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윤(대전대신초 교사) |
“어젯밤에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 예뻐요!”
이른 아침 교실문을 열자 우리 반 친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꼭 안아주며 사랑의 언어와 사랑의 행동을 마구마구 뿜어낸다. 한글을 몰라 아직도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그냥 가져온다는 ○○가 제일 먼저 등교를 했단다. 할머니가 도서실에서 책 빌려오는 걸 싫어한다는 ○○는 일찌감치 거울을 보며 입술에 무엇인가를 바르고 있고, 책상에 앉아서 하라고 그리 말했건만 두 녀석은 교실 바닥에 엎드려 색종이로 종이접기를 하고 있다. 복도에서는 아직 감기기운이 남아있는 ○○이와 운동선수가 꿈이라는 ○○가 교실과 도서실 사이를 오가며 달리기 시합중이다.
좌충우돌 시끌벅적 정신없는 급식시간이 지나 잠시 숨 돌리며 교무실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려는 순간, ○○가 다급히 찾아온다. ‘아이고......’친구들과 놀이마당에서 놀고 있다가 방구만 끼려고 했는데 똥이 나와 버렸단다. 장염 증상이 아직 남았던 터라 옷을 몽땅 버리고야 말았다. 1학년 선생님은 커피도 포기해야 한다.
Ⅱ. 내 마음을 열다
○○이가 수학 시간에 화장실을 4번이나 갔다. 매 수업시간마다 이러니 수업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다. 나와 약속하고 참아보기도 했지만 녀석은 견디기 힘들어 했다. 나중에 들으니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3학년 선생님과 대화도 하고, 학습 자료실 구경도 하고 왔단다. 내일은 수업 시간에 2번만 간다고 약속을 하긴 했다. ○○이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그러는 것일 텐데 내가 지나치게 무서운 표정을 지은 건 아니었는지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오늘도 몇 번을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로 숨고 싶었다. 불러대는 선생님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고 싶었다. 그들이 보내오는 사랑이 너무 버거워 슬쩍 모른 척 하고 싶었다. 모두 내 사랑을 고파한다. 누구도 아닌 1학년 1반 선생님의 사랑을. 내가 예뻐서가 아니라, 친절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1학년 1반의 우리 선생님이기 때문에......
<3월의 일기 중에서>
Ⅲ. 수업을 열다
1학기가 거의 끝나가지만, 여전히 한글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그 친구들은 자모의 음가를 알지 못하고 음가와 글자를 연결시키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 모든 시간 수업 진행이 어렵다. 말로 설명하고 반복하고 다시 확인하느라 한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린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항상 이어진다. 마음이 불편하고 순간순간 화가 난다. 나머지 공부를 시키려 하면 녀석들은 울음보가 터지고 나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내며 힘없이 교실에 앉아 있다. 공부를 싫어하게 될 까봐, 혹은 밀린 업무를 핑계 삼아 그냥 돌려보내며 마음 한 켠에 나는 또 불편함을 쌓는다.
Ⅳ. 꿈을 열다
안쓰러움과 무기력함으로 3월을 어영부영 보낸 게 사실이다. 쉬기도 할 테지만, 그래도 물어물어 느리게라도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도 나는 내가 아는 교육적 방법을 총 동원하여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항상 힘든 수업이 될 것이다. 한글 공부를 하지 않겠다며 떼를 쓰고 우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아이들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능력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를 보고 웃을 것이고 나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늦게 출발해서 천천히 가더라도, 간혹 길이 아닌 길로 들어선다 해도 우리 모두가 함께하므로 조금씩 더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꿈을 꿀 것이다. 느림보 교실에서 느림보 선생님과 함께하는 꿈꾸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주윤(대전대신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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