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돼지고기를 볶았다.
안면도는 회는 많아도 육고기는 많이 먹지 못했을 터…,
혼자서 고생도 심했겠지. 영양도 보충해야지.
술은 소주다. 딱 한 병만 샀다.
오늘 저녁은 이야기를,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탁소는 왠지 긴장감이 감도는 창백한 얼굴로 집에 들어섰다.
실로 오래간만에 가족이 다 모인 저녁식사였다.
아버지는 술을 안 들면 말이 별로 없다. 순원은 아버지 술잔에 소주를 우선 한잔 따랐다.
어머니가 준비한 메뉴가 나왔다. 빨간 고추장을 넣어서 볶은 저육 볶음이다. 마탁소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저녁메뉴다.
오. 이 분위기…
행복이라는 단어다.
모처럼의 만남이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는 아이들의 진로문제에 대해 말을 꺼냈다.
순원이가 지금은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대학원에서도 계속 물리학을 하게 할 것인지 아닌지, 유학을 간다면 어디로 가면 좋을지 하는 것 등이었다.
복잡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물리학을 계속하면 비전이 무엇인지, 그 끝이 어디인지 하는 것에서부터 학비문제, 생활문제 등이 얽혀 있었다.
문제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런 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늘 별스럽게 세상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의견.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책에서도 못 보았던 희한한 내용이 많았다. 궤변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흡인력이 있었다. 딱히 대항을 할 수 없는 이상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히 어느 구석에 논리적으로 헛점이 있을 터. 그래서 순원은 가끔 아버지의 말끝에 반론을 모색하면서 귀를 기울이곤 했었다.
어쩌면 설득되지 않기 위해서 경청하는 자세였다. 반역의 역모를 감추고 아버지 말씀의 빈틈을 파고들고자 했다.
하지만, 늘 무산되고 말았다.
아버지의 말씀은 깊이 생각해 보면 옳았다.
마탁소가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그리고는 밑도 끝도 없이 순원이에게 물었다.
“순원아, 식물하고 동물하고 어떻게 다르냐?”
순원이 갑자기 들이댄 질문에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무엇을 기준으로 하다니?”
“흔히들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독립 영양체냐 종속 영양체냐 하는 기준이고, 자율적으로 이동이 가능하냐, 아니냐라는 기준이겠죠.
그러나 그런 것은 중학교 수준이죠.
사실은 동물과 식물은 그 중간영역도 너무 많아서 일률적으로 이건 동물, 저건 식물하고 구분할 수 없는 생명체도 많지요. 유글레나 같은 것은 자체 엽록소가 있어 독립영양체로 존재해서 식물 같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니 동물이기도 하지요.
버섯은 균류의 집합체입니다. 하나하나의 균류는 동물적 요소이지만 이러한 균류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존재가 버섯이라는 식물입니다. 다시 말해 동물적 속성들 즉 포자 하나하나는 동물인데 집합체가 되면 식물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현대에서는 식물인가 동물인가로 생명체를 구분하지 않고 이러한 식물, 동물, 원생동물, 균류 등 여러 가지 카테고리로 생명체를 분류하여 구분합니다.
하지만 물리학적으로 분석하면 식물의 광합성작용도 따지고 보면 원자와 전자의 운동에너지에 의한 화학적 작용이므로 결국은 동물과의 차이는 화학적 반응의 다양성이라는 의미 외에 본질적 차이라는 것도 없다고도 봐요.”
순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무언가 개념상의 본질성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고전적으로 역시 독립영양체냐 하는 것과 자율이동성의 여부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마탁소가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기준 요소가 아니다.
생각의 주체로서 식물과 동물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묻고 싶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동물은 모두 뇌가 있는가? 스스로의 의사가 있는가?
식물은 뇌가 없는가? 스스로의 의사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움직이고자 하는 의사로 움직이는 것과 그러한 의사 없이 움직여지는 것이 동물과 식물의 구분하고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그런 질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순원뿐만 아니라 아내 송원희도 수경도 어리둥절 영문을 몰랐다.
순원은 생각하였다. 아버지의 질문에 답은 할 수 있다.
단세포동물은 뇌랄 것이 없다.
세포는 뇌가 아닌 것이다. 뇌가 세포일지언정.
