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어째도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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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어째도 지나가겠지…

  • 승인 2017-08-08 11:12
  • 신문게재 2017-08-09 23면
▲ 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장
▲ 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장
체온을 넘어서는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는 더위에 말문이 막혀서 그런가 불볕 더위니 가마솥 더위니 열돔이니 이렇게 저렇게 붙던 수식어조차 줄어버린 주말 내내 정전이 우려되니 전기제품 사용을 자제해달라며 경비실 마이크가 열변을 토하였다. 집집이 밤낮 없이 에어컨을 돌리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런 폭염에 옳고 그름을 생각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으니 문제다. 태풍이 온다했던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한바탕 비를 쏟아 붙고 난 하늘은 다시 창창해지고 말았으니.

공석진 시인의 묘사가 절절해지는 『팔월』이다. “…넋빠진 무의식에 빰을 갈기는 간간이 / 오뚜기처럼 정신 차려 벌떡 일어나 보지만 / 고갈된 체액에 혼미하여 비틀거리다 / 털퍼덕 엎어져 녹아내리는 길바닥에 / 그리움조차 밀어내려고 얼굴을 뭉갠 채 / 망각하여라 / 망각하여라…”

그런데 우리를 덥게 하는 것은 날씨만이 아닌 것 같다. 기업 총수의 뇌물 공여 재판과 항변, 장군 부인의 갑질 고발과 부정, 학대 받았다는 손녀와 할머니의 침묵, 의사 처방을 대신 낸다는 어느 병원의 관례(?), 여전히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정치인들, 등등 주요 뉴스들까지도 열에 뜬 머리를 더욱 벙벙하게 하였다.

좀 시원한 이야기는 없을까 싶어서 채널을 바꿔보지만 여기서도 저기서도 먹고 또 먹는 방송이나 한없이 틀어주는 드라마 재방송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는 사이 새삼스레 오락, 예능 프로그램을 눈 여겨 보게 되었는데, 하는 일이 각기 다른 사람들 여럿이 모여 수다도 떨고 여행도 가며 함께 노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요즈음 직장에서의 놀이문화는 회식하고 노래방 가는 등 같은 부서 구성원들이기에 함께 하는 활동은 줄어드는 추세이고 자기 개성대로 놀려는 변화를 보이고 있는 데 TV 속 연예인들은 모여서 놀고 있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들은 일로써 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래 그런 지 어떤 출연자는 아주 자연스러워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라 웃게 만드는 그렇지 못한 경우는 부담을 느끼게 했다. 놀이는 자발적이고 활동 자체를 통해 즐거움이나 만족을 얻지만, 일은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므로 강제성도 있고 때로 싫거나 고통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놀이에 익숙한 사람은 일로 시작했지만 순간순간 일과 놀이 구분 없이 몰입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놀이 활동이지만 일로 하기 때문에 그런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여하간 놀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하다. 흔히 알고 있듯이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곧 일이며 구분이 없어 놀이를 통해 새로운 역할도 연습하고 규칙도 배우고 사회성도 키운다. 어른은 아이와는 다르지만 놀이를 통해 기분 전환도 하고, 피로도 풀며 업무 스트레스도 해소함으로써 일상생활이나 일에 대한 의욕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얻는다. 따라서 놀이를 일로 하는 것을 보면서 간접적 만족을 얻기보다는 스스로 노는 게 효과적이다.

그러나 너무 특별한 목적이나 목표를 정하고 놀지 말자.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강박적으로 혹은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이미 놀이가 아니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높이는 일이 되고 만다. 물론 놀이 중에는 경쟁을 하는 놀이도 있다. 일정한 규칙 안에서 경쟁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 겨루는 것이다. 최고가 되고 싶은 인간의 욕구 때문에 경쟁 놀이를 하게 되는데 이 때 중요한 것은 규칙은 공정하므로 누구나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자기가 못했을 경우에는 잘 하는 사람을 흉내내면서 또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스스로의 수준을 높이고 싶어져서 그 활동에 몰입하는 또 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결국 놀이도 균형과 조절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여름 일하는 짬짬이 자신에게 맞는 수준에서 놀면서 더위를 이겨내고 즐겁게 지내자. 시원한 바닷가를 가도 좋지만, 도서관 한 구석에 앉아 미처 읽지 못했던 소설을 읽어도 마음을 채울 수 있으리라. 불편한 소식들이 불볕처럼 쏟아져도 자기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며 하늘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보자. 방학을 맞아 초청한 외국 학생들과 어울려 게임을 하며 깔깔거리는 간호학생들의 웃음이 한줄기 청량함으로 와 닿는다.

팔월의 더위를 노래하던 시인은 이제 『구월』을 노래하고 있다. “ 작별의 키스라도 해야 할까요? / 지긋지긋하다 하실 땐 언제고 / 조금 선선해진 날씨에 / 춥다고 카디건을 찾으시는 / 그 경박함은 어쩌시구요… 중략”

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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