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탄진에서 대청댐으로 가는 도중 미호교 건너 우측 최근 조성된 여수로 보조댐으로 향하면 옛날 이(李) 씨들이 많이 살았다던 이촌에 이른다.
보조댐 북쪽 영지산(149.2m)정상에 둘레 약 100m 정도의 소규모 미호동산성이 대청호 500리길 중 3구간 능선상에 있다.
동쪽 아래는 시퍼런 대청호물이 넘실거리는 급경사이고, 남쪽은 절개된 구릉지에 여수로와 댐, 서쪽은 이촌 오장골 유원지로 연결된다. 대청댐 방면 북쪽(성의 북벽) 등산로는 급경사 아래로 호처럼 푹 꺼져 외부로부터의 접근이 쉽지 않다. 더구나 여기는 과거 청남대 시절 군부대들이 점령했던 관계로 아직도 녹슨 철조망들이 곳곳에 깔려 있어 항시 주변을 조심해야 한다.
현재 성벽은 북벽 입구 우측에 길이 약 이삼 미터의 석축렬만 남았고 나머지는 거의 경사가 심한 토벽처럼 되었다. 성벽은 사방이 날카로운 장방형 판석을 다듬지 않고 이용했다. 정상부는 약간 움푹 파인 채 모서리들이 뭉툭한 세모꼴 형태로 장대지 자리로 여겨진다. 능선이 통과하는 남북 입구와 이촌으로 내려가는 서쪽을 문지로 사용했으리라 여겨진다.
청남대 정면과 마주하는 호수 속에는 과거 문의-증약-옥천으로 진행되던 남북 한양대로 율봉도와 문의, 회인 등 내륙지역에서 건너편 갈전동-회덕, 웅진이나 사비 방면으로 통하던 동서교통로들이 교차하는 형각나루가 있었던 교통요지로 지금은 모두 물속에 잠겼다. 그런 관점에서 신라와 백제가 극심한 대립을 이뤘던 삼국시대의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바깥일을 훨훨 벗고 주변 풍광을 마음껏 감상하는 것은 대청호 중심부에 자리한 영지산만의 진미다. 오죽하면 이름조차 아름다운 호수마을 미호동(美湖洞)이었겠는가. 소란스런 바위산들도 없이 부드러운 산들을 옮겨다 호수 속에 텀벙텀벙 빠뜨려 놓았다.
아무렇게나 그린 어린아이 그림처럼 천진스레 구불구불한 산기슭, 여인의 적삼 겨드랑이 끝자락에서처럼 살포시 드러난 연황색 황토가 산과 물을 구분 짓는다.
잔잔한 호수 위로 쏟아지는 한낮의 밝은 태양 아래 반짝이는 은빛 물결, 호숫가에 거꾸로 앉아 머리를 감고 있는 섬과 산의 그림자들. 점점이 물 위로 떠 있는 섬들은 다도해 저리 가란다. 잔잔한 호수에 몸을 담고 선 흰머리의 늙은 갈대 사이를 노니는 청둥오리들도 참으로 여유롭다. 방해꾼들이 없으니 한결 더욱 좋다.
진달래 필 무렵 흰구름의 파란 하늘, 황토색 강변, 쪽빛 호숫물이 층층 어우러진 봄의 풍경은 대청호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지만, 겨울날 형지산에서 감상하는 호수의 맛도 보통 아니다. 한여름 우거진 녹음 밑을 강바람 속에 산책해도 좋으렷다.
방해꾼 없는 호젓한 둘레길을 걷는 기분이 참으로 편안하다. 온통 길을 덮은 참나무 낙엽에 귀와 발바닥이 간지럽다. 길가의 저 어린 자작나무들은 언제쯤이나 흰옷을 온전히 입을런지. 성 아래에서 미호동 청동기유적지에서 집터, 방추차, 돌화살촉, 갈판, 돌칼, 어망추 등의 유물 출토 기록이 남은 안내판을 만난다. 3000년 전 금강에서 고기 잡고 농사지으며 살아가던 조상들의 삶을 상상해 봄 직하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