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조직위 사무실에서 밀린 보고를 받고 있던 위원장의 방 문이 살짝 열리더니 얼굴이 새까맣게 탄 마탁소가 들어왔다.
전혀 의외의 인물이어서 위원장은 궁금증이 일었다. 평소 말이 없고 회식 때도 맨 뒷자리에서 소주만 들며 위원장에게 술 한 잔 권하지 않던 마탁소였다. 그런 마탁소가 처음으로 위원장 방에 들어 온 것이다.
위원장은 결재 문건의 제목을 보았다.
'황금꽃 제작에 관한 건의.’
문건은 간단했다.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를 영원히 기리고 관람객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도록 국내 최초, 최대의 황금 꽃을 제작하여 전시하자는 건의였다. 황금 꽃을 제작해 유리 상자에 넣어 전시하면 관람객들의 눈요기도 되면서 순금의 꽃이 전시된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가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이 황금 꽃은 영구히 재산 가치를 보유할 뿐 만 아니라, 세공의 예술성을 높이면 그 가치는 훗날 문화재로서도 지정될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국보도 되지 않겠는가?
도의 보물이 되고 안면도 꽃박람회의 영원한 기념물이 될 것이라는 것이 마탁소의 건의였다.
“순금 꽃은 우리나라 최고의 세공예술가가 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공의 예술성을 무엇보다도 높여야 할 것 같습니다. 세공비가 좀 비싸겠습니다만…….”
“예산은 있소?”
“없습니다.”
“얼마나 들겠소?”
“값은 시세에 따라야겠습니다만, 약 10억은 요구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전시후의 가치는 100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협찬으로 하겠다는 건가요.”
“예. 위원장님께서 도와주십시오. 황금 꽃에 협찬사의 이름을 새겨 넣으면 영원히 금과 함께 남지 않겠습니까?”
위원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탁소, 이 친구 봐라’ 라는 생각과 ‘어느 기업체가 적당할까’ 라는 생각의 저울질이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도지사에게는 보고했나요?”
“아직 못했습니다. 우선 위원장님에게 보고해야 할 것 같아서요.”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무총장을 불렀다.
사무총장이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있습니다. 세공기술자하고 상의하겠지만, 어느 꽃으로 하느냐는 겁니다. 무궁화, 장미, 국화 아니면 상상의 꽃으로 해야 할까 하는 건데요. 상징성도 있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이어야 하면서 무엇보다도 의미 즉, 스토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검토하겠습니다.”
“알았소. 나도 생각해 보겠소. 도지사하고도 상의해 보시오. 무슨 꽃이 좋을런지 마 부장은 생각해 본 게 있소?”
위원장은 지나가듯 물었다. 마탁소가 망설이다가 의견을 말했다.
“예, 제 생각에는, 그런 꽃이 있습니다마는. 튜라플리네스라고….”
“뭐라고요?”
위원장은 뜨악하게 마탁소를 쳐다 보았다.
도지사는 황금꽃 제작에 관한 마탁소의 보고를 받자, 마탁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기막힌 생각인데. 예산은?”
“기업체 협찬으로 추진할까 합니다. 위원장님께서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기업체는 기증자로서 영원히 남고 황금 꽃은 도의 재산으로 남게 되는 것으로 추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업체가 그렇게 하려고 할까? 차라리 다 협찬하여 전시하고 박람회가 끝난 뒤에는 자기 소유로 하자고 하지는 않겠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라는 브랜드의 로열티를 내야 하니까요. 그건 부르는 게 값입니다. 우리가 우위입니다.”
“마 부장……”
도지사는 마탁소를 낮고 굵은 목소리로 불렀다.
“충청남도가 그런 정도 문화감각이 없다고 생각하오?
찬란하기 그지없던 백제문화가 680년간 꽃 피웠던 곳이오. 백제금동향로가 바로 우리의 조상이 만든 예술품 아니요? 국보 제 287호 말이요.”
“........”
“황금 꽃은 순수하게 도가 출연해서 만듭시다. 도민의 힘으로 말이요. 금 모으기를 합시다. 우리 도민의 자존심과 문화적 긍지로 만듭시다. ”
도지사는 기획관리실장과 공보관을 불렀다.
“마 부장, 수고했소. 그런데 무슨 꽃으로 제작하는 건지는 안 나와 있네. 계획은 있소?”
“예, 제 생각에는, 그런 꽃이 있습니다마는. 예, 튜라플리네스라고….”
“뭐라고?”
도지사는 뜨악하게 마탁소를 쳐다 보았다.
마탁소는 처음으로 튜라플리네스라는 꽃을 위원장과 도지사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황금으로 만든 튜라플리네스라는 신품종을 세계 최초로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에서 독점전시를 해보자는 구상이었다.
위원장과 도지사는 튜라플리네스라는 꽃의 존재를 듣고는 꽃의 세계라는 것이 그렇게 고차원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보고를 마치고 돌아 온 마탁소는 주곤중을 불렀다.
“주 부장, 당신 영어 잘하지?”
“……”
마탁소는 주곤중에게 살며시 말했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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