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熱情Pay)’란 신조어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돈 대신 경험으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지요. 곧, 저임금이나 무임금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열정이 이성을 이기는 약점을 이용한 사악한 행위라 생각합니다. ‘교수 갑질’에 대하여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 보다 전문성을 키워야한다거나 진로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피교육생들을 상대로 버젓이 착취가 이루어지지요. 청년층이나 예술 입문자들이 갈취를 당합니다. 기성작가들이라 해도 푸대접 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돌아보니 일 년에 서너 번 연극을 관람 한 것 같군요. 출연자와 스탭들이 관객보다 많은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들여다보니 부부나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경우도 많더군요. 필자가 염려한다고 도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제대로 밥이나 먹고 사는지 걱정될 때가 많았습니다. 지역에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평생 무명으로 보내는 예술인들이 부지기수지요. 그러다보니 생활고를 겪다 죽는 예술인들도 많습니다. 2011년 최고은의 죽음으로 일명 ‘최고은 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지지만 그 후에도 예술인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연극인 정아율(2012), 배우 김수진(2013), 배우 우봉식(2014), 연극인 김운하(2015), 배우 판영진(2015) 등이 우리들 곁을 떠났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이지요.
연극계뿐만이 아닙니다. 자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요,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년 발표한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자료(조사기간 2015.8.3 ~ 2015.12.15)에 의하면 수입이 없는 36.1%를 비롯해서 80.1%가 연 2천만 원 미만 소득자입니다. 전체평균 소득도 연 1,255만 원에 불과합니다.
바로 엊그제 일입니다. 대구에서 7월 19 ~ 23일 ‘치맥축제’가 5일간 있었지요. 행사 전, 대구시에서 예술인들에게 출연료 2만원을 지급 할 테니 참가 신청하라는 공문을 보냈답니다. 고사하는 사람들이 많게 되자 ‘시민공연’으로 이름을 바꾸고, 참여한 97개팀 699명에게 장비비, 교통비 등 아무것도 지급하지 않았답니다. 정상적인 발상인가요? 문화예술인들을 어떻게 보는 것인지 참 궁금합니다.
필자는 조그만 기관의 기관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문화예술 행사비 예산이 있었지요. 전국에 동일한 9개의 기관이 있는데, 다른 지역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둘러보았습니다. 보통은 하루 행사에 다 쓰더군요. 행사비 삼분의 일 정도는 특설무대 설치 등의 준비비로 쓰입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알려진 스타 2명 정도 초대하는데 모두 사용합니다. 지역의 예술가들은 무료 봉사지요. 열정페이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무대에 세워주는 것만도 감사해라 뭐 그런 겁니다. 유명인이나 중앙에 집중되는 것이 관객동원을 위해 일정부분 필요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예산으로, 주민잔치를 포함 일 년에 10회의 공연을 개최하였습니다. 과정에서 지역 예술인들을 설득하였지요. 타 지역에 비해 문화예술이 수십 년 뒤진다는 평을 듣는 것은 우리 문화예술인들의 책임이다. 인프라 구축을 위해 협조해 달라. 모든 출연자를 지역 예술인들로 하였습니다. 적지만, 행사비 모두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가도록 했지요. 공감하는 지역 예술가들 도움으로 3년간 30회의 공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장르 불문, 다양한 내용이었지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눈과 귀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생각합니다.
발상의 전환을 위해 몇 가지만 제안을 해봅니다. 문인들이 발표하는 모든 작품에 대하여 반드시 원고료를 지급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미술작품이나 공연예술의 제작비 전체를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우선 모든 전시장, 공연장의 대관료만이라도 무료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사설인 경우 전시회나 공연이 있는 기간 대관료를 산정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음악이나 무대예술의 경우 연습 기간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적절한 인건비를 지원하면 어떨까요? 집중되고 있는 유명 문화예술인들의 세금은 전액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면 어떨까요?
도종환 장관도 가는 곳마다 예술인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더군요. 아시는 바와 같이 이제 문화예술이 곧 경제입니다. 예술인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콘텐츠 아닌가요? 즐기는 사람과 예술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품격이 됩니다. 제도에 앞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문화예술인들을 존중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합니다. 특히 모든 행사 주관자가 변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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