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지류 갑천 물은 바닥이 보일정도로 줄어 있었다.
사람들은 갑천변을 천변이라 하지 않고 강변이라 한다.
굳이 강과 천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천(川)은 강과 만나는 냇물을 말한다.
강(江)은 바다와 만나는 냇물을 말한다.
갑천은 금강과 만나고, 금강은 서해바다와 만난다.
우리나라에서 6번째, 남한에서는 3번째로 긴 강, 금강.
금강은 한자로 비단 금(錦)자를 쓰지만, 그 어원은 곰이라는 것이 유력한 설이다. 공주 즉 곰주, 웅진 등으로 표시되는 곰이라는 어원이 금강이라는 발음으로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갑천 물이 준 것은 지독한 가뭄 탓이었다.
그러나 가뭄이 사람들의 야외에 대한 욕구마저 가물게 하지는 못하였다.
강변에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저녁나절의 선선한 산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마탁소 가족도 그러한 군상의 인자들이었다.
마순원은 제가 좋아하는 디지털 카메라를 둘러메고 앵글을 여기저기 강변의 야경에 맞추어 찍어보곤 하였다.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이 소비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장점이었다.
카메라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의 장난감으로 이만한 도구가 없었다.
마광소의 아내 송원희는 가족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순원이가 구도를 잡고,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셔터를 부탁하였다.
디지털 카메라는 충직하게 곧 자기의 성과물을 주인에게 보고하였다.
카메라의 LCD 디스플레이 창에 방금 찍은 사진이 나타났다.
그런데 빛이 잘못 들어갔는지 뒷배경에 허여스름한 구름 같은 것이 번지어 있었다.
“잘못 찍혔어요.”
순원이가 히죽 웃었다.
다시 한번 가족이 포즈를 취하고 지나가는 다른 사람에게 셔터를 부탁하였다.
네 가족이 오래간만에 함께 손을 잡고 서서 웃는 가족사진이 완성되었다.
집에 돌아오자 순원이는 방금 전에 찍은 디지털 사진들을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어떤 장면은 자기의 e-앨범에 수록하기도 하고 어떤 사진은 컬러 프린트하여 코팅까지 하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있었다.
프린트하여 가져온 순원의 사진을 보면서 각자 한마디씩 하였다.
표정이 멍청하다는 둥, 머리 염색을 해야겠다는 둥, 아버지는 늘 폼이 똑같다는 둥 놀리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마탁소도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사진을 보다가 빛이 잘못 들어가서 잘못 촬영된 사진이라고 내놓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허연 구름이 번진 사진이었다.
플래쉬 불빛 때문에 네 사람이 빛에 노출되고 주위는 캄캄한데, 네 사람의 머리 위 검은 하늘에 구름이라도 낀 듯 허옇게 번져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던 탁소는 갑자기 숨을 훕하고 들이 마셨다.
마탁소는 사진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흘낏 보고는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돋보기를 찾았다.
돋보기를 통해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허옇게 번져있는 구름의 모양.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구름 형상은 바로 사람의 얼굴이었다.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마탁소는 다시한번 구름으로 된 사람 얼굴을 살펴보았다.
하얀 머리가 산발된 채, 눈과 코와 입이 무성한 흰 수염 속에 파묻힌 할아버지의 얼굴이 네 가족의 머리 위에서 가족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름이 온몸에 끼치면서 전율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오싹했다.
마탁소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왜 요즘 이러나?
사진 속의 얼굴은 험한 인상은 아니었다. 인자하고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가족을 보호라도 하듯 하늘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쁜 조짐이 아니다.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중국의 대지에서 예수의 모습을 보여 달라는 기도에 앞에 있는 눈 덮힌 땅을 찍었더니 나타났다는 예수의 모습이라는 사진이 연상되었다.
마탁소는 아이들에게 사진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놀랄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아내 원희에게는 더욱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섬증을 많이 타서 밤에는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TV를 끄곤 하는 아내였다.
탁소는 침대에 누웠다.
요즈음의 이 이상한 사건들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귀신에게라도 흘린듯 했다.
