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조(배재대 교수) |
더위가 절정이다. 오늘은 중복과 말복의 한 가운데로 그야말로 한 해 더위의 최고봉에 서 있다고 할 만하다. 올해에는 유난히 더위가 일찍 찾아 왔고, 여기에 장마를 기다릴 정도로 가뭄이 극심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장맛비가 내리면서 전국은 찜통 속을 방불케 하더니 장마는 국지성 호우로 변해 여러 지역에 홍수 피해를 주고 막을 내리고 있다. 어제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를 고비로 장마가 끝났고 이제 본격 더위가 시작된다. 더위가 최고조에 달한 만큼 피서 행렬도 만만치 않다. 도심의 도로는 한산해졌고, 대신에 도시 탈출을 감행한 차량들로 인해 전국의 도로는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들끓는다.
우리나라에서 피서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서가 본디 유목민들이 고온 건조한 날씨를 피해 가축들을 목초지로 이동시키는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한 여름의 폭염을 피해 잠시 농사일을 쉬는 것 정도가 된 듯하다. 고구려 벽화에는 깃털로 만든 부채 그림이 등장했으며, 신라 시대에는 시원한 골짜기나 시냇가를 찾아 더위를 잊었다는 기록이 많이 나와 있다. 고려시대에는 삼복 시기가 오면 관리들에게 3일 간의 휴가를 주어 업무를 중단하게 했으며, 얼음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시원한 계곡을 찾아 탁족(濯足)을 하거나, 죽부인을 안고 낮잠을 즐기며 피서를 했다고 하는데, 이와 반대로 낙서(樂暑)라고 해서 더위를 피하기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긴다는 의미의 말도 있다. 이렇게 되면 더위도 피하고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보거나, 시회를 열어 시를 지으면서 교류의 장을 넓힐 수도 있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아니었을까.
일제시대에는 부산의 송도해수욕장이 개장되면서 새로운 피서법이 등장했다. 바다에서 즐기는 피서가 인기를 끌면서 인천 월미도, 원산 송도원 등에 피서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고운 모래가 깔린 해변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대지의 열기를 식히는 피서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지난주에는 대전에서 가까운 바다에 다녀왔다. 그곳에서는 해마다 지역의 특성을 살린 축제가 열리는데 우리가 찾은 날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흙투성이가 되어 뒹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축제장 한가운데에 높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한바탕 클럽파티가 벌어졌다. 대낮에 펼쳐진 클럽파티에 너나없이 몸을 흔들며 즐기는 사람들은 단지 더위만 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피서를 빌미로 흥겨운 놀이를 하고 있는 듯했다. 흙탕물 속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흥에 겨운 노래 소리는 젊음 그 자체였으며, 그늘을 찾아든 다른 이들까지도 몸을 들썩이게 할 만큼 반짝였다.
다음 주 서울 신촌에서는 물총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꽤 알려진 모양이다. 실제로 지난 금요일에 우리 학생들도 캠퍼스를 누비며 물총놀이를 하는 것을 보았다. 30도를 훌쩍 넘은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 몸이 흥건히 젖은 채 물총놀이에 빠진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도 학생도 모두 아이처럼 맑았다. 교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다 날려 보내고 사제가 모여 앉아 수박을 먹던 모습은 아름다운 한 여름 풍경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산과 바다를 찾아 더위를 피하고, 때로는 열정을 다해 더위를 즐기는 일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피서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온 가족이 대형 마트를 찾아 더위를 잊고 가는 실속형도 있고, 자녀들과 함께 동네 도서관을 찾는 학구파 젊은 부모들의 모습도 보기 좋다.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찾아 문화생활을 누리는 학생들도 대견하다. 이들에게 더위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하는 친구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할인매장을 찾는 사람들은 안다, 1+1이 주는 뜻밖의 기쁨을. 피서도 그런 것 같다. 그냥 더위를 피하려고 했을 뿐인데 덤처럼 따라오는 게 있다. 새롭게 만나는 시간, 걸진 놀이마당, 그리고 마음의 여유. 이쯤 되면 도랑도 치고 가제도 잡은 것인가.
이영조(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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