비단 단세포 동물뿐인가? 동물이라 하여 뇌가 있고 생각을 하며, 식물이라 하여 생각까지는 몰라도 자기의사를 표출하는 메카니즘이 없는 것도 아니니,
뇌의 존재여부와 의사의 존재여부는 다른 것이고, 그런 것은 종의 구분의 기준으로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라는 걸….
그렇지만, 순원도 저 곤충들의 놀라운 지혜와 꽃과 나무들의 믿을 수 없는 반응들은 도대체 그 사령탑이 두뇌가 아니라면, 어디에서부터 연원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신비함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조금 심각하였다. 오늘 이상하였다.
무언가에 사로잡혀 두려워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감돌게 하고 있었다.
마탁소는 조용히 식구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요즘 안면도에서 참 해괴한 일을 겪고 왔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아마도 미친 이야기라 할 것이다만,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지를 않는구나.
그것은…, 말이다…, 지난번에 말이다…”
아버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용히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 안면도의 수목원에서 최근에 자기가 겪은 일련의 일을 조용히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마탁소는 오동나무가 키를 숙인 이야기, 해바라기 꽃이 자기를 따라 오던 이야기 등을 가족들에게 가감없이 이야기하였다.
튜라플리네스 이야기…
그렇지만 꿈에 나타나 자기의 성기를 희롱한 이야기만큼만은 차마 하지 못하였다.
가족들은 모두 괴기담을 듣는 양,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토를 달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순원이는 믿어지지 않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망설여졌다.
문자 그대로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닌가?
아버지가 순원이에게 말하였다.
“오늘 너의 진로문제를 진지하게 상의해야 할 시간에 하필 믿어지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아버지가 느낀 바가 있어서였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아버지만 경험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아마도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그저 착각했겠지 하며 기억에서 지우며 곧 잊어버리고 말지 모른다.
어느 날 베란다 꽃에 물을 주면서 꽃이 활짝 피어나면서 꽃의 색깔이 반짝이는 모습에, 마치 꽃이 웃으면서 나를 반기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것은 그저 꽃이 물을 먹으니 싱싱해져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말곤 했었다.
그런데 요 며칠을 지내고 보니 그것이 그렇게 보였던 것이 아니고 정말 그러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구나.
아버지는 지금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식물도 생각을 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적극적인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미쳤다고 할까?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새로운 과학의 영역이 여기서 발견될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봤었다.
순원이는 물리학을 공부하고자 한다. 동식물의 생물현상은 곧 물리현상이다.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우주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하여 물리현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오만은 설명이 안되면 비과학적이라고 무시하려고 하는 태도에 있다. 한심한 것이다. 물리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곧 현상에 대한 설명력을 갖고자 하는데 있다.
너는 설명이 가능한 현상만을 믿겠느냐? 그렇다면 너는 과학자가 아니다. 학습자일 뿐이다. 설명이 가능하지 못한 현상을 파고들 때 물리학자는 탄생되는 것이고, 물리는 더 강고해지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생각한다.
요컨대 아버지의 생각은 이렇다.
순원이가 물리학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신비한 현상을 설명하는 공부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그러한 수많은 분야중에 굳이 어떤 분야인가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비물질보다는 물질을, 비생명보다는 생명을 그 대상으로 연구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다.
아버지는 네가 동식물이라는 생명체의 자유의지라는 점에 착안하여 연구를 하되, 더욱 극명한 탐구를 위하여 식물을 대상으로 그러한 연구를 해보면 어떻겠는가를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단숨에 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놓고 목젖을 울리며 꿀꺽 삼키었다. 꿀꺽 삼키는 소리가 주위의 정적을 깰 정도였다.
아버지의 제안이 끝나자 어머니가 물었다.
“그런 걸 가르치는 학교가 있을까요?
누가 그런 걸 연구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이제까지 새초롬하게 듣고만 있던 수경이가 불쑥 말했다.
“그러면 오빠가 심령과학을 연구해야겠네. 심령 물리학인가? 심령 식물학인가? 안 그래요?”
순원이는 아버지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다.
