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선 변호사 |
정부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따라,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대우해야 하는 헌법상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자들의 명단을 작성, 지원을 배제한 것으로, 이는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함은 물론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에 있어서 검열로 작용한 악질적인 행위임은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법원은 조윤선 전 장관에 대해 블랙리스트 혐의(문예기금·영화·도서 지원 배제한 직권남용, 강요)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 ‘정무수석으로 부임한 이후 정무비서관이 조윤선 전 장관에게 정부에 반대하는 개인ㆍ단체들의 명단을 검토해 지원을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보고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소통비서관이 조윤선 전 장관에게 명단 검토 업무에 대해 지시·보고·승인받은 바 없다고 진술한 것에 비추어, 조윤선 전 장관이 직접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우선, 블랙리스트의 기획 및 집행과정을 보면, 청와대의 문화계 기획부서인 정무수석실에서 기획 및 지시를 하고, 문화계 담당 부처인 문화체육부에서 지원을 집행하는 구조이다. 조윤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가 기획된 이후 실제 집행과정 중인 2014년 6월경에는 청와대에서 기획부서인 정무수석이었다. 조윤선 전 장관은 정무수석으로 임명되면서 전임 수석으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받았을 것이고, 여기에는 당시 국정의 중요한 과제였던 블랙리스트에 관한 사항도 있었음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조윤선 전 정관은 당연하게 블랙리스트 업무를 보고받았고, 집행 중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위 업무를 몰랐다고 한다면, 이는 오히려 직무유기한 것을 자백하는 셈일 뿐이다.
더욱이 조윤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가 여전히 집행 중이던 2016년 9월경부터는 문화체육부장관으로서 문화예술계의 지원을 담당하는 집행부서의 총 책임자에 있었다. 당시 문화체육부는 위 블랙리스트에 따라 해당 문화예술인 또는 단체에 지원을 배제하고 있었다. 결국 조윤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기획부서인 정무수석으로 근무하다가, 곧 집행부서인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옮겨 책임자로서 그 직무를 수행한 것인데, 그런 자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조윤선 전 장관에게 유리하게 증언한 일부 비서관들은 당시 조윤선 전 장관의 지시를 받던 하급자여서, 그 진술을 그대로 믿는 것도 안될 일이었다. 이들 비서관들은 구속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조윤선 전 장관에게 유리하게 진술하기로 하는 공모가 있었을 개연성도 있다. 일반적으로 조직의 하급자 진술은 상급자에게 유리할 가능성이 많아서, 그 진술의 신빙성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법원 관례가 이번에는 지켜지지 않은 셈이기도 하다.
오히려 블랙리스트 사건은 어느 한 시점에서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원배제 등이 일어났던 ‘연속적 사건’이다. 조윤선 전 장관이 이런 시간적 연속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사건의 중간 단계에 임명되었다고 할지라도, 조직의 특성상 그 보고와 결재 등을 통하여 블랙리스트 사건의 집행에 대해 알았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로는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음은 누구나 예상 가능하다.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김기춘과 구체적으로 집행한 교육문화수석 등에게는 유죄로 보면서도, 핵심 부서였던 정무수석과 문체부장관을 역임한 조윤선 전 장관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한 것은, 형평성과 조직의 특성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를 바로세우는 시기다. 앞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문화예술인들에게 차별적으로 지원을 배제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블랙리스트 판결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경종을 울려야 했다. 항소심에서는 더 섬세한 판단을 하여 정의가 바로 서길 기대해 본다.
이영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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