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수민족 하나족의 장 촌장과 함께/사진=김인환 |
이튿날 정확하게 오전 10시, 나는 홍허센(红河县) 문화국 국장을 방문했다. 어제의 그 왕 여드름 비서 아가씨가 생글거리며 맞이한다.
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국장님께서 여유국장(旅游局长)께 말씀해 놓으셨으니 그 쪽으로 가보세요. 여유국장의 방은 3층 중간 쯤에 있습니다”라며 친절하게 문밖까지 나와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안내해 준다.
중국의 旅游局이란 우리나라 정부의 관광국(어떤 시대에는 관광교통국, 어떤 시대에는 관광개발국, 또 어떤 때는 문화관광국 등 우리나라 정부는 계속 그 이름을 바꾸어가며 사용해왔다. 요즘은 또 무슨 이름으로 변했는지?)과 같은 성격이다.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관광사업을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있다. 이는 조상들이 물려준 관광자원을 십분 활용해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우리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유국의 파워도 막강하다. 물론 돈이 많기 때문이리라.
3층 여유국장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우선 근무하는 마음자세부터 다른 局과 다르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곳의 비서는 남자였다. 3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비서는 노타이 차림이었지만 무척 성실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내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국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에 역시 30대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나왔다.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로 희고 예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온다. 오동통하고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 참으로 오랜만에 만져보는 촉감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내린다. 활짝 웃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귀엽기까지 하다. 웃을 때마다 하얀 치아와 덧니 두 개가 매력적이다.
순간적으로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요염하기까지 한 바로 이 여인이 여유(旅游)국장?!
“어제 문화국 국장님으로부터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작가님이시라구요? 라며 명함을 내놓는다.
얼핏 보니 성이 동(童)씨다. 갑자기 그 이름이 떠오르질 않지만 한국 후배 시인 가운데 童씨 성을 가진 시인이 한 명 있었다. 큼직한 국장의 책상 앞에 놓인 응접 쇼파에 마주 앉은 童 局長.
한 번도 한국에 가보지 못했지만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가 한국이라면서 올인, 겨울연가, 대장금 등 내가 모르는 영화까지도 그 이름을 줄줄이 꿰며 다 보았다는 것이다.
가끔 느끼는 일이지만 중국에 와서 한류 화풍의 프리미엄(PREMIUM)을 톡톡히 볼 때가 있다. 한국인이면 다 멋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주고, 한국 상품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란 선입관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한류화풍의 프리미엄이 아니고 무엇이랴.
童 국장은 한참 동안이나 자신의 업무를 잊고 생전 처음 만난다는 한국인을 앞에 놓고 궁금한 일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묻고 또 묻는다.
한국여인들은 다 이쁘냐? 부터 시작해서 유명한 탤런트들의 신상에 대해서 묻기도 하고 강원도며 제주도 등을 두루 섭렵하다가 나중에는 눈을 맞으며 걸으면 기분이 어떠냐?에 이르기까지.
은근히 나를 으쓱하게 만드는 그녀. 늘 긴장해 있던 심신이 나긋나긋 풀릴 지경이다.
드디어 본론으로 접어든다.
“이곳엔 어떤 일로 왔습니까?”
“소수민족 하니족 (哈尼族)을 취재하러 왔다.”
“왜 그들을 취재하려는 것입니까?”
“이미 많은 소수민족을 취재하여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소수민족들의 아름다운 습관, 문화, 예술 등을 소개해서 더욱 많은 한국인들이 관광차 찾아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 되겠느냐!”
“오우! 정말 멋진 일을 하시는군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결코 가식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큰 목소리로 비서를 불러들이더니 오늘 예정되어 있는 점심 약속을 취소하고 나에게 점심대접을 하고 싶으니 어느 식당에 예약을 하고 또 누구 누구를 부르라는 지시를 내린다.
내가 먼저 황송해질 지경이다.
내가 그럴 필요까지 없다고 사양을 하자 그녀는 두 손을 흔들며 “아닙니다. 우리 고장에 당신같은 고귀한 분이 손님으로 오셨는데 우리가 환영하고 대접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닙니까? 며칠이라도 좋으니 이곳에서 푹 쉬시다가 우리들이 안내하는 하니족 (哈尼族)부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소수민족 촌에 가면 하나같이 곤궁한 살림들이라 같이 생활하시기가 몹시 불편하실 터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그 문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이미 십여 군데 소수민족촌에서 생활해 보았습니다. 아무 데서나 잘 자고, 무엇이든지 잘 먹습니다.”