탁소가 방에서 안 나오자 아내가 따라 들어왔다.
“피곤하지요. 일찍 주무셔요.”
하면서 아내는 자상하게 남편의 잠자리를 챙겨주었다.
탁소는 오래간만에 아내와 함께 자리에 누웠다.
피곤이 엄습해 오는 듯 했다.
이것저것 산란한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어느새 잠이 들었던가.
탁소가 잠에 곯아 떨어지자, 아내는 허리를 일으켜 탁소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남편이 안쓰러웠다.
말 못할 고민이 있는가?
저녁을 먹으면서 들은 남편의 여러 이야기는 믿겨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남편은 신경이 몹시 날카로와져있음에 틀림없다.
꽃박람회 성공이 그렇게도 걱정이 되는가?
가뭄에 나라 걱정이 그리도 되는가?
잠을 자던 마탁소가 꿈을 꾸었다.
대지 위에 서 있었다. 풀도 나무도 없는 맨 땅의 대지였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뭉게뭉게 흰 구름이 하늘을 느릿느릿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가뭄의 대지였다.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 한 덩어리가 하늘 구석에서 서서히 움직이더니 어떤 모습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점차적으로 커다란 어떤 형상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머리가 텅 빈 듯한 기분으로 그 구름을 속절없이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그 형상은 얼굴의 모습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얼굴은 점점 뚜렷이 구체화 되어 갔다.
그러더니 그 얼굴이 아까 사진에 나타났던 할아버지의 얼굴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꿈속에서 보고 있는 구름은 더욱 명료하게 사진 속의 얼굴을 만들어갔다. 눈에 눈동자가 생겨나고 입술은 말이라도 할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서워졌다. 심장이 뛰었다. 숨이 멈추어졌다.
남편 옆에 누운 아내 원희는 냉큼 잠이 오질 않았다.
남편의 기색을 살폈다. 숨을 머금고 내쉬는 기색이 없었다.
무슨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가?
원희는 숨을 멈춘 남편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자기 얼굴을 남편 얼굴에 가까이 대 보았다.
마탁소가 꿈 속에서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구름얼굴이 자기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마치 얼굴을 대보기라도 하려는 듯….
마탁소는 한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며 하늘을 향해 얼굴을 흐뜨려 버리기라도 다른 한 팔을 휘저었다.
갑자기 남편이 가위라도 눌리는 듯 손을 위로 뻗어 휘저었다. 원희는 흠칫 놀랐다.
무서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남편을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어깨를 흔들었다.
마탁소는 꿈속에서 하늘의 얼굴이 다가오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자신을 마구 흔들어 대고 있었다. 놀란 마탁소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자 했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을 악몽에서 구해주기 위해 소리를 쳤다.
“여봐요! 여봐요!”
마탁소에게 달려든 구름 얼굴이 입을 크게 벌려 무슨 소리인지 크게 외쳤다.
벼락치는 듯한 천둥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남편을 마구 흔들었다.
구름얼굴이 지르는 소리와 입에서 불어나오는 폭풍이 마탁소의 몸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구름 얼굴의 두 눈에서 빛이 번쩍하고 나왔다.
남편은 자다가 우우우! 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원희는 ‘여보!’ 하고 외마디 소리를 냅다 질렀다.
꿈속의 구름얼굴의 입에서 다시 콰쾅하고 어마어마한 천둥소리가 내리쳤다.
마탁소는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갑자기 창밖에 번쩍하면서 방안 전체가 섬광으로 환해졌다.
번개가 쳤다.
그리고 아내와 남편은 듣기 시작했다. 점점 똑똑히 들려왔다.
대지를 두드리는 저 작은 북들의 소리.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구름얼굴의 외치는 소리가 천둥이 되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두 부부는 서로 얼굴을 바라만 볼 뿐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눈을 동그렇게 뜨고 놀란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무슨 꿈인지를 묻는 아내에게 마탁소는 꿈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아까의 그 구름 사진을 꺼내보였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아내는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아내의 눈은 깜빡거릴 줄을 몰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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