철학을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면서, 음양오행이니, 주역이니, 섭리니 하며 우주원리를 설명하고자 하는 동양적 관념론에 내심 못마땅하며 그 비과학적 태도를 경멸해 왔던 순원이에게 아버지의 제안은 동양적 신비주의를 서양적 물리학으로 풀어보라는 궤변같이 들려 왔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무엇을 공부하라는 것이지 감이 서질 않았다.
순원이는 거부의 의사를 말하고자 숟가락을 조용히 식탁에 놓았다.
그때 아버지가 소주병을 들어 순원이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순원이로서는 처음이었다. 아들에게 술을 따라 줘 본적이 없었다.
순원이는 얼른 잔을 두 손으로 받치고 아버지의 술을 받았다. 당황스러웠다.
그 틈에 아버지는 말하였다.
“순원아. 너는 동물하고 식물하고 어느 쪽이 더 진화한 생명체라고 생각하냐?”
“.........”
“모두들 그러더라. 지구상의 생명체중 인간이 가장 진화된 생명체이고, 그 다음이 동물이고 그 다음이 식물이라고.
아마도 동물은 자기 의사를 말하고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자기의 생활을 개척해 나가니까 보다 진화되었고, 식물은 스스로의 의사도 없고, 한 곳에 묶여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그보다 덜 진화된 생명체라고 믿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냐?”
순원이가 각오한 듯이 비장한 어조로 아버지 말을 자르며 들어왔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수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분야는 물리학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생물학이나 식물학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어요.
굳이 물리학이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보다 밀접한 분야가 있는 다른 전공영역에 제가 끼어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아버지, 저는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양자역학과 그룹 이론 등을 응용하여 우주와 시간의 본질에 대해 보다 깊은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우주는 미지수의 덩어리입니다.
대개들 천체물리학은 너무 심오해서 우리나라와 같은 순수과학의 후진국은 감히 연구에 도전조차 않고 있습니다마는, 저는 우주야말로 물리학의 보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주는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지요.
우주는 아무나 달려들어 파면, 곡괭이에 금이 걸려 나오는 거대한 금맥 광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분야의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저의 전공과 장래에 대해 막연하게 망설여지면서 판단이 서질 않았는데, 이상스럽게 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까 어떤 빛이 보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듭니다.
왠지 물리학 중에서 순수물리학으로 승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첨단 양자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순원이의 말은 이해의 지평을 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버지 생각에 대한 거부라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마탁소의 성격으로 보아 아들을 다시 장광설로 설득하거나 호통이 이어질 것이라는 짐작이 모두를 스쳤다.
그러나 마탁소는 침묵했다.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알았다. 네 뜻대로 하거라.
아버지는 너희들의 운명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
운명은 하늘이 키를 잡고 나아가는 항해와 같은 것이다. 너희들은 승무원. 부모는 그저 배의 손님일 뿐.
너희들의 선택이 옳을지 모른다. 뜻한 바대로 열심히 하거라.”
그렇게 말하고 또 소주를 한잔 꿀꺽 마셨다. 그리고 순원이 잔에 한 잔 따라주었다.
순원은 의외로 쉽게 아버지가 뜻을 접는 것을 보고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이런 곳에서도 의표를 찌르는 빠른 대응은 상대방을 허둥대게 만든다.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안드는 것도 아니어서 화제를 돌렸다.
“참 제가 대통령 장학생으로 선발될 것 같습니다. 내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학비와 생활비는 전혀 문제가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미국의 하바드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상의 드리겠습니다.”
수경이는 눈을 반짝였다. 하바드?
꿈도 야무지네… 턱도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순원이의 입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듣고 있었다.
아버지도 그러했다.
수경이가 물었다.
“근데 아버지, 아까 동물과 식물 중에 어느 것이 진화가 더 됐느냐고 한 것은 어떤 거예요. 동물이 아니고 식물이 더 진화가 된건가요?”
순원이도 이 질문에는 호기심이 동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응,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
아버지는 짧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졸랐다.
“한번 얘기해 봐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마탁소는 입을 열어 말했다.
“전혀 과학적인 얘기가 아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아버지는 동물은, 식물이 지배하는 식민지의 종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은 식물에서 나왔고, 식물이 동물의 조상이요 어머니요 주인이다.
자연이란, 말하자면 이 식민지의 이름인 것이다.
아버지는 솔직히…
식물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아니고…”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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