“그래도…… 그래도……”라며 그녀는 계속 걱정된다는 눈치다.
▲ 하나족이 즐겨부르는 전통악기 ‘생황’/사진=김인환 |
오랜만에 식탐을 즐기고
그날 점심은 红河县에서도 최고급 요리집으로 짐작되는 식당에서 배가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한 끼에 1元, 2元으로 만족했었고, 소수민족 촌에 들어가면 배가 고파서 먹는다는 얘기밖에 할 수 없을 정도의 빈한한 음식들이어서 늘 식탐을 만족시켜 줄 수가 없었다.
점심 식탁의 일행은 나까지 모두 9명이나 되었다.
국장과 남자 비서 그리고 고위직 공무원 두 명과 일반 사업가들인 것 같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童국장과 똑같이 한국인을 처음 만난다는 것과 한국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는 점이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이런 때 한국을 소개하는 CD 몇 장 쯤 준비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식사 후에 곧 근무지로 돌아가야 할 그들이건만 맥주잔을 돌린다. 한 병에 1元, 1元 50전 짜리 텁텁한 맥주를 마시다가 중국의 이름난 청도 맥주를 그것도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맥주를 마시려니 온 몸이 날아갈 듯 상쾌하다.
童국장은 옆 좌석에 앉아 마치 접대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맥주잔을 다 비우지 않았는데도 연신 거품이 넘치도록 채워주는가 하면 이것 저것 음식을 집어다가 내 앞에 있는 접시에 얹기 바쁘다.
화제가 소수민족 哈尼族으로 옮겨진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하니족(哈尼族)은 많은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교육열이 가장 높은 민족이라는 것과 자신들의 문자를 갖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높은 교육열 덕분에 북경 중앙정부에도 고관이 여러 명 있을 정도라는 것까지.
오후 2시경이 되어서야 점심 식탁에서 일어난 일행들은 다시 보자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童 국장 역시 같은 인사를 하고 떠난 후 남자 비서가 내 배낭을 들더니 같이 가자고 이끈다.
그가 데리고 간 곳은 으리으리한 대문이 있는 궁궐같은 집이었다. 막상 들어가보니 안마를 받는 곳이다.
어여쁜 꾸냥들이 물고기처럼 하늘하늘 오르락 내리락. 호화스런 호텔 룸 같은 곳으로 안내되었는데 비서는 이곳에서 안마를 받으며 푹 쉬라고 한다. 그리고 의미있는 미소를 날리며 퇴장.
잠시 후에 두 명의 섹시한 치파오(旗袍)차림의 아가씨가 들어와 마치 왕을 대하는 시녀처럼 내 겉옷을 벗기고 욕실로 안내를 한다. 욕실도 호화판이다. 오랜만에 따뜻한 온탕에 몸을 잠근 채 피로를 씻어냈다. 밖으로 나오니 곧장 침대에 누우란다. 한 명은 전신마사지, 그리고 또 한 명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자세를 바꾸어가며 발 마사지를 시작한다.
그리고 또 질문 공세.
“한국사람이라면서요?”
“그렇다.”
어쩌면 의전행사이기나 한 것처럼 똑같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지겨울 정도다.
그러다가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나 보다.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한 시간 정도 숙면을 취했다.
분명히 들어올 때는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이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의 옷차림이 요상스럽다.
옷차림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 달랑 브래지어 하나에 아랫도리는 삼각팬티 하나뿐이다. 젖가슴이 얼마나 큰지 브라자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풍만함에 아랫도리는 팬티를 입었는데도 거뭇거뭇 검은 숲이 삐져나올 태세다.
꾸냥의 끈끈한 유혹
풍만한 여인의 나신(裸身) 앞에 견뎌낼만한 도사가 있으랴.
숨이 칵! 막힐 정도로 온 몸에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다. 남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꾸냥은 생글생글 웃으며 돌아누우라는 시늉을 한다.
