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사랑

  • 문화
  • 영화/비디오

[김선생의 시네레터]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사랑

  • 승인 2017-07-26 17:33
  • 신문게재 2017-07-28 12면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봉준호 감독의 화제작 <옥자>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라는 인터넷 기반 기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하여 일반 상영관을 주로 하는 배급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예술 영화 전용관에 가서야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보고 난 뒤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봉준호의 영화가 줄곧 그래왔듯이 이 영화 역시 세상사 주류의 관심사에 끼이지 못하는 가난한 생명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유력한 이들의 그럴듯한 포장과 정당화 뒤에 도사린 탐욕과 부도덕의 반대편에서 힘겹게 존재의 의미를 지켜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소녀 미자. 그리고 그 아이가 지켜내려는 슈퍼돼지 옥자. 그냥 그대로 두기만 해도 얼마든지 좋을 이들의 가난한 아름다움은, 그러나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영화는 봉준호의 전작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장 가깝게는 <괴물>(2006)이 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동물이 나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괴물>의 경우 소녀와 괴물은 소통하거나 교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녀를 위태롭게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유전자 조작이라는 인간 과학기술의 산물이 인간과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소녀의 아버지 강두(송강호 분)가 죽은 딸 대신 남겨진 소년을 아들 삼아 기르듯이 슈퍼돼지가 도살장에서 어린 돼지를 품고 나와 다시 산골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다음 세대를 통해 작은 희망을 남기는 것은 <설국열차>(2013)와도 통합니다. 지혜롭고 용기 있는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영화는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태계의 교란과 인간 탐욕을 위한 부도덕이라는 무거운 이슈를 다룹니다. 그러나 봉준호의 영화들이 늘 그래왔듯이 이 작품 역시 무겁게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유머러스하고 코믹한 장면들이 유쾌하게 펼쳐집니다. 어쩌면 만화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방식들은 영화를 비장하기보다는 풍자에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여기에 마치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을 닮은 캐릭터, 비틀즈 멤버를 닮은 동물 보호 단체 대표 등도 작품을 경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윤동주의 ‘서시’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영화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지켜 내려는 작고 연약한 것들의 힘겨운 싸움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애정을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 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금산 무예인들, '2024 인삼의 날' 태권도와 함께 세계로!
  4. 학하초 확장이전 설계마치고 착공 왜 못하나… 대전시-교육청-시행자 간 이견
  5.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1.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2.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3.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4.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5.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