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화제작 <옥자>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라는 인터넷 기반 기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하여 일반 상영관을 주로 하는 배급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예술 영화 전용관에 가서야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보고 난 뒤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봉준호의 영화가 줄곧 그래왔듯이 이 영화 역시 세상사 주류의 관심사에 끼이지 못하는 가난한 생명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유력한 이들의 그럴듯한 포장과 정당화 뒤에 도사린 탐욕과 부도덕의 반대편에서 힘겹게 존재의 의미를 지켜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소녀 미자. 그리고 그 아이가 지켜내려는 슈퍼돼지 옥자. 그냥 그대로 두기만 해도 얼마든지 좋을 이들의 가난한 아름다움은, 그러나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영화는 봉준호의 전작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장 가깝게는 <괴물>(2006)이 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동물이 나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괴물>의 경우 소녀와 괴물은 소통하거나 교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녀를 위태롭게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유전자 조작이라는 인간 과학기술의 산물이 인간과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소녀의 아버지 강두(송강호 분)가 죽은 딸 대신 남겨진 소년을 아들 삼아 기르듯이 슈퍼돼지가 도살장에서 어린 돼지를 품고 나와 다시 산골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다음 세대를 통해 작은 희망을 남기는 것은 <설국열차>(2013)와도 통합니다. 지혜롭고 용기 있는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영화는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태계의 교란과 인간 탐욕을 위한 부도덕이라는 무거운 이슈를 다룹니다. 그러나 봉준호의 영화들이 늘 그래왔듯이 이 작품 역시 무겁게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유머러스하고 코믹한 장면들이 유쾌하게 펼쳐집니다. 어쩌면 만화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방식들은 영화를 비장하기보다는 풍자에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여기에 마치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을 닮은 캐릭터, 비틀즈 멤버를 닮은 동물 보호 단체 대표 등도 작품을 경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윤동주의 ‘서시’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영화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지켜 내려는 작고 연약한 것들의 힘겨운 싸움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애정을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 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