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현숙 홍주초등학교 교장 |
“그래? 감자가 여지껏 너희들은 기다린 모양이구나!”
감자를 캐던 그 날은 6월 초여름 볕이 얼마나 따가웠는지 모두가 땀범벅이 되었지만, 그래도 땅 속에서 보물을 캐듯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감자에 환호성을 질러대곤 했다. 꿈이 자라는 텃밭 ‘홍주꿈터’에서 첫 수확을 하는 날이었다. 기쁨과 환호로 수확한 ‘홍주꿈터’의 감자들은 군감자가 되어 점심식판에 올려졌거나, 감자찌기 실습용이 되고도 남은 것은 아이들의 가방에 들어앉아 신나는 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감자를 수확하고 드디어 오늘은 그 밭에 고구마를 심는 날이다. 그 날 미처 고사리 손에 갈무리 되지 못한 감자 몇 녀석들이 고구마를 심으려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세상 구경을 한 것이다.
“오늘은 고구마를 심을 거예요!”
텃밭정원 사업을 맡은 선생님의 부지런한 사전 교육과 준비 덕분에, 해가 덜 따가운 아침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고구마를 심기 시작하였다.
“자, 지금부터 고구마 줄기를 심을 구멍에 잘 뉘어서 넣고 흙을 덮어 주세요.”
그런데, 저만치 아이들 몇 몇이서 서로 눈치만 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교장선생님~~ 흙 더러워요, 장갑 주세요!”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구원병이라도 만난 듯 애교스럽게 찌푸리며 말한다. 사춘기를 맞은 고학년 여자 아이들은 손으로 흙을 덥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장갑이 준비는 된 터이나, 보드라운 흙의 느낌을 손으로 알게 하고자 한 나의 의도는 조금씩 무산되어 가고 있었다. 감자를 캐던 날, 흙이 묻을까 두 손가락으로 간신히 꺼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심 고구마 심는 날은 반드시 흙을 만지게 하리라 작정한 터였다.
‘그래! 아이들의 손은 내 손과는 다르지, 저 하얗고 고운 예쁜 손에 어찌 흙을 묻히랴~.’
준비한 장갑을 주면서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전 교육 없이 접근하려고 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였다. 나에게도 딸이 둘 아들이 하나 있다.
‘정○야 지지야 지지, 더러워 만지지마’
어릴 적 집 앞 놀이터에서 흙을 만지려는 내 아이들에게 한 행동이 문득 떠올랐다. 철퍼덕 앉아서 신나게 흙이라도 만질라 치면 더럽다고 만지지 말라고 했었다. 또한 놀다 들어온 아이에게 흙 묻은 것을 나무라던 ‘흙 결벽증’ 엄마가 아니었던가...
아이들 탓 할 것이 아니다. 교사라는 나 자신도 내 아이들에게 흙이 더러운 것이라고 부지불식간에 나무라면서 키웠는데 말이다. 요즘 시골에서 농사 짓는 가정도 아이에게만큼은 농삿일을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학교의 텃밭교육을 통해 집에서 심는 상추도 심어보고 방울토마토를 심어보며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기쁨과 자연에 대한 신비와 소중함을 알게 된다. 6∼70년 대 학교 다녀와서 꼴 베 놓고 공부하던 그 시절은 아니지만, 자연과 격리된 채, 무분별한 보호와 통제 속에서 과연 우리 아이들이 그때그때 느껴야 할 것들을 차곡 차곡 느끼면서 삶을 준비해 가는지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아~ 흙은 더러운 것이 아니란다. 흙은 모든 생명을 잉태하는 삶의 근원이란다! 우리 홍주초 행복둥이들 수고 많았어요. 햇빛 좋은 가을 날 우리 모두 신나게 고구마 캐기로 해요.’
오현숙 홍주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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