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탁소는 52세, 주곤중은 42세.
당연히 사석에서는 형님같이 대하는 선배지만 마탁소가 좀 까다롭다고 할까 괴팍한 구석이 있어서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못하고 있는 사이다.
“사실 우리 아들 얘긴데….”
주곤중은 기억이 났다. 막스 쉬뢰더에게 편지를 쓸 때 영어로 도와달라고 해서 초안을 잡아주지 않았던가.
“아, 어떻게 됐습니까? 받아준답니까?”
“응. 한 달 정도 받아 주겠데.”
“잘 됐군요. 언제 출발합니까?”
“그래서 얘긴데, 이번에 주 부장이 다시 일본 출장 가잖우? 그때 우리 아들놈 좀 데리고 가면 안 될까? 비용은 내가 물론 대고.
아까 들어보니까 후루마쓰라고 하는 사람이 과학자 같은데 그런 사람 만날 때, 같이 귀동냥이라도 시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그 길로 네덜란드로 보내면 어떨까 하는데, 주 부장 형편은 어떻지요?”
“그래요? 저야 뭐 좋죠.”
주곤중은 쾌히 승낙했다.
마순원은 다소 의아했지만, 아버지가 방학 동안에 일본과 네덜란드에 가서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서 견학 겸 해외여행을 하고 오라는데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는 노트북 컴퓨터와 옷가지 등이 들어있는 배낭을 둘러메고 청바지차림으로 비행기를 탔다.
6월말의 일본 간사이공항. 일본도 장마가 시작되어 대지는 후텁지근하고, 공기는 무더웠다.
나가사키현 후루가와정 야마노아마고우치 산 3정목 9번지.
후루마쓰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나리코로부터 방문해도 좋다는 편지와 함께 집의 위치를 그린 약도를 받은 주곤중은 후루마쓰의 집이 이렇게 산골짜기에 있는지는 상상도 못했다.
주곤중은 은근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잘 못 온 것 아닐까? 산골 할아버지가 특허 하나쯤 낸 걸 가지고 호들갑떠는 것 아닌가?’
‘古松征廣, 古松成子(후루마쓰 마사히로, 후루마쓰 나리코)’
정갈하게 쓰인 문패를 확인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대학생 정도의 앳된 여자가 유카타를 여미며 문을 열었다.
“도나타 사마 데시오까?(누구십니까?)”
주곤중은 자신과 마순원을 소개했다. 나리코는 목소리에 반가움을 실어 인사의 말과 함께 옆으로 비켜섰다.
이미 해도 기운 때라 주곤중은 난감했다. 잠깐 후루마쓰 마사히로라는 장본인과 인사만 하고 내일 다시 온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주곤중은 들어가기를 사양하고 후루마쓰 마사히로씨가 계시냐고 물었다.
나리코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주곤중은 잠깐 실례하고 내일 다시 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나리코는 그냥 문 옆에 기대서서 들어오라고만 했다.
“하이 도오죠 오나카에, 하이 도오죠 오나카에(안으로 들어오시죠).”
집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일본식 마루와 다다미가 있는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나리코는 두 사람에게 녹차를 내왔다. 무릎을 꿇고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께서 두 분이 괜찮으시다면, 오늘 여기서 주무시라고 하십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녁도 여기서 드시면 어떻겠냐고 하시는군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내일 아침에 뵙겠다고 하십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리코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아름다웠다.
주곤중이 사양하려다가 멈추고 마순원을 쳐다보았다.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하룻밤 묵을 순 없을까요?
이런 경험을 어디서 또 해 볼 수도 없을 텐데요.”
주곤중은 마순원의 짧은 생각을 나무라려고 하려다가,
‘그래, 그것도 그렇다’ 싶어 그만두고 답례의 인사를 건넸다.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송구합니다. 예의는 아니지만, 그렇게 해주신다면 영광으로 알고 신세를 지겠습니다.”
나리코는 가뿐하게 “하이”하면서 일어나 또 방을 나갔다.
두 사람은 산속에서 길 잃은 나그네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산골 외딴집에서 젊은 처녀는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하고, 주인은 보이지도 않으니, 참 난처했다.
잠시 후 나리코가 다시 들어와 두 사람이 머물 이층으로 안내했다.
미닫이 장지와 다다미가 깔린 전형적인 일본집이었다.
방 가운데 예쁜 소나무 분재가 단아하게 놓여 있었고 주위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만 방에 남자 순원은 기가 살아난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에 노송이 그려진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었다. 범상치 않은 그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낙관이 있는 곳에 두 글자가 씌어 있었다.
‘古松(후루마쓰)’
나리코가 또 올라와 전했다. 씻고 저녁식사를 하라는 말이었다.
대충 씻은 두 사람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몇 가지 산나물과 된장, 김, 그리고 밥이었다.
나리코는 조그만 쟁반에 일본술병을 받쳐왔는데 잔이 인상적이었다.
“방금 전 아버지께서 뒤뜰에 있는 대나무를 자르신 겁니다. 대나무 술입니다. 소찬이지만 맛있게 들어주십시오.”
깊은 산사에 온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순원이는 주부장이 방에서 쉬고 있는 틈에 잠시 밖을 나와 보았다.
뒤뜰 정원이 넓게 펴져 있는 것 같은데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숲속을 응시하고 있는데 숲에서 반짝하고 불빛이 반짝였다.
흠칫 놀라며, 숨을 머금을 때 또 저쪽에서 반짝하고 빛이 빛났다. 도깨비불 같은 빛들이 푸른빛, 초록빛으로 반짝, 반짝거렸다.
반딧불이었다.
순원은 한참동안을 반딧불을 보고 다시 하늘에 있는 별을 보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 때, 커튼이 있는 방 너머에서 한 남자가 커튼 사이로 자기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것을 순원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본채 불 꺼진 방 창가에서 지긋하게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나리코가 있는 것도 알 길이 없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