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혜리(유혜리세종무용단 대표) |
지난달 중순 무용단의 부단장, 수석단원과 함께 보라카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간 5년의 동고동락하며 보냈던 시간을 쉬면서 돌아보자는 취지였다. 무용단을 비워놓고 가자니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한참을 망설이기도 했었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결행했던 것이다.
보라카이 도착 후 셋째 날, 저녁을 먹기 전에 2시간 정도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부단장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리조트에 머물렀고, 수석단원은 맛있는 맥주를 찾아다녔고, 나는 카페 델솔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
보라카이 여행에선 유독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전에는 한국을 벗어나는 순간 모든 것을 다 지워버리고 오로지 여행의 즐거움을 그렸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누구와 함께 해야 하지?”, “무용단에 필요한 것은?” 등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들이 속사포처럼 나를 난타했지만, 속을 뻥 뚫리게 할 만한 시원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 지워버리고, 이번 여행의 목적대로 그냥 즐겨? 여행은 그야말로 여행일 뿐이다. 어떤 특별한 의미를 자꾸 덧붙이려 하다가는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돼버린다.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았던 깃털들을 뽑아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려고 온 것인데, 그러기는커녕 번민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네. 모처럼 온 여행을 아깝게 만들 순 없지. 다 잊고 이 순간만큼은 최대한 즐겨야지.” 다행히 마음을 다잡았을 수 있었다.
보라카이는 아름다움, 낡고 초라함, 여유로움이 뒤섞인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곳에선 샹그릴라 리조트가 가장 화려했었다. 환상적인 풍경, 편리한 쇼핑몰, 고급 레스토랑, 전망 좋은 수영장, 쾌적한 숙소, 친절한 서비스 등 일류 호텔이 지녀야 할 요소들을 빠짐없이 갖춘 것 같았다. 리조트 안에서 운행되는 카트를 타고 로비에 오면, 디몰로 향하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디몰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렸는데, 지나치던 지역의 주택과 상가는 개발이 덜 된 탓인지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너무나 한가로워 보였다. 겉보기에는 스트레스가 전혀 없어 보였다. 빈부의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바쁘게만 움직이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게 보였다. 디몰에서 만난 맑고 깨끗한 바다와 시원한 풍광으로 인해 눈과 마음은 마냥 눈부셨다.
얽히고설킨 생각을 버리고 단순하게 다가서는 것이 힐링의 지름길이었다. 샹그릴라 리조트에서 디몰까지 가면서 봤던 그곳 사람들의 여유로움은 이것저것 얽매이지 않는 단순함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나도 무겁게 가라앉지 말고 가벼워져야겠다. 보라카이에서 돌아온 나는 다시 사람들 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 다시 힘을 내자.
유혜리(유혜리세종무용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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