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작은 재난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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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작은 재난이란 없다

  • 승인 2017-08-01 16:03
  • 신문게재 2017-08-02 22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물난리가 났다. 언론은 물 폭탄이 쏟아졌다고 표현했다. 시간당 역대 최고의 비가 내렸다. 도로가 끊어지고 철로가 물에 잠겼다. 도시를 관통하는 강이 범람했다. 수돗물 공급이 중단됐다. 빗물에 자동차가 떠밀려가고 물건을 파는 상점과 사람이 사는 방에 물이 차올랐다.

토사도 밀려왔다. 농경지가 매몰됐다. 물을 가둬 둔 댐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사람들이 학교로 긴급히 대피했다. 수 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람이 다치고 여럿이 죽었다. 먼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다. 비 피해가 있었던 지역 사람들이 대전에 있는 직장과 학교를 통학한다. 엎어지면 코가 닿고 누우면 다리가 뻗쳐지는 청주와 충북 지역의 비 피해다.

물난리가 나던 날 저녁, 대전에 있는 방송사들은 청주와 충북의 재난 소식을 거의 전하지 않았다. 행정 체계상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벌어진 일이고 무엇보다 방송 권역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전지역 지상파 방송사들은 대전과 세종과 충남을 단일한 방송 전파 권역으로 한다. 많게는 서너 개 권역으로 나누어 복수의 방송사들이 운영되는 다른 광역자치 단체와 다른 점이다. 내포나 천안에 독자적 편성제작권을 가진 방송사를 추가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을 비롯한 다른 광역단체에 비해 현저히 차별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대전 소식을 주로 전하는 방송사로부터 받는 지역 내 무관심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물난리에 즈음하여 대전지역 방송사들이 할 말이 없게 됐다. 대전에 주소지를 둔 지역방송사들은 이웃의 물난리는 물론 우리 지역 내 물난리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방송사들은 천안과 아산과 세종에 ‘물 폭탄’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청주의 물난리에 비해 규모가 작았다고 하지만, 재난은 그 자체로 절대 위협이다.

집과 가게가 물에 잠기고 생명의 위협이 시시각각 밀려들 때, 큰 재난과 작은 재난은 분별되지 않는다. 천안이 물에 잠기고 아산의 도로가 패였다. 세종시도 그러했다.

지자체들은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 운영했다. 대전은 이번 비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 대전에 거처가 있는 지역 방송사들은 한 두 명의 취재기자가 비 피해 상황을 보도할 뿐이었다.

대전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우리 지역의 다른 곳들이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닐까? 다음 날 아침 뉴스는, 그 전날 써 먹었던 뉴스 문장의 단어 한 두 개만 바꿔 더빙한 것을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비가 많이 왔던 일요일 밤 메인 뉴스를 보자. 재난의 주관방송사인 대전KBS는 우리 지역 비 피해와 관련된 뉴스를 3분 50초 전했다. 두 명의 취재기자가 두 개의 정보를 전했다. 앵커가 스튜디오 뉴스 하나를 더 전했다.

천안과 세종 등 충남 북부 지역에 ‘물 폭탄’이 쏟아졌다는 오프닝멘트를 한 대전MBC는 한 명의 취재기자가 2분짜리 비 피해 소식 하나를 전했다. 같은 멘트를 한 TJB대전방송은 한 명의 기자가 2분짜리 한 개의 ‘물 폭탄’ 소식을 보도했다.

다음 날 아침 뉴스에서 대전지역 방송사는 3분 남짓 전날 뉴스를 재생했다. 대전지역 방송사들의 지역 내 폭우 피해 취재보도의 양과 시간이 턱없이 적었다. 현장에 달려간 취재기자의 숫자도 고작 한두 명에 불과했다.

청주지역 방송사들은 달랐다. 한 방송사의 일요일 밤 메인 뉴스에서는 다섯 명의 취재기자가 다섯 개의 뉴스를 전했다. 일곱 명으로 구성된 다섯 개의 영상취재팀이 이들을 지원했다. 지역방송사에게 배정된 12분의 뉴스 시간 중 9분 이상을 폭우 피해 정보로 채웠다.

다음 날 아침 22분짜리 뉴스의 절반 이상을 물난리 소식으로 채웠다. 그 중의 절반 정도는 밤사이에 발생한 피해 상황과 대응조치 등을 새로 취재한 것이었다. 시청자들에게는 방송사의 뉴스조직 구성원 전부가 일요일 낮과 밤 동안 현장에 달려간 것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지역에 물난리가 난 재난 상황에서 지역방송에게 기대한 것의 최소한을 보았을 것이다.

방송사 앞을 흘러가는 대전 강물이 범람하지 않았다. 방송사 주위에 떨어진 빗물의 양이 적어 대전의 도로가 잠기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 지역의 북부에서 지역민들이 ‘물 폭탄’을 맞아 신음하고 아우성쳤다.

지역 방송사들은 한 두 명의 기자를 현장에 특파하는 데 그쳤다. 재난 현장을 외면한 어떤 정치인들이 악의적으로 하듯이 ‘오히려 수재민들에게 짐이 될 것 같아서’ 현장을 취재하러 가지 않았다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가. 지역 방송이 외면해도 무방한 작은 재난이란 없다.

광역시가 아닌 시군구에 사는 사람 누구에게나 재난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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