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애의 미술읽기] 홀바인의 '대사들'은 당시 유럽사회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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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애의 미술읽기] 홀바인의 '대사들'은 당시 유럽사회의 초상화

10. 초상화의 대가 한스 홀바인과 그 수혜자 헨리 8세

  • 승인 2017-07-21 11:20
  • 정경애 보다아트센터 관장정경애 보다아트센터 관장
▲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년, 오크 패널에 유채, 207x209.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년, 오크 패널에 유채, 207x209.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르네상스 이후, 예술 활동의 중심이 궁정이었다. 이 시기의 화가들은 왕족의 후원을 받는 궁정화가가 되는 것이 로망이었다. 그 중에서도 수석궁정화가는 왕족 중에서도 왕의 최측근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는 역할을 했으므로 화가로서는 최고의 출세였다.

사진이 보편화되기 이전까지는 왕실 초상화가 유일하게 군주의 이미지를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왕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왕들은 자신의 초상화로 지엄한 군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따라서 궁정화가는 궁정인으로서의 특권과 신분은 보장되었지만 자신의 의지보다는 후원자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야하는 고단한 삶이기도 했다.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는 영국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군주이자 6명의 아내를 둔 복잡한 사생활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거기다 로마교황청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성공회를 만들고는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된 소위 간 큰 남자였다. 그러나 그 당시의 잉글랜드는 스페인이나 프랑스와는 비교 불가한 변방의 작은 이류 국가에 불과했다. 그래서 헨리 8세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나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에 뒤지지 않는 강력한 군주의 이미지를 더욱 원했다.

이러한 이미지를 그의 마음에 쏙 들게 그려낸 화가가 바로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이었다. 한스 홀바인은 원래 큰 키에 장대한 기골을 가진 왕을 더욱 과장되게 부풀려 그렸다. 뿐만 아니라 세밀하게 묘사된 고급스러운 주름 장식과 각종 장신구 그리고 모피 모자 등은 헨리 8세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의 권위와 힘을 강조한 대성공의 초상화가 탄생된 것이었다.

한스 홀바인은 원래 독일 출신이었다. 일찍이 유럽의 문화적 중심지였던 바젤의 시장인 Jakob Meyer의 주문으로 제단화를 그릴 정도로 독일과 스위스 등 그 일대에서는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곳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신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교회 안에 성인들의 그림과 조각상을 두는 것을 우상숭배라 하여 반대했기 때문에 갑자기 일터를 잃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생계를 위해 건너 간 영국에서 영국의 화가들을 제치고 최고의 명예인 헨리 8세의 궁정화가가 되었으니 홀바인은 입지전적인 인물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홀바인은 헨리 8세를 비롯한 튜더 왕조의 인물들을 기품 있게 그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영국의 정치적, 종교적인 상황에서 당시의 지성인들이 느꼈던 심리까지도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부분 홀바인의 대표작은 그림 속의 주인공인 장 드 댕트빌(Jean de Dinteville)의 주문화인 [대사들 The Ambassadors]이라고들 한다. 언뜻 보기에는 고풍스러운 의상을 입은 두 남자의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당시의 유럽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담아낸 그야말로 사회의 초상화이다.

그가 이 작품을 그릴 당시 유럽은 이들은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고 과학의 발전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지성에 대한 믿음이 불확실한 시대였다. 이러한 혼란한 때에 외교적 임무를 띠고 영국으로 건너간 프랑스 대사 장 드 댕트빌(Jean de Dinteville)은 그의 친구인 라보르(Lavaur)의 주교 조르주 드 셀브(Georges de Selves)와 함께 있는 모습을 홀바인에게 부탁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장 드 댕트빌과 조르주 드 셀브는 당시 프랑스에서 권력과 교양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지성인들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 영국의 로마가톨릭 이탈을 막으라는 외교적 임무를 완수하지는 못했다. 이미 앤 불린에게 마음을 빼앗긴 왕은 본처 캐서린과의 이혼을 강행하고자 했다. 그리고 로마교황청이 이혼 승인을 반대하자 기어이 성공회를 만들었다.

홀바인은 인물보다는 탁자에 펼쳐진 사물들의 의미에 더 비중을 두어 그때의 암울했던 상황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해 내었다. 2단으로 구성된 탁자의 상단부에는 천구의, 해시계 등 천체를 연구하는 도구가 놓여있다. 하단부에는 지구의, 수학책, 줄이 끊어진 류트와 피리, 찬송가 등이 있다. 그리고 두 남자의 앞발치에는 길게 뻗은 타원형 물체가 있다. 그런데 이 물체는 정면이 아니라 오른편에서 비스듬한 각도로 쳐다보면 해골이다.

이 사물들은 무엇을 의미하고자 하는 것일까?

천구의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떠오르게 하며, 다면의 해시계에는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시간이 맞추어져 있어 새로운 발견의 시대를 말하고 있다. 끓어진 류트의 줄은 커져가는 구교와 신교의 불화를 암시하며 반면 류트 옆의 찬송가는 신, 구교 간의 조화로운 화해를 기원한다. 숨기듯 해골을 그린 이유는 그림 가장자리의 녹색 커튼을 친 왼편 상단에 보일 듯 말 듯 하게 걸린 십자가로 답을 대신한다.

결국 화가는 탁자에 펼쳐진 지식과 교양의 도구들 속에 죽음의 이미지를 숨겨 놓아 인생의 덧없음과 삶의 진실한 가치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정경애 보다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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