두 팔 앞으로 쭈욱 뻗은 채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당장은 시선이 닿질 않으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잠시 후 그녀는 마치 승마라도 하는 듯이 내 엉덩이 위에 올라타는 눈치다. 여자의 봉긋한 아랫 부분이 엉덩이 위에 얹혀지는가 했더니 천천히 허리께로 이동을 한다. 그리고는 내 등 위로 엎드리며 두 앞가슴으로 잔등을 짓누른다.
아, 이것이 젊은 여인의 촉감이란 것이구나!
보지 못해도, 손으로 만져지지 않아도 온 몸으로 끈적끈적 달라붙는 나신의 유혹.
몇 번인가 내 등 위에서 낮은 포복을 감행하던 그녀가 다시 돌아 누우라고 하는데 선뜻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노출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몇 번이나 그녀의 재촉을 받고서야 반듯이 돌아누웠다.
얼핏 쳐다본 그녀의 얼굴에도 빨갛게 홍조를 띄고 있다.
무슨 사건이 곧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리고 밝게 웃어대던 童 국장의 얼굴이며 그 곁에 앉았던 중국인들. 그리고 나를 이곳까지 안내한 비서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앗차! 하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나를 테스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흔히 먼 곳에서 온 친구 대접 가운데 객고(客故)를 풀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친하게 지내는 사이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먼 나라 한국땅에서 왔다는 작가라는 남성을, 그것도 처음 본 사람에게 이 같은 친절은 쉬 납득이 안 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내 들뜬 마음도 다소 가라앉게 되고 냉정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꾸냥의 유혹은 계속되고 있었다. 다리부터 안마를 해오다가 허벅지로 올라오고 그 가느단 손가락이 위험지역에까지 서슴없이 왕래하고 있다.
벌떡 일어나 앉았더니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키득키득 웃기까지 하며 다시 누우라고 재촉이다.
“됐네, 이 사람아! 그만 하게.” 급한 마음에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침대 머리맡 쪽으로 갔다 온 그녀의 손에 달랑달랑 콘돔이 들려 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내려와 다시 샤워실로 달려갔다.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려고 문고리를 찾았는데 그 곳은 잠금장치가 없었다.
샤워기를 틀고 물 밑에 숙여 바깥 쪽을 보니 어느새 꾸냥은 브래지어며 팬티를 벗어던지고 욕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심중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그녀. 그녀는 내가 샤워실로 뛰어든 것을 잘못 착각한 게 틀림없었다.
그녀를 피해 다시 뛰어나와 수건으로 닦는 둥 마는 둥 옷을 찾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쉽게 찾을 수가 없다. 꾸냥은 풍만한 앞 가슴을 출렁이며 알몸인 채 또 달려들 기세다.
참으로 두 남녀의 알몸쇼가 가관이었을 게다. 겨우겨우 그녀에게 옷을 입게 하고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가며 내가 널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뚱거리던 꾸냥이 주섬주섬 옷을 꿰입더니 뾰로통한 얼굴로 퇴장한다.
어휴! 거절도 참으로 힘들구먼!
그러면서도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리게 된다. 혹시나 어느 구석에선가 그 비서란 녀석이 숨어서 엿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옷을 입고 배낭을 챙기려는데 똑 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서는 여인이 있다. 아까보다 몇 살 쯤 더 들어보이는 늘씬한 미인이다.
스커트 양 쪽이 얼마나 길게 트였는지 엉치뼈가 다 보일 정도다.
그녀는 들어서자마자 스커트부터 벗어 던진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냐? 노팬티차림이라니!
다음 동작은 상의와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는 일.
이 여자들이 왜 이러나. 나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났나! 남자에 굶주린 암컷 늑대들인가?
그녀가 벗어 던진 옷을 집어 다시 입으라고 점잖게 타일렀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배낭을 짊어진 채 밖으로 도망치듯 나와 버렸다.
밖은 글자 그대로 벌건 대낮이다.
나오긴 나왔지만 갈 곳이 없다. 분명히 여기서 쉬고 있으면 데리러 온다고 했고, 그리고 저녁만찬을 같이 하자고 했는데 일찌감치 튀어나왔으니 어디로 간담?
도시 중심에 위치한 호숫가를 찾았다. 분명히 인공호수임엔 틀림없는데 그 크기가 예사롭지가 않다.
