은 사람들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뻐했다.
그러나 독립지사들은 달랐다. 해방 후 5년이 지난 뒤에 태어났기 때문에 독립유공자인 아버지의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죽었다 살아난 양 기뻐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미국 핵공격의 부산물일 뿐 우리 힘으로 얻지 못한 해방이기에 그 후유증을 염려하시지 않았을 수 없다. 광복군 특수부대가 8월 29일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했는데 히로시마 원폭으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임시정부 김구 주석도 “아, 왜적 항복! 이것은 내게는 기쁜 소식이었다기 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백범일지)”고 통탄하셨다.
8.15는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 새로운 비극의 시작이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정치,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속국이고, 경제적으로는 일본에 예속되어 있다. 독립국이라고 하면서 우리 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다. 사드배치에서 보듯 국익과 관계없이 미국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사드가 북핵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경제의 목줄을 쥔 중국을 내치고 미국의 강요로 덜컥 배치했다. 해방 후 70년이 지났건만 친일파들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권을 쥐고 흔든다. 2013년에 정점을 찍고 하향추세에 접어들었지만 대일무역역조가 년 200억 불이 넘는다. 설사 일본과 전쟁 중이라고 해도 일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우리는 수출할 수가 없는 구조이다.
이 모두 친일파와 미국의 계략에 놀라난 결과이다. 한반도를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미국의 간계에 속았다. 소련이 왜병구축에 힘을 보탠 것도 미국의 책략이었다. 독일과 일본이 함께 2차 대전을 일으켰는데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은 동서를 소련과 미국이 나눠가졌지만 일본을 남북으로 나누지 않고 대한민국을 양분해 통치했다. 이게 어찌 말이 되는 일인가?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민간인 신분으로, 우리 광복군을 무장해제한 채 입국시킨 것을 보면 미국의 꼼수가 분명하다. 헌법전문에 명시했듯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는데 미국이 이를 막았다. 프랑스는 드골 전 대통령이 무장하고 입국하여 혼란 없이 독립정부를 세웠다. 우리도 프랑스처럼 광복군이 입국했다면 친일파들이 모두 숙청되었을 것이며 김일성이 북한의 정권을 거머쥐어 6.25를 일으키는 사단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광복군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조직한 입시정부 정규군이다. 1939년 1월 창립된 한국독립당 당군과 지청천, 이범석 장군이 이끌었던 독립군, 기타 독립군이 연합하여 창군하였다. 임시정부는 처음부터 “대한민국 육군임시군제”를 제정하고 상해에 육군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군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광복군 선언문에도 “광복군은 한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으며 중국과 함께 왜군과 싸웠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미일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즉각 1941년 12월10일 대일선전포고를 발표하여 자주독립의지를 천명했다.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한 일본의 군사력 분산을 노린 전략적 선언이었다. 원폭투하만 없었다면 광복군은 진공작전을 시작으로 한반도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스스로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8.15는 미국덕택이 아니라 미국의 재침이다. 골수 친미주의자인 이승만을 끄나풀삼아 하나둘 대한민국의 주권을 삼켰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가 빌미였다. 조선민족은 자치경험이 없고 미숙하다고 펼친 모욕정책이었다. 신탁통치를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좌우대립을 조장해 민족의 균열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반만년 동안 수많은 외침을 받았다고 자랑스러운 천손민족을 폄훼했다. 배달을 시작으로 조선, 고구려까지 우리 민족은 서토를 지배했으며 홍익인간을 개국이념으로 한 배달국이 아시아 최초의 천자국이었다. 홍산문화유적이 한민족의 역사가 9천년을 넘었다는 것을 입증하니 이를 숨기려고 중국이 동북공정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반탁은 좌우대결이 아니라 친일파에게 도덕적 탈출구를 제공했다. 친탁은 소련을 지지하는 것이며 반탁은 반소, 반공, 애국자로 선동하는 것을 이용해 친일파들이 친일부역의 원죄를 소멸할 기회를 얻었고, 친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반탁운동의 선봉에 나섰다. 항일투쟁에 적극적이었던 사회주의계열의 항일투사가 졸지에 매국노로 전락했다. 반탁운동은 항일민족세력과 친일반민족세력이 뒤엉킨 운동으로 분단의 계기가 되었다. 오죽했으면 반탁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김구선생이 “반탁운동은 정치적 자살행위였다.”고 개탄했겠는가? 미소의 간계에 속지 않고 좌우로 갈리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이런 참담한 상황에 처하진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독립국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하루빨리 전시작전통제권을 회수하고 미군을 철수하여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야한다. 북한을 어르고 달래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통일을 이루어야한다. 통일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통일이 가져올 부수효과만으로도 우리는 금방 일어설 수 있다. 북에 미일이 두려워하는 핵무기가 있고, 남에 기술과 자금이 넉넉하다. 남북철도를 연결해 한반도를 아시아 무역의 허브로 삼으면 순식간에 부강해진다. 통일이 진정한 광복이다.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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