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악 자체는 생명체처럼 변해가고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박제되어 있거나 박물관의 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수많은 무형문화재를 지정합니다. 가치 있는 전통을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전통문화예술을 일정한 틀에 가두려는 생각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차별성이 전혀 없는 동일한 내용을 지역마다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없으면 지정하지 않는 것이 맞지, 옆 동네서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발상은 빨리 접어야 합니다. 다른 지역의 문화재를 가져다 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마을 행사 때마다 풍물놀이가 있었습니다. 꽤 큰 규모의 경연대회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바로 옆 동네라 하더라도 풍물놀이의 가락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민속악이라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재구성이 이루어지지요. 동일한 내용을 연주하면 태생적으로 민속악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예전엔 분명 경연 내용이 달랐습니다. 요즈음의 경연대회는 심사자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니면 상을 주지 않더군요. 특정 내용을 얼마나 잘 연주 했느냐로 우열을 가리는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들이나 종사자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주관적이라 할지언정, 적어도 예술성이 높은 경연에 점수를 더 주어야 마땅하지 않나요?
광역단체의 예산에 꽤 오랫동안 관계한 적이 있는데요. 한번은 예산서에 특정 풍물단체의 강사비 항목이 있었습니다. 주민자치센터에 일괄적으로 배정되는 예산서에 말입니다. 순간적으로 문화예술 담당자들이 무식하거나 로비에 의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지역을 대표하는 풍물도 아닌데 말이지요. 특정이름을 뺀 국악강사비로 바로잡을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특정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아가 세계화를 이룩한 경우도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전국을 획일적으로 동일하게 만드는 것은 문화예술이 아닙니다. 더구나 민속악과는 거리가 먼 발상입니다.
전통예술이나 민속악에 종사했던 많은 선배들이 발전과 창작에도 심혈을 기울여 온 사실을 익히 알 것입니다.
공주에 가면 장기면 무릉리에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이 있습니다. 1916년 박동진 명창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요. 잠시 진잠에 살기도 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한성기 시인으로부터 들었던 기억입니다. 박동진 명창은 장정렬을 비롯한 당대의 명창들로부터 소리를 배웠으나, 여러 선생을 전전하다보니 젊어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1962년 국립국악원에 근무하면서부터 생활이 안정되자 소리공부에 매진하였다 합니다. 6년 뒤부터 완창을 하기 시작하는데요. <흥보가>(1968), <춘향가>(1969), <심청가>(1970), <적벽가>(1971), <수궁가>(1972) 등 판소리 다섯 마당뿐만 아니라 <변강쇠타령>(1970), <배비장타령>(1972), <숙영낭자전>(1974), <옹고집전>(1977) 등도 완창을 하지요. 한 마당을 소화하는데도 수년이 걸릴 수 있는 일인데요, 매년 새로운 곡을 완창 했다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서판소리>(1972), <이순신장군 일대기>(1973), <성웅 이순신>(1974), <팔려간 요셉>(1974) 등의 창작곡도 발표 또는 완창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들어보신 분들은 알겠습니다만 박동진 소리는 여느 소리에 비해 더 구수하고 재미가 있지요. 명창이 되면 새로운 표현이나 개성 있는 내용으로 소리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것을 더늠이라 하고, 무슨무슨 제(制)라고도 합니다. 박동진 소리는 더늠이 많은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많은 민속악 연주가들을 공경합니다.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지켜내는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혹여 예술가의 본분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면, 참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늘을 알기만 해서는 안 되지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훌훌 털어내야 하지 않나요? 무엇보다 변화와 창작을 도모하는 것이 예술가의 본령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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