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애한(대전노은초 교사) |
그 사년의 시작이었던 봄, 우리 반 종석이(가명)와의 에피소드는 마치 어제 일처럼 여전히 생생하다. 바로 그 시점이 나의 교직 생활의 터닝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학기 초 실시되었던 진단평가 결과, 우리 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고 평소 과제를 안 해오거나 준비물을 안 가져온 학생들을 헤아리는 것보다 그 반대의 학생 수를 헤아리는 것이 더 빠른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을 빨리 변화시키고자 나 나름대로는 여느 해보다 더 열심히 부지런한 3월 한 달을 보내며 우리 반 아이들의 기초?기본 학습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하였다. 매일 과제, 일기, 준비물, 1인1역, 발표 횟수 등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꼼꼼하게 확인하였고 기초 부진 학생들과 미해결 과제가 있는 아이들은 그 과제를 다 해결할 때까지 남겨서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스스로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교사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3월 한 달이 지나자마자 곧 우리 반 종석이의 3일간의 결석으로 인해 무참히 깨지게 되었다. 평소 종석이로 말하자면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생각을 읽어 내기가 쉽지 않은 남학생으로 잦은 지각과 방관자적인 수업 태도를 보여 매일 교실에 남는 고정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종석이의 어머니로부터 종석이가 아파서 학교를 쉬어야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이틀째 받고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종석이의 어머니와 전화 통화가 되질 않아 오후에 집으로 찾아갔는데 종석이가 너무나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아침은 물론이고 점심도 먹지 못했다는 아이의 말에 아이를 데리고 근처 햄버거 가게에 가서 늦은 점심을 사 주었다. 종석이는 사실 식탐이 많아 급식시간에 두 번 이상씩 배식을 받는 아이이다. 배가 불러 한결 여유를 되찾은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학교가 재미없고 매일 남아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 싫어 엄마인척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물론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써 아침 일찍 공장에 일 나가는 엄마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평소 깨워 줄 사람이 없어 지각하기 일쑤이고 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아이의 사정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일은 꼭 등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학교로 돌아온 나는 몇 시간 전, 오늘은 방과 후 공부가 없다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의 환한 표정과 학교가 재미없다는 종석이의 대답이 자꾸 떠올라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교실을 떠날 수가 없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았구나.’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마음을 열고 천천히 함께 갈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전 학교의 아이들과 비교하며 그 기준에 못 미친다고 답답해하며 아이들을 그 기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다는 깨달음이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다음 날 아침, 종석이는 기대와는 다르게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 집에 가 보았지만 종석이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미처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고 교실 뒷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릴 테니 12시 전에 따뜻한 밥 먹으러 오라는 말을 남긴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의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종석이는 이날 정확히 12시 5분 전에 교실 뒷문에 서 있었다.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쉽사리 교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아이의 손을 덥석 잡고 이렇게 말했다.
“종석아, 용기 내주어 고마워. 오늘 점심 메뉴는 네가 좋아하는 돈가스야.”
그 후에도 종석이는 결석은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지각을 자주 하였고 서로 약속한 요일에는 꼭 교실에 남아 함께 공부를 하는 기특함을 보여 주었다. 학년 말에 아이들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롤링페이퍼에 써서 건네주었는데 여러 글귀 속에서 종석이의 짧은 글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 한 번은 크게 혼나겠지 했는데 반대로 “따뜻한 밥 먹으러 늦지 않게 와서 좋네.” 라고 말씀해 주셔서 좋았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는 바로 진심이다. 서로의 진심이 통하게 되면 신뢰가 쌓이게 되고 그런 교실 분위기 속에서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는 행복한 배움이 일어난다. 아이들만 교사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다. 교사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배우게 되고 깨닫게 되며 더욱 성장하게 된다. 교학상장(敎學相長), 행복한 가르침이자 내게도 행복한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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