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조어가 ‘시발비용’ ‘나일리지’ ‘무지개매너’라고 한다. 시발비용은 쌍욕의 시발과 비용이란 단어가 결합된 말로 화풀이에 들어가는 비용 또는 한풀이비용을 뜻한다.
교육불평등과 소득불평등 심화로 인한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시발비용을 엄청나게 쓰고 있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권력과 재물의 갑질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빈번히 횡행하고 있는데 적절한 해소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공약이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인데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헛다리짚는 행위이다. 청소년을 위로하기는커녕 서민의 화를 키우는 정책이다. 최저임금을 만원으로 올리는 것으로는 국민이 바라는 만큼 임금격차를 줄일 수 없고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 물가상승과 일자리감소의 역풍이 불어 닥쳐 서민의 삶이 더 곤혹스러워진다. 뒤통수를 맞은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줄이거나 상품가격을 올릴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 경제상황은 경제공황에 가깝다.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를 인하했지만 결국 네거티브부메랑효과를 가져왔다. 재벌기업은 사내유보금이 천조 원이 넘었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소비와 수출이 줄어 현상유지조차 어려운 최악의 난관에 봉착해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수출로 먹고 산다. 중국의 보복이 본격화하고 있는데 왜 사드포대를 추가배치하며, 중국의 저임금을 고려하지 않고 어찌 최저임금을 올리는가? 임금을 올리면 해외노동자 때문에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진정으로 경제성장을 바라고 서민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최저임금을 올리기보다 이명박 정부에서 깎아준 법인세를 제자리로 돌려 바닥난 재정을 채우고 그를 이용해 일자리를 만들어야한다. 공공일자리가 아니라 세수가 있는 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 고소득자의 소득세를 크게 올리거나 임금을 내려야한다. 소득격차를 줄이면 물가상승을 걱정할 것 없고 일자리감소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면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 재벌증세와 고소득자증세이다.
나일리지는 나이와 마일리지의 합성으로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는 혜택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나일리지가 너무 과하다.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박근혜 정부를 비난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지원금을 30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으로 민심을 포획했다. 한물 간 사민주의에 눈이 멀었다. 시대의 흐름을 간과한 낯 뜨거운 정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와 유럽 국가들이 복지정책을 크게 남발해 지금 재정고갈에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보편적복지도 선택적복지도 국가재정이 고갈된 상태에선 안 된다.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 진입이 코앞인 이 위중한 시기에 여론몰이를 위한 증세 없는 노인복지정책 증진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젊은이들의 삶을 나태하게 할 수도 있다. 빙하기에 처한 저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노인보다 청소년에게 눈을 돌려야한다. 나일리지는 반드시 축소시켜야한다.
무지개매너는 무지개와 매너를 합성한 말이 아니다. 하는 짓이 우악함을 뜻하는 무지(無知)와 개(犬), 비용의 합성어로 아주 나쁜 매너를 의미한다.
무지개매너를 가진 정치가는 일벌백계해도 부족하다.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에서 환하게 웃으며 ‘엄지척’ 기념사진을 촬영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손혜원 의원이 무지개매너의 표상이다. 일본의 사죄도 받지 못하고 가신 할머니의 빈소에서 어찌 이런 망동을 할 수 있는가? 설사 위안부 할머니 빈소가 아니라도 빈소에서는 절대로 안 되는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다. 송영길 의원의 과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투쟁도 정치적 이득을 노린 애국자 코스프레이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문재인 정권의 속임수에 국민은 속고 나라는 망해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초기 ‘허니문 효과’도 이제 끝났다. 나는 정의를 실천하니 네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정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난리 속에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나 여론의 집중비난을 받은 충북 김학철 도의원이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의 그늘 속에 기생하려는 매춘언론, 레밍언론만 존재하는 것 같다.”고 반박한 것처럼 현재 한국의 언론은 지나칠 만큼 문재인 대통령 띄우기에 급급하다. 추경안 표결에 불참한 26명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훨씬 더 공직자로써의 본분을 망각한 것인데 이를 질책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우리는 지나온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라는 위험한 난간에 서 있다. 가장 큰 위험은 정체성의 상실과 역사적 인식 결여, 열정과 영혼이 쇠약해짐이다. 정치가는 시류를 읽고,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한다. 시류에 편승하거나 반작용을 고려치 않는 허술한 정책을 인기몰이로 덜컥덜컥 차용해서는 안 된다.
이완순 소설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