호수 한 쪽에 몇 명의 낚시꾼들이 보인다.
세월을 낚아 올리는 태공들의 여유있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그들 옆에 내려가 배낭에 기대어서 구경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잠을 퍼뜩 깼다.
“您在那儿?”(지금 어디 계십니까?) 비서의 목소리다.
“在湖边这里。” (호숫가에 있습니다.)
“什么方向?”(어느 쪽입니까?)
“不太清楚。”(모르겠습니다.)
“等一下,我找找看。”(기다리세요. 제가 찾아 볼께요.)
그러나 안마집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방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아직 쉬고 계신 줄 알고 안마집으로 갔더니 일찍 나가셨다고 하더군요. 걱정했습니다.”라며 의미 있는 웃음을 날리는 비서.
면상으로 한 방 주먹을 날려주고 싶지만 참았다.
짜아식! 사람을 뭘로 보고 그래? 아무 여자나 하고 그런 짓을 하는 사람으로 보았단 말이지? 괘씸한 녀석들. 童 국장을 만나면 한 번 쏘아붙여 줘야지.
으리으리한 만찬을 즐기며
비서가 안내한 식당은 정말 으리으리했다. 서울의 귀빈들을 대접하는 영빈관도 이 정도 호화롭지는 않을 터이다. 여하튼 스케일 하나는 쥑여주는 나라다.
커다란 정원. 그리고 우거진 숲. 기화요초가 만발한 가운데 어디서 옮겨왔는지 모르는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어느 건물이 안채인지 모를 만큼 그만그만한 규모의 대저택이 십 여 채 보이고 그 중 한 곳에 안내돼 들어가니 십여 명의 미녀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안내를 한다.
커다란 방 안에 들어서자 童 국장이 반기며 일어서고 그 주위로 7~8명의 남여가 따라 일어선다. 그 사이 童 국장은 낮에 입었던 복장을 중국 전통의상으로 갈아입고 앉아 있었다. 또 다른 여인을 보는 느낌이다.
내 좌석은 童국장의 바로 옆에 안배돼 있었다.
내가 앉자 모두들 자리에 앉고 童 국장이 좌중을 차례로 소개하는데 아무개 사장, 아무개 국장, 아무개 비서장 등 등 소리만 귀에 들어온다.
이 고장에서 제법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인 모양으로 한국인을 처음 만나게 된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童 국장은 큰 목소리로 이 분은 한국에서 오신 유명한 작가 선생님인데 이번에 소수민족 하니족(哈尼族)을 취재하러 오셨다.
이곳의 아름다운 풍습과 문화 예술 등을 취재하여 한국에 소개를 할 모양인데 우리가 접대를 잘해 드리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아 오늘 자리를 마련했으니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좌중을 리드해 나갔다.
몇 순 배 술잔이 돌았다. 바로 옆 좌석의 童 국장이 단 둘이 건배를 하자며 잔을 부딪쳐 온다. 그러면서 속삭이는 듯한 음성으로 “낮에는 편히 쉬셨어요?” 한다.
“땡큐. 덕분에 잘 쉬었오.” 막상 만나고보니 한 마디 하려던 말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나오지가 않는다.
앙큼한 사람.
안마집에서 무슨 일이 전개될 것인지 모를 까닭이 없으련만 시침이를 뚝 떼고 잘 쉬었냐고 능청을 부리다니!
내일 아침에 8시간 거리의 소수민족 哈尼族 촌으로 우리 직원이 안내를 해 줄 것이니 오늘은 마음 놓고 실컷 먹고 마시라며 너스레까지 떠는 童 국장.
그러니 고마운 마음도 지울 수가 없다.
역시 “땡큐!”하고 간단히 답하고 잔을 부딪쳤다. 많이도 마셨다. 노래들이 나오고 흥이 도도해지면서 몇 명은 옆으로 벗어나 춤까지 춘다.
날더러 한국노래를 청하기에 거침없이 아리랑을 불러 제꼈더니 앵콜 앵콜이다.
두 번째 아리랑을 부르는데 절반 이상이 금새 따라 부른다.
가사는 틀리지만 비슷한 곡이 자기네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훗날 들어서 알게 되었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 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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